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시선, 아빠의 시간. 8부
아빠,
아빠 딸, 해담이에요.
아빠가 지어주신 '해담'이라는 제 필명, 정말 잘 쓰고 있어요. 덕분에 마음을 꺼낼 때마다 아빠가 만들어주신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선한 생각을 담게 돼요.
‘딸’이라는 단어 앞에 어떤 수식어가 어울릴까 한참 고민했어요.
제가 적는 말보다, 아빠가 저를 생각하실 때 어떤 단어를 붙이실지 더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비워두기로 했어요. (이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가장 먼저 스치신 단어를 알려주세요. :))
사실, 이렇게 편지를 시작하려니 어떤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어요. 아빠께 편지를 쓴 게 언제였는지. 아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부모님 두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적었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나이가 좀 더 들었다는 핑계로, 진솔한 마음을 전하기보단 바쁘게 지내며 안부를 묻는 전화 한 통에 그쳤어요. 늘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떤 마음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미뤘던 게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요즘 들어 제가 사랑을 배우고, 인생의 무게를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요. 사랑을 할수록 엄마가, 그리고 삶을 이해할수록 아빠의 의미가 제 안에서 더 깊고,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두 분은 어떤 마음으로 그 모든 순간을 지나오셨을까, 만들어오신 지금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자주 생각하게 돼요.
그런 질문 속에서 아빠와 엄마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두 분의 삶을 지금보다 좀 더 멋지고,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 분명 더 있겠죠.하지만 앞으로 그런 완벽한 시간은 아마 평생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에 글로 남겼고, 이제 그 마지막을 이렇게 편지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제가 적어낸 시선들이 아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내심 걱정도 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려낸 이 마음이 언젠가 아빠에게, 우리들에게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거라고 믿어요.
아빠는 어릴 적 제게 한없이 크고 든든한 존재이면서도, 때로는 무섭고 멀게 느껴지는 분이었어요. 엄마에게 폭언을 하던 아빠의 모습은 어린 저에게 지울 수 없는 혼란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동시에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도 함께 있었기에, 저는 늘 복잡한 감정으로 아빠를 바라봤던 것 같아요.
그 시절 아빠가 삼키고 또 삼키던 말들, 나누고 싶었지만 나누지 못했던 그 모든 마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아빠가 담아두셨던 수많은 날들과 묵묵히 감당해 오셨던 삶의 무게를 저는 지금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그 시간들을 곱씹을수록 아빠의 고독이 느껴져요.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그 모든 걸 견디셨을까, 얼마나 많은 날들을 혼자 버텨내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져요.
요즘 들어, 제가 참 어려운 딸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어린 시절부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는 칭얼대기보단 침묵을 택했고, 혼자만의 방법으로 이해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집이 세고 영악한 성격으로 자라났어요. 그런 탓에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불편한 사람으로, 때로는 두 분의 가슴에 못을 박는 언행들로 상처를 드리는 날카로운 딸로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여전히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어린 생각과 행동들로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는 모습도 많고요.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정작 그것을 꺼내는 게 서툴렀고, 두 분께 다가가는 법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지금, 아빠는 제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요.
철부지인 저에게 늘 가장 큰 사랑을 준 사람, 그리고 삶의 무게와 사랑을 가르쳐주신 분.
시장 한가운데서 묵묵히 쌀포대를 나르시던 모습은 그저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그 장면이 사실은 얼마나 묵직했는지, 그 속에 얼마나 깊은 사랑과 책임감이 담겨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어린 시절의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 속에서, 아빠는 묵묵히 가족을 위해 가장 크고 소중한 것들을 짊어지고 계셨던 거예요.
쌀가게를 닫으신 뒤에도 여전히 쉼 없이 배우고, 성장하며 삶을 살아가시는 모습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아빠의 모습 중 하나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크고 작은 온기를 전하시며,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시는 아빠는 저에게 진정한 나눔과 베풂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셨고요. 덕분에 저도 부족하지만 아빠를 따라 제 방식으로 따뜻함을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린 시절, 아빠는 제게 그늘이 되어주던 커다란 나무였어요. 제가 어떤 상황과 모습이더라도 아빠는 늘 그 자리에 계셨지요. 이제는 저도 그 나무 아래에서 자라난 작은 나무가 되어, 누군가에게 그늘을 드리우며 쉼을 주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제 아이에게, 제가 아빠에게 받은 사랑을 아빠처럼 전해주고 싶고요.
요즘은 조금씩 약해져 가는 아빠를 볼 때마다, 밀려오는 감정에 저 스스로 한없이 약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수록 저는 더 의젓한 딸로, 때로는 든든한 친구로, 아빠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릴 수 있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전 아마 평생 부모님에겐 철부지일 거예요. 그래도 그런 철부지로 계속 남고 싶어요. 아빠 곁에서 아이 같지만 사랑받는 딸로, 또 아빠를 걱정하고 챙길 수 있는 든든한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아빠.
영원한 내편이자,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 주는 남자.
나만의 히어로. 동수 씨.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제 곁에 있어주세요.
언제나 존경하고 매일 사랑합니다.
아빠의 사랑스러운 막내딸, 해담 올림.
추신. 아빠,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조만간 데이트를 신청합니다. 술 한잔 나누며, 깊숙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엄마는 질투하겠지만~ 우리 둘이서요!)
이 세상에서 제일 묵직하고 위대한,
나의 아빠, 나의 영웅.
존경하는 담윤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아빠라는 이름은 늘 무거웠습니다.
그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던 어린 날부터, 조금씩 그를 이해하게 된 지금까지.
위로만 느껴지던 아빠의 존재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시장 한가운데 쌀가게에서 시작된 아빠의 삶.
딸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사랑과 희생, 그를 통해 배운 것들. 그리고 전하고 싶은 아이의 고백.
이 이야기는 아빠와 나, 그 사이의 시간과 사랑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