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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의 책무

남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더 많이 탐구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하는

by 담쟁이

‘매사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해되지 않는 업무는 선뜻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직장에서 이 특성은 미덕일까 민폐일까?’


작년 여름 입사한 새로운 리더와 합을 맞춰가면서 생긴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자 했던 나의 지난 몇 달은, 대략 세 단계의 대응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기: 무조건적 지지와 협조를 통한 적응 지원 (초반 4개월)


구조화된 의사결정 체계가 있다기보다는 기회에 따라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게 장점인 우리 조직은 아마도 그가 일했던 문화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나는 이전 직장에서 그가 이십여 년간 몸담았던 조직과 협업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그 간극이 얼마나 클지 어렴풋하게나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여러 모로 유별난 우리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그가 학습하고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외부 경력직이 조직에 잘 안착하려면 전폭적인 지지를 통해 하고 싶은 것을 잘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는 점은 입사 초기 내 경험을 통해 느낀 바이기도 하니까, 그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포텐셜을 터뜨리기까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협업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면서 특정 팀의 기능과 역할을 건너뛰고 독자적으로 일을 하려고 할 때도, 조직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나 협업 요청이 왔을 때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줘서’, ‘이해가 안 된다', '이 조직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나 보네요'라는 말을 거듭하는 그를 보면서도, 나는 필요한 설명을 하고 질문에 답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았다. 당시만 해도 '아, 나보다 훨씬 문제의식이 큰 사람이구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니까, 내가 이미 익숙해져서 못 보는 것들을 보실 수도 있겠다' 정도로 받아들였다.


몇 개월이 가도 그의 문제의식은 잦아들 줄 몰랐고, 특히 지난 경력 중에 경험 못했을 새로운 업무들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단번에 흔쾌히 받는 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협업 요청을 하는 팀에서도 자연스레 팀의 최상위 리더인 그분보다는 좀 더 우호적인 중간리더들이나 실무 팀원들을 통해 업무 요청을 하게 되면서 팀의 업무 혼선이 잦아졌다.




2기: 완곡한 피드백을 통한 행동수정 요청 (2개월)


그가 본인의 문제의식 때문에 멈춰 서면, 해결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는 일은 중간 리더들의 몫으로 넘어가는 게 수개월째인데 이 점을 문제로 인지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업무 중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리더로서 팀을 대표해해야 할 일을 잘 맡아주시면 중간 관리자인 제가 실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처럼 팀 퍼포먼스 개선을 위한 행동 수정 요청을 주 내용으로 완곡한 피드백을 하기 시작했다.


완곡하게 짚는 문제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말해 달라며 전혀 짐작도 못 하는 듯한 눈치이던 그는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이 나오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내가 리더로서 하지 않고 있는 일이 특별히 뭐가 있느냐, 다른 팀에서 내가 아닌 사람에게 업무를 지정해서 요청하는데 내가 개입할 여지가 어디에 있느냐, 이 조직은 여전히 아무것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라고 답했다. 내가 묵묵히 조력자의 역할을 하던 반년 간, 어쩌면 내가 그 역할을 했던 까닭에, 리더의 할 일에 대한 기준이 매우 다르게 세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야 할 일은 아주 분명해졌다. 서로 기준을 맞추기 위해 보다 분명한 대화와 직설적인 피드백을 해야만 할 때라고 판단했다.




3기: 직접적인 피드백과 이로 인한 갈등 (최근 3개월)


