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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 여행, 사진 산문 연재를 시작하며

천상의 두 나라

by 해달 haedal


여행


영어에 여행에 해당하는 말은 journey, travel, trip 세 가지가 있다. journey는 비교적 장기간의 여행, trip은 근거리 짧은 여행, travel 은 그 사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우리말은 구분 없이 ‘여행’이라는 말에 다 담아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자연적 신체조건상으로는 장거리 여행에는 장기간이, 단거리 여행에는 단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과학, 운송수단의 발전이 비행기를 등장시켰고, 중국과 일본 등 한국을 벗어난 해외, 즉 장거리 여행을 하루 삼사일, 하루 이틀 만에 가능하게 했으니 '장거리 단기간 여행'이라는 조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장거리의 길이가 길고 시간이 많이 압축되면 시차라는 현기증을 겪게 된다. 인간의 자연적 신체를 넘어서는 시간과 공간 경험이라는 것을 몸이 알려주는 것.


해외여행은 공간적으로도 거리가 크지만 그에 따른 언어적, 문화적 차이가 주는 신선함으로 동경의 대상이 된다. 시간과 노력,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설렘도 기대도 커진다. 여행 날짜를 정하고, 비용을 마련하고, 자잘한 준비를 하고,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해서 세부 일정을 의논하고... 이런 과정도 즐겁다.


여행에 있어서 나는 부지런하거나 용감한 편이 아니어서 직접 계획해본 적은 많지 않다. 카메라를 들고 일행을 따라다니는 여행이지만, 그럼에도 적극적인 감상은 존재한다. 오히려 숙소나 이동, 식당 등 여행 일정을 신경 써야 하는 데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런 것을 더 잘하는 이에게 맡기고 고마운 마음으로 따르면서 이국에서의 경험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


무엇이든 새롭게 느끼는 성향도 풍부한 여행 경험을 만들어 준다. 작고 소박한 것은 소박한 대로, 규모가 크거나 화려한 것은 또 그것대로 멋진 매력이 있다. 더불어 문화적 경험, 중국이라면 한시나 수묵산수화 서예 등의 고급 예술에서부터 무협 소설이나 만화 영화 등 대중매체를 통한 다양한 장르에 걸쳐 형성된 내적 상상력 등이 여행을 풍부하게 해준다. 해당 지역에서는 진부해진 것조차 그 지역과 문화가 낯선 여행자에게는 신선하게 보일 수 있는 것도 장거리 여행의 강점이다. 삶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행복은 어느 정도 상대적이어서, 물질과 절대 무관하지 않지만 물질에 반드시 좌우되는 것 같지도 않다.


여행과 관련해

많은 사람들이 글을 썼다. 프랑스의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에서 역사와 철학, 문학, 예술에 걸쳐 폭넓은 생각을 전개한다. 공항과 비행기에 관한 서술, 이국적인 것, 모더니스트 시인 보들레르와 현대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서술 등... 이번 연재 초반에 함께 하고자 한다.


2002년 여름, 첫 중국 여행 이후 4년간 연초 1월, 겨울 방학기간에는 일본을 연중 8월, 여름 방학, 휴가기간에는 중국을 대개 3박 4일의 일정으로 짧게 다녀왔다. 그 여행 동안 한국과 이웃한 두 나라, 한자 문명을 공유한 한, 중, 일 동북아 3국이 갖는 보편성과 고유성에 매력을 느꼈다. 마침 집에 중국과 일본에 관한 문학적 텍스트로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리스의 문호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가 있었다.


1930년대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인상을 쓴 것으로 그 당시 사회 풍경을 그려볼 수 있고, 현재의 중국과 일본에서 느낀 인상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로왔다. 한국과는 다른 중국에서 많이 보는 특성들, 또 일본에서 많이 접하는 특성들, 한중일의 공유 지점과 서로 다른 독특한 지점들을 느껴보는 여행은 유람과 함께 미학적 탐구이기도 하여 각 나라나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초반, 공항과 비행기 등 여행에 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부분의 폭넓고도 미세한 서술은 알랭 드 보통의 텍스트를, 중국 특히 일본 여행 사진 산문집 서술 과정에서는 카잔차키스의 텍스트를 종종 펼쳐보려고 한다.


함께할 책 :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 정영목 옮김, 이레.

