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ebangchon Feb 17. 2020

서른여섯의 첫 호스텔 경험기

생애 첫 도미토리 호스텔 in 치앙마이

스물은 아니지만 호스텔 이용에 나이 제한은 없다.


어느덧 나이를 까고 싶지 않은 삼십 대 중후반이다. 사실은 '중반'보다 '후반'. 하지만 오늘은 나이를 좀 까야겠다. 스무 살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이제 갓 취업해 내 월급으로 여행을 떠나는 신입사원도 아닌 이 서른여섯의 주부가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면서 생애 처음으로 도미토리 호스텔을 이용해 봤기 때문이다.


태국 치앙마이 여행 계획을 하면서 '호스텔'에 묵으려고 하는 사실을 안 내 또래 지인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아니, 표현은 다들 달랐지만 한결같이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였다.


"야야, 우리 이제 이십 대 아니다. 편한 데로 예약해~"

"왜, 여행 경비가 모자라? 좀 보태줘?"

"호스텔? 거기 안전해?"

"호스텔이어도 호텔처럼 개인방 쓰는 거야? 그런 거지?"


이런 지인들의 반응에 솔직히 흔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런 반응이 있으니 어쩐지 이제라도 꼭 도미토리 호스텔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졌다. 게다가 남편이랑 함께. 그리고 치앙마이에서.


치앙마이를 간다는 소리에 옆집 사는 미국인 친구가 당장에 한 호스텔을 소개해줬다. 그 호스텔은 그 친구도 다른 친구의 추천을 받아 간 곳이었고, 우리 동네 친구들은 치앙마이를 가면 당연한 듯이 그 호스텔에 묵고 있었다. 치앙마이의 호텔들이 가격이 싼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싼 가격에 충분하게 편한 호스텔을 이렇게 당연하게 이용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었기에 나도 생애 첫 호스텔 경험을 해 보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랬다. 서른 여섯살에 첫 호스텔 예약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이 나이에 호텔이나 리조트 아닌 값싼 호스텔을 이용하는 게 왠지 '격'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유치한 생각을 했었다. 그저 먹은 나이에 그런 격이 어디 있으며, 어디에 머무는지로 사람의 격을 나누는 건 어디서 배운 건지! 


이런 근거 없는 고정관념을 깨 준 것은 여행을 자주, 많이 해 본 외국인 친구들이었다. 얼마의 돈을 벌고 얼마의 자산을 가지고 있든,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이 여행하는 곳에 따라 적절한 숙박지를 정하고 여행 테마에 따라 숙박비에 경비를 어느 정도 할애할지 정하는 것이 그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고급 호텔 리조트부터 홈스테이 방 한 칸, 도미토리 호스텔까지 그들의 선택지는 다양했다.


우리가 여행할 때 일단 유명한 호텔과 리조트를 예약하고 시작하는 것과는 영 다르다. 여행이 대접받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라 경험하기 위해 떠나는 거라면 고급 호텔 리조트만 고집할 필요는 애초에 없었던 것.




호스텔 초보, 호스텔 예매는 어디서 하나요?


치앙마이 간다는 얘기에 친구가 알려준 건 딱 하나. 호스텔 이름이었다.

"Potae's House"


전 세계 다양한 숙박의 최저가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앱이 폰에 여러 개 깔려 있었지만 친구가 꼭 집어 알려준 저 호스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잘못 알아들은 걸까 봐 문자로 자연스레 다시 물어서 텍스트로 이름을 정확히 받았다. 내가 틀린 게 아니었다. 듣기는 틀린 게 아니었는데, 호스텔 예약하기 위해 영 틀린 사이트만 이용하고 있었던 것.


아고*, 트립*컴, 트립어****, 인터**투어... 다 아니다. 괜히 비슷한 사이트 앱만 폰에 잔뜩 깔렸다.


검색을 했다. 호스텔 검색을 위해 어느 사이트를 이용해야 할지를. 그리고 내가 찾은 것은 '호스텔 월드 Hostelworld'였다. 물론 그 앱에서 치앙마이의 호스텔 'Potae's House'도 찾았다.




1박 6,250원. 여행에 거금 드는 거 아닙디다.


치앙마이 Potae's House

스탠더드 10인 혼성 도미토리 (공동욕실)

이곳에 우리는 성인 2인(침대 2개), 2박을 예약했다.

총금액 660바트 (약 25,000원)

1인당 1박 6,250원인 셈.


치앙마이 Diva Guesthouse

스탠더드 6인 혼성 도미토리 (개인 화장실이 포함된 방)

이곳도 역시 성인 2인(침대 2개), 2박을 예약했다.

총금액 520바트 (약 19,700원)

1인당 1박 4,925원인 셈.

