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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 Jun 30. 2024

민희진 사태로 알아본 엔팁(ENTP) 활용법

원제목은 '엔팁이 회사생활하기 힘든 이유'였지만

 하이브와 어도어의 지난한 분쟁을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 민희진 대표의 두 번째 기자회견은 또다시 많은 화제를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처음으로 밝혀진 민 대표의 MBTI였다. 첫 번째 기자회견 풀영상을 보고 나서 '나랑 같은 계열'이라는 본능적 감이 왔지만, 이게 혹시 국힙원탑으로 등극한 민희진을 향한 팬심이 나도 모르게 솟아나, 동일시하고자  꿰어 맞추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여러 지인들과 이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서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정확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는데, 두 번째 회견 중 마침 그 질문이 나왔고 민 대표 스스로 'ENTP'라고 대답했다.


민희진 대표 첫 번째 기자회견을 보고 엔팁의 향기를 느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 궁금해 여기저기 물었다.


엔팁 (ENTP),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혹은 발명가형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형은, 대학생 시절 했던 첫 번째 정식 테스트 이후 숱한 재검사를 해봤지만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내 성격유형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유형이 꽤나 맘에 들어해서 오랫동안 여기에 맞춰 살아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강한 자기애와 높은 자존감도 엔팁 유형의 특징 중 하나라고 하니, 그냥 본투비 엔팁인가 싶다.


엔팁에 대한 설명 중 어떤 것을 보더라도 상위에 나오는 키워드는 창의성, 논리적, 도전적, 독립적, 솔직함, 박학다식 등이다. 좋은 말만 나열한 것 같은 이 키워드를 반대로 적용하면 현실감이 떨어지고, 져 주거나 돌려 말하는 법을 모르며, 지루하거나, 구속당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특성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내가 민희진 씨에게서 엔팁의 향기를 느낀 대목은 '도저히 못 참겠다. 내가 말 좀 해야겠다' 싶어 소집한 기자회견에서 장장 두 시간을 하드캐리 해 나가는 언변과, 그럼에도 계산이나 격식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함, 그리고 쉬지 않고 튀어나오는 급발진이었다. 살면서 나름의 산전수전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동안 나 스스로에게서 발견했던 특성과 아주 닮아있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이 사람의 직장생활이 순탄치 못했던 이유가 단번에 머리에 그려졌다. 동시에 ENTP와 함께 일하는 법을 지독하게 몰랐던 방시혁 씨와, 같은 사람을 데리고 최고의 결과물을 뽑아냈던 이수만 씨의 상반된 리더십 또한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엔팁 활용법 1. 샘솟는 창의성을 펼칠 수 있도록 할 것


엔팁의 대표 성향이자 본질을 이해하려면 MBTI에서 확장된 이론인 8 기능 이론을 들여다봐야 한다. 각 유형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과 그것을 출력하는데 쓰이는 네 가지 기능인 감각(S), 직관(N), 사고(T), 감정(F)은 외향적으로 쓰는지 내향적으로 쓰는지에 따라 다시 Se, Si, Ne, Ni, Te, Ti, Fe, Fi로 나뉘는데, 모든 사람이 이 여덟 개의 기능을 다 가지고 있지만, 유형에 따라 어떤 빈도와 강도로 쓰는지 그 기능의 위계가 다르다고 말하는 이론이다.


8 기능 이론에서 각 유형의 1차 기능은 주기능으로, 본인이 가장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가장 강력하고 의식적이기 때문에 유형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ENTP는 개방적인 사고와 자유로운 상상으로 표현되는 외향직관(Ne)이 주기능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유형보다 기발하고, 창의적이고, 엉뚱한 면도 있으나 그 점이 업무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거나 가능성을 발견하는 데 두각을 드러내는 식으로  발현된다. 타고난 창의성과 자극을 추구하는 습성 때문에 직장에서도 같은 일 반복하기를 싫어하는 엔팁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하기에 딱 맞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성격유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의 역할이 절대적이겠지만, 어쨌거나 그 재능을 가장 빛나게 활용하기에 딱 맞는 성격이자, 성격 덕분에 재능을 더 갈고닦을 수 있었다는 반대의 인과관계로도 어느 정도 설명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느 불행한 엔팁이 단순하고 재미없는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하는 직무에 배치된다면? 도전을 추구하는 엔팁은 높은 확률로 금세 흥미를 잃고 떠나겠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 전에 우선은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창의성을 발휘해 볼 것이다. 그리고 그건 책임감이나 성실함보다는 '내가 재미있고 싶어서'가 동인일 가능성이 크다. 요약하면 어떤 일을 맡겨도 크게 못하는 일 없이 잘 해내지만,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당연히) 잘하는 일을 맡기는 것이고, 그게 바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다.



