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야. 부디. 내 사랑아. 내 희망아.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연기처럼.

by 해차

9.

아이가 작은 방에서 부스스한 얼굴로 나온다. 눈가를 비비며 잔걸음으로 나오는 아이. 삐죽한 머리가 여간 사랑스럽다. 갓 아침을 맞이한 아이의 얼굴은 포근하다. G와 동거를 시작하면서, 나는 G를 살뜰히 챙겼다. 셋이서 나란히 앉아 아침을 먹고, 그가 책방에 출근할 때 입을 옷을 미리 골라놓고, G가 출근하면 남은 짐을 정리하고 집안을 치우며 하루를 보냈다. 더 이상 책방에 가진 않았다. 책방에 가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책이면 알아서 찾아주는 G 덕분에 나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얘, 너도 좋지? 아빠가 생긴 것 같지 않아?'

아이는 아빠라는 단어에 흠칫 놀랐다가도 이내 환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행복한 얼굴, 나른하게 드리우는 오전의 햇빛. 모든 게 완벽한 하루다. 요즘 드는 생각이 있다. 아무래도 G가 어딘가 아픈 것 같다. G가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알았지만, 적어도 투명인간 취급을 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뛰어가는 데도 G는 아이를 못 본 척하고 새치기를 하여 화장실에 들어갔다. 뿐만 아니라, 식탁에 식기를 세팅하는 순간에도 G는 항상 두 명의 식기만 챙겨 식탁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품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 둘 사이의 방해꾼이라 여겨 어린 질투를 하는 것인지 생각했다. 그러기엔 G가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나만을 바라본다. 마치, 질투를 느낄만한, 소유욕이 어긋날만한 그런 존재가 없는 것처럼.


아이와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G의 집으로 이사 온 후로 대부분은 외출할 때 아이와 함께 동행하지는 않았다. 아직 바깥세상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색연필이나 종이, 펜과 노트와 같은 것처럼 집에 가지고 놀만한 것들을 선물해 주니 혼자 있는 것도 어렵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나온 외출이라 아이도 많이 신나 보인다.

‘어때? 오늘 날씨도 좋고, 오랜만에 나랑 나오니까 좋지? 요즘에는 바깥세상이 그리 험악하지 않아. 다들 잘 어울려 살아가는 중이야.’

아이는 꿈에 그리던 풍경을 본 듯이 황홀하게 눈앞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수 없이 들어왔을 총소리와 폭탄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 죽어가는 신음과 같은 불쾌한 소리들도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아이의 눈에 벅차오르는 눈물이 고인다. 그런 아이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마트로 들어갔다. 우리는 함께 먹을 반찬들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샀고, 오늘은 떡볶이도 해 먹자며 신나는 얼굴로 아이와 도란도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이 어쩐지 나를 측은하게 보는 듯했지만, 그런 시선 따위 중요치 않았다.


장을 보고 아이에게 잠깐 문 앞에 서있으라고 한 뒤, 차를 가지러 갔다. 차에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아이에게 기다리라고 한 자리에 아이가 보이질 않는다.


머리가 새하얗게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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