 

Potae's House in 태국 치앙마이

서울 삼성동 회사 근처에서 병에 든 밀크티 하나를 8,000원 주고 사 먹었던 걸 생각하면 이것은 거의 공짜 숙박의 수준이었다. 밀크티 한 병 안 마시고 치앙마이 호스텔에서 1박을 하는 게 훨씬 훌륭한 선택인 것 같아서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밀크티를 굳이 안 마실 건 없고, 호스텔도 싼 데 밀크티도 사 마시면 되겠다."라고 말해주어 다시 한번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 얼마나 좋은 선택인가.


그전까지 나는 여행하면 거금이 드는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모아둔 돈을 여행 한 방을 위해 쏟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는 문제였고. 돈을 써야 하는 다양하고 다른 이유들에 의해서 여행은 밀렸다. 여행을 좋아한다곤 했지만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여행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런데 숙박의 범위를 넓히니 굳이 모아둔 돈을 한 방에 털지 않아도 밀크티 몇 잔 아끼면 갈 수 있는 것이 여행이었다.


이걸 깨달은 게 1년 반밖에 안 됐다. 1년 반을 시간을 돌려도 서른 중반.

'이런 걸 좀 더 어릴 때 알았으면 좋았을걸!' 늘 뒤늦게 깨닫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니 신이 난다.

스물이면 어떻고 서른여섯이면 어때. 마흔여섯에도 나는 지금과 다르지 않은 나일 텐데.




도미토리 호스텔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Potae's house 도미토리 룸 in 태국 치앙마이

무슨 일이 일어나긴. 각자 잠들 시간에 잠을 자고 잠을 깨고 옆사람과 말을 할 땐 속삭이고, 처음 보지만 눈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서로 "Hi" 한 번씩 해 주고, 옆 커플이 다녀온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슬그머니 그 경험을 담아다 내일 우리의 일정을 수정하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


밤 비행기로 치앙마이 공항에 내린 우리가 첫 호스텔에 이르렀을 땐 이미 다들 숙소에 들어와 잠을 잘 시간이었다. 그래서 도미토리 10인 방 문을 열 때 조심스러웠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아직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은 각자의 도미토리 침대칸에서 작은 스탠드를 켜놓고 있었고 이야기하는 커플들은 한 침대에 꼭 들어차게 누워 같이 사진을 보고 내일 여행 일정을 짜기도 했다. 늦은 시각에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오는 우리와 눈이 마주치면 눈빛과 소리 없는 입모양으로 "Hi, Hello"를 해 주었다. 그리곤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갔다.


아주 적당한 개인 구역과 아주 적당한 눈 마주침이 있는 곳.

아주 적당한 자유로움과 아주 적당한 규칙이 있는 곳.


도미토리 호스텔은 이런 곳이었다.


우리가 주섬주섬 갈아입을 옷을 챙겨 도미토리를 나와 공동욕실로 간 후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에 들어 있었다. 몇 커플은 자기 침대를 두고 좁은 도미토리 하나에 몸을 구겨 넣어 같이 자기도 했다. 처음에는 속으로 "어이쿠야!" 싶었지만 자기네 구역에서 별일(?) 하지 않고 잠자는데 어떠랴 싶었다. 커플이 같이 잠을 자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새로운 곳에서 혼자 잠드는 게 힘든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나처럼 도미토리가 처음이어서 내 옆에 내 사람이 꼭 붙어 자는 게 마음에 놓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모든 것에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겠지만 마음을 오픈하고 보면 이유가 없는 것도 없다.


늦잠을 자고 나니 침대가 거의 다 비어있었다. 다들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해 떠난 것. 커다란 백팩이 있는 칸을 보면서 '아 오늘 저녁에도 저 사람을 보겠구나.' 싶은 일련의 동지애(?)가 들었고, 짐 하나 없이 깨끗하게 비워진 칸을 보면서는 비록 잠든 등만 보았던 낯선 이지만 '앞으로의 여행이 안전하고 재밌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일정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또 다른 여행자가 저 침대를 차지해주길 은근히 기대하기도.


느지막이 일어나 샤워하고 일층으로 내려와 보니 간단하게 조식을 먹을 수 있게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토스트와 인스턴트커피, 바나나와 사과. 우리는 적당히 집어 호스텔 현관 밖에 앉아 먹으며 치앙마이의 아침을 보았다.


'Potae's house'에서 맞은 치앙마이의 아침


호스텔은 그곳의 호스트가 팔 할이다.


치앙마이 올드 시티 북쪽 게이트 쪽에 위치한 'Potae's House'에서 2박을 하고 나서 나머지 2박은 올드 시티 타패 게이트 근처의 'Diva Guesthouse'로 옮겨서 했다. 다른 호스텔도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Diva Guesthous in 치앙마이

호스트가 조용히 밤늦게 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Potae's House'와 달리 'Diva Guesthouse'의 호스트는 목소리가 컸다. 'Potae's House' 호스트는 무언가를 권유하는 법 없이 규칙을 알려주고 우리가 이용할 것들을 차분히 알려줬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묻기 전까지는 다른 액티비티나 교통편 예약 같은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원해서 물어보면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예약도 해주고, 후처리도 해주었다.


