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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da May 20. 2021

'핑크색'은 싫어, 근데 '분홍색'은 좋아

내 취향 한번 인정하기도 오래 걸린다.


BGM: 내가 좋아하는 디즈니 프린세스 영화 중 하나, '라푼젤' OST - When will my life begin




핑크색은 싫어!

돌이켜보면 옛날부터 소위 말하는 '여성적인 것'이라고 불리는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초등학생 때도 괜히 '여자애가 그게 뭐냐~'는 식의 말을 들으면 '뭐 어때서?'하며 울컥하는 마음에 청개구리처럼 더 반대로 행동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기도 있었지만 '남성에게도 지지않는 멋진 여성'이라는 이미지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좋아하는 색을 물어볼 때 '분홍색?'이라고 물어보면 질색 팔색을 하며 강한 부정을 했었다. 당시 분홍색은 여자여자한 색깔에, 귀엽고 공주풍스러운 색깔이라는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딱히 좋아하지도 않던 색깔을 입을 열었던 기억이 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파란색, 노란색, 초록색..'같은 색을 읊으며 매번 좋아한다고 말하는 색이 바뀌었었다.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분홍 물건들을 모아봤다.



근데 또 분홍색은 좋더라?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고 조금씩 내가 예쁘다고 생각되는 물건을을 내 돈을 주고 사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없이 그런 물건들을 사모으던 어느날 강의실 자리에 앉아 책상을 봤는데 분홍색 밭이 되어있었다. 필통, 노트북파우치, 지갑, 화장품파우치, 하다못해 볼펜까지. 정신차려보니 분홍계열의 물건들만 골라서 사모으고 있던 것이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여성적인 것/남성적인 것'이라는 틀에 나를 맞추는 누군가에게는 질색하며 날세우던 내가 색깔에 '여성적인 것'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씌우고 있었다는게 기가 찼다. 

이후로 나도 몰랐던(내 머리랑 카드만 알았던) 나의 색깔 취향을 인정해버렸다. 나는 '분홍색'을 좋아했다. 분홍색 물건들이 다 모였을 때 느껴지는 아무 생각없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동화같은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동경과 환상 사이의 색, 분홍색

인정하고 나니 대체 내가 왜 분홍색을 좋아하게 되었을까를 고민해봤다. 그러다 알게 된 나의 또 다른 취향 하나. 나는 '디즈니'를 좋아한다.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내가 영어를 자연스럽게 익혔으면 하는 마음에 매번 보여주셨던 자막없는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 아마 영화에서 정확히 무슨말을 하는지도 몰랐겠지만 주인공 공주들이 역경을 이겨내고 'Happyily ever after'하는 부분이 나에게 꿈꾸는 듯한 환상을 가져다 줬었다. '주인공들은 영원히 행복할거야.'


누군가가 말하길 디즈니 영화가 항상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랑을 시작할 때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랑을 시작하고 그걸 끝까지 이어가는 과정에서 크고작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디즈니 영화는 그 전 단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그 행복한 감정이 디즈니 영화 자체에 녹여지는 것이다. 나도 그 말에 매우 공감한다. 어렸을 때 공주들의 사랑이 맺어지는 과정을 보며 느꼈던 황홀한 환상이 내가 분홍색을 좋아하게 되는 데 한 몫을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보통 공주들의 색이라고 하면 분홍색으로 많이 표현이 됐었으니까. 나도 저렇게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더 나아가서 나도 저렇게 행복감을 느끼는 때가 올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감, 동경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내게 분홍색은 마치 디즈니 프린세스처럼 동경과 환상 그 사이에 있는 색인 것만 같다. 삶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있기 때문에 환상에 대한 내 무의식이 분홍색이라는 취향으로 표현된게 아닐까 싶은데, 그게 또 싫지만은 않다. 공주들에 대해, 영원히 행복한 미래에 환상을 품은 어렸을 적 나의 순수함을 버리지 않고 한켠에 언제나 간직하고 싶어서 이제 분홍색을 내 취향으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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