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건 기본적으로 눈으로 보고 화면에 옮긴 것을 다시 다른 누군가가 눈으로 보며 즐기는 예술입니다.
'본다'라는 행위를 일종의 중심 가치core value 인 예술이죠.
처음 미술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가면 다양한 수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화가로써의 기초 소양을 개발하기 위한 것인데, 개중 많은시간을 차지하는 것이 인체 소묘입니다. 사람의 몸은 화가가 갖추어야 할(요즘의 개념으로 화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는 너무 커다란 주제라서, 우선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화가로 여기자면) 모든것을 연습하고 익히는데에 매우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눈동자는 반짝이고 촉촉하게 그리는 법을, 머리카락은 가볍게 나플거리며 얹혀 있는 느낌을 알아야 하고, 팔의 이두와 삼두는 단단한 곡선을, 콧망울은 부드러운 곡선을 표현 할 줄 알아햐 합니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데로 그림으로 옮기고 싶은 것이 화가가 원하는 것 이고, 그 방법을 연마하기 위해 다들 나름데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노래 제목 같은 이 표현은 아주 옛날 부터 오늘 날 까지도 많은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아주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지금 내가 보는 저 아름다운 평경을 보여주고 싶다.'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 '너무 못 그렸다'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죠. 특히 에두아르 마네의 경우 인상주의을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던 화가라 할 수 있는데, 당시 발표했던 <풀받위의 점심/ 1863년 작>에게 쏟아진 비판은 아마 작은 책 한권 분량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마네도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려치우고 싶지 않았을까요.
수많은 비판에도 인상주의 화가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놓지 않았던 것은 그것만이 옳은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 아닐까요.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그리느니 진실된 그림을 그리겠다. 날씨에 따라 심지어 기분에 따라 모든게 달라 보이는데 어떻게 늘 나무는 푸르고 피부는 희고 곱냐. 라는 거였죠.
'보이는 데로' 그린다는 게 때론 하찮은 일 처럼 표현되기도 합니다. 예술가로서의 영감이 없더라도 손 기술만 익히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이죠. 특히 광고 포스터나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사람을 격을 낮춰 '도장쟁이'따위로 부르기도 했습니다.(같은 맥락에서 로트렉도 많은 비판을 받았죠. 미술의 역사를 보면 참 잔잔한 슬픔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커다란 회화 발전의 시작은 '보이는 데로'그리고자 했던 존경할 만 한 직업정신(이라고 불러도 되겠죠? 그분들도 그림으로 생계를 이었으니)에서 시작 된 것이고, 어미에 '내가' 라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는 것 입니다.
가령
(내가) + 남의 집 창문 밖에서 + 배고픈 상태로 + 식탁위의 생선과 고기따위를 + 보이는 데로
(내가) + 우리집 부엌에서 + 배부른 상태로 + 식탁위의 생선과 고기따위를 + 보이는 데로
위 두 그림은 아주 다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