입사 반년이 훌쩍 넘도록 내부조직을 향한 문제제기를 그치지 않으며 자기 역할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그에게, 어느 시점부터는 직접적인 피드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돌려 말하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사례를 들어달라’라고 요구했지만, 내놓는 사례마다 ‘내 의도를 곡해했다’는 방어적 발언만 하는 통에 문제의 본질은 건드리지도 못했고, 좀 더 쉽고 직접적인 설명은 그를 파르르 떨게 하는 급발진 버튼이었다. 내가 3단계에 들어선 이후로 우리의 일대일 대화는 언성을 높이지 않은 적이 없다. 단지 대화하는 것만으로 진을 쏙 빼놓았지만 그래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탑다운으로 떨어지는 일에 대해 이해가 어려운 건 팀원들이 더했으면 더할 텐데, '이해 안 된다'라고만 하면서 버티지 말고, 팀을 대표해서 그 일에 대한 조정이나 설명, 둘 중에 하나는 확실히 맡아주셨으면 좋겠다"와 같은 류의 피드백을 할 때마다 그는 내게 되물었다. “이런 점에 문제의식 가져본 적 없으신가요?” 그리고 본인은 문제가 있으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꼭 덧붙였다.


그가 말하는 나는 너무나 화합이 중요해서, 조직의 문제점 앞에서도 침묵하고 좋게 좋게 가지고 본인을 설득하는, 본인이 개혁해야 할 이 조직의 일부였다. 내가 이렇게나 분명하게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문제제기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은 잘 인지가 되지 않는지, 같은 지점에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나에게 평화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자신의 외로운 투쟁에 대한 결의를 밝혔다. 어쩜 이렇게 자기 말만 반복할 수 있을까. 한 시간이 넘도록 진전 없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어떤 날의 대화 끝에, 분노를 넘어 좌절감을 느끼며 지난 몇 달간 이 사람을 돕고 배려하려던 내 노력은 다 헛수고였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한다면 그에게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기 싫어한 우리의 모습을 타인에게서 볼 때 우리는 비로소 분노한다.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화나게 하지 못한다.‘



지난 직장생활의 경험과, 오랜 동료들의 증언이 말해주는 나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의문 앞에서 질문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판단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모으고, 수집한 정보가 '옳지 않다'라고 말할 때 서슴없이 멈춰 세워 옳지 않다고 말하는, 적어도 나는 그렇게 나를 인식하고 있다. 뭐든 좋게 좋게 넘어가지 못하는 나를 불편해하거나 태도를 고쳐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이런 나의 메타인지가 영 틀려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유독 이 사람을 못 견뎌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게 내가 싫어하는 나 자신의 모습 인가 하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내 반골기질을 제대로 파악도 못한 사람이 내가 평화주의자 입네 함부로 떠드는 게 적잖이 언짢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이렇게 멋진 기질을 가지고도 잘 활용하기는커녕 문제만 일으키는 그의 처신이다.

내가 가지고 태어난 ‘불편함‘과 ‘문제의식‘이라는 기질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 답을 찾는 쪽으로 발현되어 왔다. 그냥 넘길 수 없을 때마다 멈춰 서면 앞으로 나아가는 게 불가능했기에, 결국에는 일을 해내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하고, 더 많이 탐구하고, 더 많은 고민을 하는 쪽으로 나를 사회화시켰다. 그건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의 책무이자, 그 기질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소양과도 같다.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한 그와 나의 결정적 차이는, 이 책무를 인지하고 최선을 다하는지의 차이다. 문제를 발견한 사람이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서 열외일 수 없다. 자기가 풀 수 없는 문제라면 누가 풀 수 있을 것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역할까지가 매사에 문제의식이 많은 사람의 몫이다. 거기까지는 미치지도 못했으면서 ‘나는 문제가 풀리기까지는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다’라며 뭉개는 건 그저 트러블메이커에 지나지 않는다.


성급하기도 하고 가끔 틀린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정보에 근거해서 내 판단을 수정할 수도, 잘못을 인정할 수도 있는 이유는 내가 문제의 답을 찾으려는 사람인 까닭이다. 새로운 문제가 눈앞에 계속 나타나고, 풀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는 나의 이 기질을 그래서 사랑한다. 그러니까 이 기질을 어설프게 흉내만 내는 그를 좋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신이 얼마나 문제 있는 사람인지 내일도 또 직면시켜줘야 한다. 교육이 되거나, 동의 못한 채로 태도를 바꾸거나, 한 명이 나가떨어지거나 아님 둘이 분리되거나 어느 쪽으로든 해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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