카잔차키스, <천상의 두 나라>, 정영문 옮김, 예담


중국문화와 문학, 중국 여행 관련

진순신, <시와 사진으로 보는 중국기행>, 정태원 옮김, 예담

위치우위, <중국문화 답사기>, 유소영, 심규호 옮김, 미래 M&B

공원국, <여행하는 인문학자>, 민음사


동양 미학 관련

이마미치 도모노부, <동양의 미학>, 조선미 옮김, 다올미디어


심층 무의식과 상징 관련

칼 구스타브 융,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이부영 옮김, 집문당


사진 관련

롤랑 바르트, <밝은 방> 혹은 <카메라 루시다>, 여러 출판사 판본으로


그 외 인간 경험, 심리, 예술, 문화 관련해

프로이드, 듀이, 로티, 벤야민 등... 텍스트의 목록은 줄어들 수도,

더 길어질 수 있다.




베이징, 첫 해외여행의 추억

중국과 일본 여행의 기원


prologue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2002년 7월 중순 어느 여름밤, 인문학 연구자들인 K와 P, 그리고 H 세 사람이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대화는 여름밤처럼 무르익어 여름휴가 장소에 이르렀고 국제지역학 연구로 중국을 자주 방문했던 P가 K에게 중국 여행을 제안하게 되었다. 여행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보름이 지나지 않아 K는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합류했고, 네 사람은 8월 초 중국 여행을 떠났다. 지역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 처음 가는 나라는 먼저 그 수도를 가 보는 것으로 일단은 원칙을 정했다. 그 원칙은 이듬해 일본 여행에도 적용되어 도쿄가 첫 일본 여행지가 되었다.


그 첫 중국 여행 이후, P는 현재 한국의 한 대학 연구소에서 중국의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고 있고, 중국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던 H는 중국에 유학을 가서 아름다운 중국 여성과 사귀어 결혼하고 대학에서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나와 K는 그 첫 중국 여행 이후 이듬해에는 가까운 일본 도쿄 여행을 가게 되어 이후 4년간 매년 8월 여름이면 중국을, 1월이면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다. 이렇듯 삶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서 미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한동안 중국과 일본 여행은 지속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첫 중국 여행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일본 여행으로 한국과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키워왔고 이제 그 사진들을 꺼내어 일본과 중국 여행에 관한 산문을 써 내려가려고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국의 예전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던 당시의 중국은 이후 눈부신 고도성장을 이어왔다. 한국과 일본은 10년 차이가 난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는데 일본 사진을 꺼내 보니 현재의 한국이 보인다.



이야기를 하면서 혹은 글을 쓰면서 경험과 즐거움이 배가되듯, 중국과 일본 여행에 대한 동경을 지니고 여행을 준비하고 있거나 중국과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그 기억을 이런저런 감정으로 되새기는 사람들과, 무엇보다 여행의 설렘을 사랑하는 이들과 같이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 더불어 같은 한자권 문화를 공유했던 동북아 3국, 우리와 같은 듯 다른 중국과 일본의 문화와 미학을 가볍게 산책할 것이다.



K

K의 여행은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여유와 편안함의 추구가 그 정수이다. 그는 결코 많은 곳을 다니지 않는다. 번잡함과 피로를 면하고 시간을 지키기 위한 교통비와 맛있는 음식을 위한 식사비, 편안하고 정갈한 잠자리를 위한 숙박비를 아끼는 법이 없는 그의 평소 여행 철학은 해외여행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K는 신발과 가방, 허리띠는 하나씩만. 다 헤어질 때까지 쓰고 옷이나 물건에 관심이 없다. 전공 연구와 일 외에는 TV로 바둑이나 야구 중계 보는 정도의 취미 생활이 다인 부엉이 K는 지인들과의 식사를 겸한 술자리와 다음날 늦게까지 이어지는 숙면과 여유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 K에게는 친구와 선후배가 많다. 그의 주변엔 그를 찾는 친구와 선후배들로부터 연락이 이어진다. 어떤 이는 자주, 어떤 이는 1년에 한 두 번 정기적으로 그를 찾아 대화와 음식과 술을 나눈다. 같이 밥 먹으며 사람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결혼 전이든 후든 변함없이 새벽까지 기꺼이 술친구가 되어주는데, 알고 보면 밤낮이 뒤바뀌어 있고 움직이기 싫어하며 맛있는 음식과 술을 좋아하기에 늦게까지 느긋한 술 상대가 필요한 건 다름 아닌 그 자신이다. 나도 좋고 너두 좋은 자리이타라고 해야 할까, 어쨌건 이번 여행도 그의 이런 폭넓으면서도 깊은 친교를 보여준다. 중국어를 못하고, 중국 지리도 모르고, 해외여행이라곤 가 본 적도 없지만 중국 연구자들이 가이드를 해주는 수준 높은 중국 자유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꽃보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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