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은 일을 하면 괜찮은 내가 된다.
얼마전에 치과를 갔다. 생일날 저녁식사를 하다가 어금니가 크게 파여 있어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치과 얼른 가보라고 했다. 사실 별로 아픈 것도 아니라 얼른 가라고 옆에서 성화를 부리지 않았다면 한참 뒤에 갔을 것이다. 내 몸인데 나보다 더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된다. 그렇게 치과를 갔는데 그동안 치과를 왜 안왔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치과를 무서워하지 않고 가게되는 날이 있을까. 한 시간 정도 진료를 마치고 마취로 얼얼한 턱을 만지며 언젠가 또 잊어버릴 다짐을 했다. 아으 이 잘 닦으야지.
집에 돌아와 노트북 화면을 열고 초록창에 치아관리라고 검색했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보통 이를 닦는다고 하는 양치질은 정확히는 잇솔질이 맞는 말이고 양치질은 가글같은 것이라고 하는 것과 치아관리를 잘하려면 잇솔질 뿐만아니라 치실이나 치간칫솔을 추가로 더 이용해 관리를 해줘야한다는 것이다. 그 검색한 사실들을 보곤 아차 싶었다. 이 잘 닦아야지라는 다짐은 너무나 단순했었다는 것을. 치과에 가지 않으려면 보다 더 귀찮은 행위들을 추가로 다짐해야한 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텁텁한 생각을 하며 괜히 혀로 이를 드르륵 건드려봤다.
“어쩜 이렇게 옷 입고 벗는 게 구찮을까요. 고작 몸뚱아리 하나인데 왤케 구찮아.”
(나의 아저씨 14화, 정희 대사 中)
사랑했던 남자가 말없이 스님이 되어버린 참신한 시련을 겪은 정희는 스님인 구남친을 보고 와서는 쓰러져 누워있었다. 정희를 친딸처럼 챙기는 친구 어머님이 들어오자 겨우 일어나면서 밷은 말이다. 고작 몸뚱아리 하나인데 왜이렇게 귀찮냐는.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민망하다. 그렇지만 풋내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갓 스물이 된 그 나이를 풋내기라고 말할 수 있다. 거저 주어진 어른의 타이틀일 테니까. 그때는 나도 이제 어른이에욧 이라며 누군가에게 따질 수도 있는 겁없는 그런 풋내기. 그 시기를 조금만 지나면 과연 쉽게 나도 어른이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쉽게 나도 어른입네라며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에는 앞으로 겪게되는 수많은 경험들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중 하나가 내 몸뚱아리가 귀찮게 느껴질 때이다.
“늙은이 앞에서 못할 말이 없다.”(나의 아저씨, 14화 요순 대사 中)
하루를 밤새면 이틀은 죽고, 이틀을 밤새면 나는 반 죽는다는 노래 가사가 있다. 군대 갔다오면 곧 서른이라는 이 가사를 쓴 그때의 그들의 나이는 만 스물 셋이었다. 실제로 스물 언저리에서는 일년 일년 지나면서 몸뚱이가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한 두 살 어린 친구들 앞에서 늙었다며 신세한탄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몸을 관리한다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몸에 쌓였던 데미지가 누적되어 체력을 갉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새차를 사도 좋은 기름도 넣어주고 때에 맞춰 엔진오일도 갈아주고 타이어도 교체해줘야하는데 그냥 탄 것이다. 아무 기름이나 넣고 가끔은 기름이 떨어져 엔진에 무리가 가게 하고 밤새 쉬지 않고 달리는 바람에 타이어가 다 까지고 해도 마냥 새차인 것처럼 그냥 탄 것이다. 실제로 차를 저렇게 타다가는 큰 수리비를 내며 반성하겠지. 몸도 마찬가지이다.
몸이 퍼져서 병원에서 충격적인 말을 좀 듣고 돈을 좀 내보면 그때야 몸에 신경을 쓰게 된다. 먹는 것부터 신경을 좀 쓰고 규칙적으로 생활을 해보려고도 하고 무엇이 되었든 노력을 한다. 나한테 있어서도 그런 계기가 몇 번 있었다.
한 번은 무릎수술이었고, 한 번은 헬스장을 가면서였다. 무릎수술 할 때는 오래 입원을 하고 주변에 아픈 사람들을 보다보니 최고는 건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건강에 꽤 신경을 썼었고, 헬스장에 등록해서 피티를 받고 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체형과 운동에 대해서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마다 다짐했던 일들을 지금은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는 있다. 알고 노력하려하느냐 모르고 지나가느냐는 분명 큰 차이이다. 그리고 이제는 치아관리를 해야겠다는 새로운 계기를 지나고 있다.
“아! 귀찮은 몸뚱아리.”
어제도 샤워를 하면서 워터픽을 하고 잇솔질을 열심히 하면서 생각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가글을 하고 옷을 챙겨입고, 작은 산을 오르고, 쇠를 들었다 내리고, 돌아와 영양제를 챙겨 먹고, 샤워를 하고, 밥을 짓고 먹고, 치우고 빨래를 하고, 커피를 갈아 내리고, 자세 신경쓰며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귀찮을 때가 많지만 이런 일들을 하고 나면 기분이 썩 좋다. 뿌듯하다, 내 몸을 가꾸는 일이, 내 생활을 가꾸는 일이 말이다. 지금의 나는 이를 제대로 닦지 않았던 과거의 내가 실망스럽지만, 미래의 나는 나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 같다. 언제나 귀찮은 일들을 하면 괜찮아진다. 나는 더 괜찮아지고 싶다. 그래서 내일도 기꺼이 귀찮은 일들을 할 것이다. 귀찮은 몽뚱아리를 넘어 괜찮은 나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