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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키 Oct 24. 2024

파도가 한꺼번에 덮쳐오면...

어려운 일들이 몰려와도 내 공간이 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는 법.



네덜란드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꼽으라면 집을 구하는 일(이는 네덜란드 밈에도 자주 등장하는 어려움이다)이다. 주택 수요와 공급이 심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시내에 거주할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 이는 더치들에게도 도시를 살아가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다. 


서블렛 방식으로 누군가와 공동 거주를 한다면 집 구하기가 조금은 쉽다고들 한다. 하지만, 남자친구와 나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공부와 연구, 공동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요리하기, 노래듣기, 노래부르고 춤추기, 취향이 가득한 물건(책) 모으기 등 공간을 필요로하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어 우리만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누군가는 이 마저도 사치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돈을 버는 일도, 삶을 살아가는 일도 취미를 즐기고 지키기 위한 사투인지라, 우리에게는 가장 절대적인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가장 내 집 같았던 우리의 두 번째 집



삶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집을 구해야만 한다!

그렇게 단기 임대가 가능한 집들을 찾아 세 번의 이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다양한 집을 살아보고, 동네의 분위기들을 익히기에 단기 임대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정감을 느끼는 요인들, 이를테면 의식주가 불안정해지기에 우리는 쉽게 예민해지고 불안해졌다. 점점 불안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어올 때 쯤, 큰 일을 마주하게 됐다. 우리가 번째 머무르는 집의 퇴소 일자를 착각한 것이다!!



유럽에서 바닥 난방이 가능한 집이었고, 공간 분리가 되어 일과 쉼이 분리가 가능했다 



남자친구가 회사와 미팅을 한창하던 오후 3시 무렵이었으려나. 그가 복화술로 외쳤다. "우리 큰일이다!" 집주인의 메시지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거였다. 집주인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3시까지 퇴실하면 되고, 침대 커버와 쓴 수건은 모두 벗겨내어 바닥에 놓고 나가라." 미팅 바로 직전인 2시 경에 온 연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퇴소일자를 착각한 직후 우리의 행동은 동영상 몇 배속 감기 이상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것도 일이었지만 널려놓은 짐들을 다시 어떻게 캐리어에 넣지...?! 손이 후덜거리고, 혈색은 어느새 보랏빛으로 변해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공장에서 박스 포장 알바를 하며 손이 아주 빠르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를 다시금 깨달은 계기였다. 남자친구는 미팅 중,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 척과 함께 집주인에게 양해의 메시지를 정중히 썼고 또 나와 함께 급한 짐을 쌌다. 그 결과,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그렇게 다음 숙소를 향해 이동하면서 우리는 지금의 불안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집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집 구하기는 악몽으로 전락했다. 집 계약에 유리한 조건들을 어떻게 해서든 그러모아서라도 우리를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집세를 밀리지 않을 소득 수준을 가지고 있고, 또 이 나라에서 자랑스럽게 터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한국이나 네덜란드나 나를 증명해야만 안정될 수 있다는 쓰라린 현실은 여전하다.  어쩌면 이곳은 더 냉혹하다. 우리를 이루는 가족, 직장, 친구 등의 네트워크가 없기 때문에. 수많은 이민자와 이방인은 다들 어디에 정착할까.  우리, 잘 헤쳐나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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