엔팁 활용법 2. 수긍할 수 없는 일을 그냥 넘어가라고 하지 말고 잘 설명해 주기  


8 기능 중 두 번째로 잘 쓰는 기능인 부기능(2차 기능)은 주기능을 보조하는데, 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난다. ENTP의 부기능은 내향 사고(Ti)로, 어떠한 현상이나 문제의 원인 등을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분석하는 기능이다. 효율성과 이익을 계산해서 목적을 이루는 외향사고(Te)와는 구별되는 점이 득될 것도 없는 일을 따지고 든다는 건데, 그러니까 천진하게 주기능인 창의력을 쓰면서 재미있는 일에 돌진하다가 주로 논리적으로 설득이 안 되는 상황, 부당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맞고 틀린 게 분명한 T 기질이 튀어나오면서 대체 어디서 이 문제가 비롯되었는가를 끝까지 파고들어 논리로 때려잡는 기능을 말한다.


'변론가'라는 엔팁의 별칭은 이 사고기능이 외적으로 발현된 모습이다. 자기가 재밌어하는 일에 몰두하며 최고의 성과를 내던 민희진 씨가, 노골적으로 훼방을 놓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증명한 성공의 공식을 카피하는 하이브의 공격을 인지했을 때 그 변론가 자아가 고개를 들었다. 이 상황이 어떤 면에서 옳지 않은지, 상대방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을 해왔는지 처음부터 시간 순서대로 증거를 가져다가 조목조목 설명하는 모습은, 직전까지 하이브의 언론플레이로 등 돌린 대중의 마음을 단번에 돌려놓을 만큼 매우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었던 동시에 치밀하게 준비된 것 같지 않은 즉흥성도 엿보였다. 그야말로 '빡쳐서' 급발진하는 충동적인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믿음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 타고난 언변과 이를 구성하는 논리적인 사고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평화로운 상황에서는 누구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엔팁이 논리로 철갑을 두른 몽둥이를 집어들 때는 뭔가 바로잡아야 할 상황일 때다. 물론 늘 싸움만 거는 동네 건달은 아니다. 다만 건전한 논쟁에서 더 나은 생각이, 기존 체제의 균열에서 더 나은 조직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엔팁이기에, 현재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자 여러 사람에게 정보나 대화를 요청하고, 논리적으로 따져보는 일이 남들보다 많을 뿐이다. 엔팁의 이런 특성을 들어 ‘물음표살인마’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누구를 괴롭힌다거나 싸움을 걸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알고 싶은 마음에 하는 질문이라는 점을 알아주면 된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고 대충 넘어가줬으면 하는 사람에게는 성가시고 까다로운 트러블메이커일 수도 있지만, 상대편 주장을 논리의 틀에 넣어본 뒤 스스로 수긍이 되는 순간 앙금 없이 깨끗하게 같은 편에 서는 게 바로 T중의 T,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엔팁이니까.



변론가형 사람은 고집스러우리만치 솔직하기도 하지만……진실규명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논쟁을 벌인다.


엔팁 활용법 3. 남들 다 하는 것처럼 맞추리라 기대하지 말기   


8 기능에서 3차 기능은 조금씩 쓰는 기능이지만 미숙하기 때문에 남에게서 얻으려고 하는 기능이다. 엔팁의 3차 기능은 외향감정(Fe)으로, 보편적이고 평균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일반적이거나 상황에 적합한 행동양식을 취하는 기능이다. 쉽게 말하면 눈치와 비슷해서 이 기능을 주기능으로 쓰는 이들은 여러 명이 모였을 때도 전체 분위기를 살피며 모든 사람을 챙기는, 사회성 또는 배려에 특화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외향감정을 3차 기능으로 쓰는 엔팁의 사회성은 원하는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발현된다고 할 수 있는데, 나만 하더라도 의도나 뉘앙스가 빤하게 읽히는 상황에서, '굳이 알아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아닌 것 같은데' 적당히 맞춰주지 못하고, '귀찮음을 무릅쓰고' 남들 하는 만큼 하지도 한다. 그래도 아주 애쓰면 못하지는 않는 않는 편이라 예를 들어 마음이 동하는 모임과 내키지 않는 모임에서의 텐션 간극이 매우 크기도 하도, 그 점 때문에 감정기복이 크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내 얘기다.


