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편해문 작가님의 도서 제목이다. 사실 이 문장을 알게 된 것은 작가님의 도서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에 대한 남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작은 아버지댁 부부의 입을 통해서였다.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고, 놀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하며, 아이들은 놀아야 할 의무가 있다. 작은 아버지댁의 네 아이들은 작은 시골학교에 다니며 마음껏 뛰어놀고, 동물들과 교감하며, 세상을 몸으로 경험하며 배워간다. 처음에는 걱정이 앞섰던 할머니께서도 시골 동네에 함께 생활하시며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시니 안심하시게 되었다고 하셨다.
20대도 아이다. 20대도 놀고 싶다. 놀아야 할 권리가 있다. 아이처럼 순수하게 행동하고 싶은 나이다. 10대를 지나 20대 중반으로 접어들 때까지의 나는 순탄했다. 진단받지 못한 우울증도 겪어보았고, 스쳐간 인연들로 힘들어하던 날들도 있었으며, 행복한 가정에서 보이지 않는 결핍도 있었다. 그런데 왜 순탄했다고 말하느냐 묻는다면, 주변 20대 친구들은 나보다도 더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을 하며 20대 중반이 되어갔으니 내 지난 삶은 순탄했다 말한다.
글을 쓰는 나는 올해로 스물다섯이다. 모두가 놀려대는 반 오십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나이대는 다양하겠지만 20대 중반의 독자들이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풀어낼 이야기는 공감을 얻을 수도 동정을 얻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독자가 얻는 바가 있음을 바라며 글을 써 내려간다.
어른들은 모르는 그런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고작 25년 살아내고 버텨낸 우리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닿게 된다면, 알게 된다면, 곁에 있는 우리를 미안하다 한 번 안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