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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영쓰 Jul 20. 2022

오늘도 평화로운 프리랜서

리추얼 모닝

후각이 둔한 내가 향 제품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인 것 같다. 올해 봄, 친구랑 같이 들어간 부암동 어느 옷 가게에서 이전부터 궁금했던 종이 인센스를 사서 태우고부터다. 아침에 일어나서 종이에 불을 붙이면 쪼그라들며 타기 시작해 파사삭 재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는 게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밤새 쌓인 방 안과 내 몸의 나쁜 공기와 냄새도 사라지는 기분이 들고. 


얼마 전에는 곧 있을 이사를 준비하면서 스틱형 인센스도 하나 구입해 봤다. 후각이 둔한 내 코에도 향 냄새가 너무 강해서 손이 안 가던 인도 출신 인센스 틈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던 국산 자몽향 인센스. 이렇게 나의 아침은 인센스에 불을 붙이는 걸로 시작한다. 거실 겸 방 겸 주방(흑흑, 원룸인이여ㅠ)의 커피메이커 옆에 하나, 화장실에 하나. 홀더는 따로 사지 않고 집에 있는 접시를 받쳐서 쓰고 있다. 

주로 집과 집앞 카페에서 일하는 나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집중도가 높은 시간은 아침 6시 30분-8시 30분. 일어나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다(일 따위야 뭐 ㅋㅋ). 6시쯤 눈을 떠서 30분쯤 침대에서 밍기적대다가 물을 한 잔 마시고 방과 화장실의 인센스를 하나씩 태운 뒤 요가소년과 함께 30분 공복 요가를 한다. 매트를 말아두고 계란을 하나 삶아둔 뒤 씻고 아침+커피를 먹고 오늘의 to do list를 쓴다. 어제와 오늘의 일정이 하나도 다르지 않아도 쓴다. 여기까지 한 뒤 나의 열정은 차갑게 식기 시작.... 열일을 시작한다!

새 책을 계약하고 주로 초벌 번역을 하는 한 달 정도가 마음이 가장 편하고 평화롭다. 번역에 대한 부담감과 번역한 내 문장에 대한 책임감이 별로 없는 시기. 책임감은 한 달 뒤의 내 자신에게 미뤄두기 때문에. 이 시기에 많은 약속을 잡고 헛짓거리를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요즘 아침마다 인센스에 불을 붙이며 '아니,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거지?'라고 스스로 놀라며 새삼 깨닫고 있다. 새로운 책을 들어갈 때마다 반복되는 이 책임 미루기. 곧 이사를 가야 하는데, 방 한구석에 얼마 전에 출간된 책이 쌓여 있다. 10권이나 보내주다니 인심도 후한 출판사. 지난 번 책이 너무 어려워서 다음 책은 좀 쉬운 책으로 해야지 했는데 그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나ㅠㅜ. 정녕 번역하기 쉬운 책이란 없는 것인가. 

이사를 하면 식물도 키우고, 필라테스도 시작하고, 모닝페이지도 다시 써야지 다짐하고 있다. 리추얼이 이렇게 늘다 보니 일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오늘부터는 블로그도 '꾸준히' 해보려고! 이제 오전 마감인 영상 번역 원고 하나를 감수하고 오늘의 번역 분량을 채워야지. 아아, 책임감이 크게 들지 않는 이 시기는 역시 평화롭고 좋구나. 일은 미래의 내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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