4차 기능은 필요하지만 없어서 열등감을 느끼는 기능이라서 열등기능이라고도 하는데, 발전해야 하지만 쉽지 않고, 대개는 이 기능이 내게 필요하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ENTP의 열등기능인 내향감각(Si)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안정적인 선택을 하거나 기존에 반복되던 전통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능이다. 이 때문에 엔팁은 조직 내의 규범에 순응하고, 이제까지 해왔던 안전한 길을 따르는데 극히 어려움을 겪는다. 앞선 1,2,3 차 기능이랑 함께 발현되면 대환장이 벌어진다. 회사에서 계속 이렇게 해왔다고 하는데 논리적으로 따져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따박따박 질문하고 반대하다가 무뜬금 창의성 발휘해서 대안을 내놓는데, 운 좋게 그게 먹히면 승승장구하지만 잘 안 먹히면 그냥 튀는 애로 낙인찍힌다. Si기능이 열등해서 과거의 자신에게서 배우지 못하는 엔팁은 이런 패턴을 반복하고, 다음엔 꼭 환승이직을 하겠다고 결심하나 결국 언제나 사직서부터 내놓고 생각하는 건... 또 내 얘기다.  


민희진 씨가 1차 기자회견에서 보여주었던 모든 파격 언행에서 나는 엔팁의 3,4차 기능을 분명히 읽었다. 대중 마케팅에 도가 튼 프로페셔널이자 업계 1위 엔터사 출신으로서 이런 기자회견에서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 공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첫 회견 당시 처했던 상황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는 것도 본인의 판단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각종 비속어를 섞어가며 끌어간 그 두 시간마저도 철저하게 계산된 대중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같은 성격유형으로서 이입해 보자면 그저, 말도 안 되는 작당에 억울하게 당한 엔팁이 '규범이고 예의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증거 가지고 논리적으로 조져놓고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라고 두 팔 걷어붙인 결과일 뿐이었다. 할 말은 해야겠다며 도와주려고 앉아있던 변호사 분들 말문도 막아서던 그 장면은 다시 봐도 엔팁 인증 하이라이트였다.


진리를 추구하는 TP에게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확실하게 서 있고 타협하기 어렵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할 땐 시키는 대로 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계산기를 뚜드려 봐야 한다는 게 우리가 사는 현실 속의 보편적 규범이다. 나도 십 년 넘게 직장 생활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주장이 강한 편이다' '타협하는 법을 배워라' '유연했으면 좋겠다' 등의 평가를 받는다. 더러워도 이게 사회생활이겠거니 하고 굽히고 들어가게 된 '사회화된 엔팁'이 민희진 씨 기자회견을 보면서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듯한 쾌감을 느낀 건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아도, 남들 다 하는 대로 정해진 격식에 맞추지 않아도, 각 잡고 필요한 말만 아껴서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서. 그렇게 하고도 압승하는 민희진에 나를 투사한 셈이다.




이 글의 원제목은 '엔팁이 회사생활하기 힘든 이유'였지만 여기까지 쓰고서는 지금의 제목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조직생활하기 힘든 엔팁도 자기 강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SM의 핑크빛 전성기를 이끌었던 민희진 씨와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으니까. 누군가 자기 주변에서 고군분투하는 엔팁을 발견한다면 그를 잘 활용하는데 이 글이 부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엔팁은 회사생활이 힘든 성격이 아니다. 엔팁을 담을 수 있을만한 회사가 드물 뿐이다.


지난달 재판결과 이후의 실무들과 사내 정치가 더 큰 산이라고 하지만 원래부터 좋아했던 뉴진스를 계속 응원할 뿐 민희진 씨는 별로 걱정이 안 된다. 내가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둔다 했을 때마다 내 걱정은 하나도 안 한다던 동료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비판과 논란이 있더라도 앞뒤 안 재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그를 응원한다. 별난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른 소리를 하는 그가 ENTP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누가 뭐래도 나는 영원히 엔팁으로 살고 싶다.


* 참고로 민 대표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는 것을 보고 F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FP의 눈물의 이유가 주로 내 감정을 알아주기 원하거나 알아주지 않는 게 서운해서라면, TP형의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어떻게 해석될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감정의 서핑을 타다가 복받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T가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는 로봇인 줄 아는 건 T가 감정이 없다는 오해에서 나온 오류다. T의 감정feeling은 순서상 사고thinking 다음에 나오는 것뿐, 그 강도와 민감도는 개인차가 크다.  


* 엔팁으로 알려진 유명인으로는 민희진 외에도 이찬혁, 권지용, 설리, 이제훈, 이진욱, 제시 등이 있다. 이 명단만 봐도 모두 보통내기가 아닌 게 보이지만, MBTI를 알기 전부터 당당한 애티튜드를 비롯해 여러 면에서 내겐 극호인 인물들이다. 하지만 버닝썬 정준영도 있다… 이런 ㅆ… 역시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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