한 친구는 'Potae's House' 호스트를 통해 오토바이 렌트업체를 소개받아 오토바이를 렌트하고 치앙마이 외곽으로 당일 여행을 갔는데 가는 도중 사고가 났던 적이 있다. 그때 호스트가 너무 빠르고 편하게 일을 수습해주고 도와주어서 말도 잘 안 통하는 나라에서 잘 처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친구는 치앙마이를 갈 때마다 'Potae's house'를 찾는다.


'Potae's house' 호스트 사장님과 달리 'Diva Guesthouse'의 호스트 사장님은 일단 목소리가 컸고, 우리랑 대화할 때 서 있었다. 입구에 식당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에 식당과 주방 사이, 식당과 숙박 체크인 카운터 사이를 활발히 오가면서 숙박과 식당 일을 동시에 빠르고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체크인을 완료하기도 전에 우리의 모든 일정을 꿰뚫을 심산으로 속속들이 물어보고, 그 사이 추천하거나 권유할 액티비티나 교통편 예약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인다. 이런 적극적인 안내에 무언가 하나는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드는 게 사실인데, 처음부터 우리는 특별히 무언가를 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하루에 한 번씩은 마주치면 우리 의사가 바뀌지 않았는지 물어보곤 하셨다.


그렇게 적극적인 만큼 우리의 여행 편의를 먼저 챙겨주시기도 했다. 떠나는 비행기 일정을 체크하신 다음에 짐을 여기에 두고 어디를 구경하고 공항으로 가라, 몇 시쯤에는 어디에서 무얼 타고 공항으로 가라 등등 세세하게 챙겨주셨다. "아 알았어 엄마 알았다고."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그런 스타일의 호스트.


호스텔은 규모가 크지 않고 다른 직원이 많지도 않아 모든 소통을 호스트와 직접 하게 된다. 또한 드나들 때마다 호스트를 만나게 된다. 때로 호스트는 여행사 직원이 되기도 하고 여행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호스텔은 호스트의 분위기를 많이 닮았다.


호스텔을 고를 때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리뷰를 보면 침대 상태와 호스트의 성격이나 스타일에 대한 게 거의 다다. 침대 상태는 백팩 메고 하루 종일 여행을 다닌 여행자가 쉬어가기에 중요한 요소이고, 베드 버그 같은 것이 없이 깨끗하고 안전한 침구는 우리의 건강에도 중요한 요소다. 또한 호스트가 내 여행의 기분을 좌우할 수 있고 다양한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기에 내 취향과 핀트(?)가 잘 맞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보고 배운 대로 하기


'Diva Guesthouse' 혼성 6인 도미토리도 역시 만석이었는데, 나 빼고 모두가 남자였다. 남편 없이 혼자서 혼성 6인 도미토리에서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다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 당장 다른 방이 있어서 옮길 수 있을는지, 아니면 저렇게 적극적인 사장님이 나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방안을 찾아주셨을지.


'Potae's House'에서 보고 배운(?) 대로 남편과 나는 2층 침대의 좁은 1층 한 칸에서 사이좋게 몸을 구겨 넣고 잤다. 낯선 남자들이 자고 있는 방에서 내 편인 남편을 꼭 붙들고 자는 것으로 금세 마음은 안정되었다. 역시나 꿀잠을 잔 후 다음날 우리가 깼을 때에는 우리가 누워있는 침대 한 칸 외에 다섯 칸은 모두 비어 있었다.


씻고 나와 호스텔 입구의 식당 공간에서 조식을 주문해 먹었다. 호스트는 그 공간에서 모두의 친구였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어오면서 어제 잘 잤는지, 오늘 어디 가는지, 정말로 별도의 교통편 예약은 필요 없는지, 혹시 필요하면 중간에라도 전화를 하라는 그런 귀찮으면서도 고맙고 정겨운 잔소리 같은 오지랖이 영 싫지만은 않았다.


Diva Guesthouse에서의 아침식사 in 태국 치앙마이


치앙마이를 떠올리면 작은 골목을 두 다리로 누비면서 만나는 작은 상점과 식당,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하는 요가 클래스나 쿠킹클래스, 인근 여행 스폿으로 사람들을 나르기 위한 미니 버스들과 그것을 기다리기 위해 헤쳐모여한 여행자들이 떠오른다. 수많은 사원과 승려들, 느릿느릿 거리를 걷는 개들도.


힙하면서 자유롭고, 자유로우면서 서로가 만나고, 한 마디쯤 웃으면서 인사하고 지나가는 그런 곳. 그런 치앙마이에서는 호스텔에 머무르는 것이 역시 치앙마이스럽다.


치앙마이의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카페
조용히 쉬어가는 치앙마이에서의 휴식
치앙마이에서 빠질 수 없는 사원과 승려, 그리고 거리의 개




매거진의 이전글 월계수냐 올리브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