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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방년 Jan 20. 2023

착한 풍경

    햇볕과 소낙비를 켰다 껐다하는 스위치라도 있는 듯이 한 순간 쨍쨍하던 햇볕이 다음 순간 소낙비로 변하고 그러다가 다시 햇볕이 쨍쨍해지나 하면 또 무섭게 비가 쏟아지고.  그 속에서 나는 골웨이를 향해 걷고 있었다.


     민박 주인 여자한테 이니시모어로 가는 연락선 스케줄을 물어보았다. 첫 출항은 아침 8시이지만 파도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고 심하면 아예 출항이 없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파도가 있어서 제 시간에 떠나기는 좀 그렇고, 기다려 보자고 했다. 두어 시간 후, 승선한지 불과 10여분도 지나지 않아서 전신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멀미라는 걸 그때 처음 겪었다.

     "Are you okay?" 

     갈색 머리를 휘날리며 파도를 즐기던 젊은 서양여자가 물었다. 

     "Do I look okay?" 

     얼굴이 허옇게 떠서 비틀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젊은 동양여자가 안쓰러워 걱정이 진심이었을텐데.... 나는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이토록 삐딱해진 걸까?


     한 방향으로 뻗어 있는 널찍한 길. 멀미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비칠거리며 걷다가 첫 번째 나타난 민박으로 들어가 자리에 누웠다. 저녁이 되어서야  일어나, 하루가 멀미로 시작해서 잠으로 끝날까봐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다. 낮에 걸었던 외길을 다시, 이번에는 여유 잡고 걸었다. 펍 <샴록> 등장. 원탁이 대여섯 개나 있는 넓은 홀이지만 빈 자리는 없었다. 노인네 둘이 차지하고 있는 탁자로 다가갔다.

     "May I?"

     "Sure."

     기네스 두 번째 잔을 주문할 때 쯤 한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Where are you from?" 

     "Korea."

     "Why did you come to Ireland?"

     "Shouldn’t I?"

     두 사람이 가볍게 소리내어 웃었다. 나는  맞장구 치듯 웃어주면서 뭐 좀 먹으려고 웨이터를 부르는데 다른 노인이 물어왔다. 

     "In Korea, do you speak Chinese or Japanese?"

     "Neither."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는 장대비가 열심히 쏟아지고 있었다. 몇 걸음 떼기가 무섭게 옷을 입은 채로 수영장에 들어갔다 나온 꼴이 되었다. 

     지나가던 승용차가 후진하더니 내 옆에 멈춰 섰다. 엄청난 소리로 몰아쳐대는 비바람 속에서 운전자가 조수석 유리창을 내리면서 나한테 빨리 타라고 악을 썼다.  고맙기는 하지만 속옷에서 물이 줄줄 흐르는 상태에서 낯선 사람의 차에 올라 탈 수는 없었다. 운전자는 중년 부인이었다. 내가 타기 전에는 떠나지 않을 기세였다. 탔다. 

     "You're a long way from home and it's raining cats and dogs...."

     

     죄송하단다. 

     내리퍼붓는 장대비가 자기 탓인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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