언니네 이발관 「산들산들」
https://youtu.be/qgYh7iBF55g?si=t6GyGjKBTB2N9Rjc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떤 선택의 순간도 아닌데도 이미 선택이 끝나버린 사람의 뒷모습이 보인다.
〈산들산들〉은 무언의 체념과 비자발적 결단이 동시에 울리는 노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라는 고백은 무기력의 문장이지만, 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말은 뜻밖에도 “그래도 난 가네 / 나는 나의 길을 가”다.
이 노래가 오래 남는 이유는, 이 두 문장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왜 우리는 결국 가는가
노래는 반복해서 말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네
이 문장은 실패의 고백도, 패배 선언도 아니다.
삶의 많은 국면에서 우리는 ‘선택하지 않음’조차 선택이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 노래가 말하는 첫 번째 현실이다.
그런데 〈산들산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여기서 ‘간다’는 말은 용기의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가는 것,
정확히 말하면 살아 있으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최소 단위의 결단이다.
이 지점에서 이 노래는 젊은 세대와 노년의 청자를 동시에 꿰뚫는다.
젊은 세대에게 이 문장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시기”의 언어이고,
나이 든 초로의 세대에게는
“이미 많은 길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걷고 있는 이유”의 언어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계속 가는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의 잔혹하고도 따뜻한 진실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누군가의 별이 되기엔
아직은 부족하지
이 대목은 자기 비하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성숙한 자기 인식이다.
이 노래의 화자는 ‘특별해지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별이 되기엔 부족하다”라고 말하면서도, 그 사실을 극복해야 할 결함으로 다루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범함을 이유로 멈추지 않는다는 태도다.
그래서 난 가네
이 문장은 이렇게도 읽힌다.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갈 수 있다.
의미를 증명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이미 충분히 움직일 자격이 있는 사람의 걸음이다.
이것이 이 노래가 나이를 가리지 않고 통하는 심리적 저변이다.
젊을수록 ‘왜 가야 하는지’를 묻고,
나이가 들수록 ‘왜 아직도 가고 있는지’를 묻게 되는데,
〈산들산들〉은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유가 없어도, 가는 것이 인간이다.
왜 ‘언니네 미용실’이 아니라 ‘언니네 이발관’이었을까
사실 그들은 단지 재밌어서 단순히 지었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노래를 알수록 나름의 타당한 이유를 유추해 본다.
그건 안드로메다까지 축지법으로 달리는 나의 주관적인 관심법이라 숨이 가쁘지 않아. 허허
이 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밴드 이름을 그냥 넘길 수 없다.
언니네 이발관이라는 이름은 처음부터 이들의 세계관을 드러낸다고 느꼈다.
‘미용실’은 꾸밈과 변화, 트렌드의 공간이다.
반면 ‘이발관’은 훨씬 생활적이고, 오래되고, 기능적인 장소다.
머리를 멋지게 하기보다는 정리하러 가는 곳,
인생이 바뀌기보다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통과지점에 가깝다.
게다가 ‘언니네’라는 말은 친근하지만 애매하다.
가족도 아니고, 연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남도 아닌 관계.
이 이름은 처음부터 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의 안전지대를 선언한다.
그래서 이발관이다.
화려하지 않고, 성취를 약속하지 않으며,
그냥 잠깐 들렀다가 다시 자기 길로 나가는 곳.
〈산들산들〉은 바로 그 이발관에서 들려오는 독백 같다.
머리를 자르고 나와서,
조금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는 사람의 노래.
이상 저의 뇌피셜이었슴다 ;;;;
소나기를 피할 수 없어도, 구름 위를 말하는 이유
소나기 피할 수 없어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이 문장은 모순처럼 보인다.
피할 수 없는 소나기와, 날아오르는 이미지가 동시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말한다.
고통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통과 조건이라고.
소나기를 없애겠다는 말이 아니라,
젖은 채로도 움직이겠다는 선언.
외로움이 사라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외로운 상태로도 웃을 수 있는 장소를 찾겠다는 태도.
이건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젊은 시절엔 희망처럼 들리고,
나이가 들면 지혜처럼 들리는 이유다.
결국 남는 것은 ‘잊을 수 없는 게 조금 남아있을 거야’
노래는 끝내 이렇게 말한다.
잊을 수 없는 게 조금은 남아있을 거야
모든 것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완벽한 기억도, 영원한 의미도 없다.
다만 ‘조금 남아있는 것’이 있다.
이 노래가 말하는 ‘내 길’이란 거창한 사명이 아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 사이에서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미세한 감각을 데리고
다음 장면으로 이동하는 일.
그래서 이 노래는 슬프지만 절망하지 않고,
체념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는 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평범한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조용하고도 소중한 이유다.
그리고 〈산들산들〉은 그 이유를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산들거리는 걸음으로 증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