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도연 Jul 02. 2019

'외계행성:EXOPLANET'을 쓰고 나서 이것저것

그리고 브런치 글쓰기 테스트

2018년 10월 8일, 출판사 그래비티북스에서 메일이 왔다. 과학교양서 시리즈인 Gravity Knowledge의 2호 집필을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집필은 2019년 3월까지. 말도 안 된다. 나는 전업작가가 아니다. 글은 새벽이나 주말에만 쓸 수 있다. 반년 만에 장편소설 쓰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과학교양서를 쓰라니. 블로그 같은 곳에 미리 써둔 게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결국 썼다. 아홉 달 걸렸다. 책은 6월에 인쇄되어 7월에 나왔다.


2006년, 일본 유학을 앞두고 일본어를 공부할 때 수업 중 작은 발표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평소와 마찬가지로 칼 세이건에 대한 존경을 늘어놓으며 언젠가는 '코스모스' 같은 과학책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2010년, 일본 국립천문대 강의실에서 대학원 면접을 봤다. 거기에는 칼 세이건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칼 세이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역시 칼 세이건처럼 과학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수십 년을 현장에서 연구해온 천문학자들 앞에서. 참고로 이때 면접 온 다른 학생들은 모두 양복을 차려입고 있었는데 나는 혼자 흰색 셔츠에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건지.

아무튼 그래서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과학책을 쓰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목표는 아니었다. 그냥 희망이었다. 그런 와중에 뜬금없이 SF소설집이 나왔다. 서른을 막 넘긴 시점이었고 과학책도 아니었지만, 일단 책은 책이니 소심하게나마 목표를 이룬 거려니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집이 나온 뒤 11개월 뒤에 내 전공이었던 외계행성 천문학을 다루는 과학책 '외계행성:EXOPLANET'이 나왔다. 되짚어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여전히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외계행성'을 쓰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외계행성 천문학은 천문학 세부분야 중에서도 등장한 지 30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분야였기 때문에 낯선 개념이 가득했고 그런 만큼 다른 분야와도 연결이 복잡했다. 그걸 책 한 권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많은 세부사항을 덜어내야 했다. 하지만 내가 감히 이 분야 속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또 소설이면 마음 내키는 대로 쓰면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더라도 별 문제가 아니지만 과학책은 다르다. 문장 하나에 담긴 사소한 정보도 사실검증을 거쳐야 한다. '내가 그렇게 알고 있으니까'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도 배경이 되는 자료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내가 공부하고 연구한 건 외계행성 천문학의 일부였던 만큼, 전체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다른 부분에 대한 자료도 필요했다. 여기에 천문학계에 있으면서 보고 들었던 천문학자들의 이야기 역시 1차적인 출처를 찾아 확인을 해야 했다.

그림도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관측기술 등을 설명할 때는 그림이 필수적이었는데 이것들은 모두 직접 그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기에는 고증 설명이나 디테일한 수정이 어려울 것 같았다. 오래전에 구입해두고 쓰지 않고 있던 벡터 이미지 에디터가 나를 살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NASA나 ESA, ESO, NAOJ 등 많은 연구기관들이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진이나 그림 자료 대부분을 출처만 표기한다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더 많은 곳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더라도 가끔은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외계행성'을 쓰는 동안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2019년 첫 반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 영화관에는 고작 두 번 밖에 가지 못했다. 가족과 보는 게 아니라면 집에서도 영화를 못 봤다. 그럼에도 시간이 부족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아내도 나만큼이나 집필이 끝난 걸 환영했다.


9개월 간의 여정을 마치고 컴퓨터 파일이 아니라 종이로 된 책의 모습으로 '외계행성'을 집어 들었을 때의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의외로 담담하면서도 크기에 비해 무거운 책의 무게가 물리량이 아닌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과학책을 쓴 것에 대단한 의미부여를 할 생각은 없다. 여기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중쇄를 할 만큼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이상 숫자로 보면 사실 손해에 가깝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목표 하나를 늦게나마 마무리 짓고 내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연구했던 것을 과학교양서라는 하나의 형태로, 그것도 예쁘게 디자인되고 깔끔하게 편집된 책으로 남겼다는 것은 나름 만족스러운 일이다. 


아, 물론 같은 조건에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안 한다.



여담 1.

참고자료 목록에 중요한 자료가 하나 빠진 걸 뒤늦게 깨달았다. 그것도 외계행성 첫 발견자인 미셸 메이어의 책이다. 참고자료가 많은 만큼 자료를 종류별로 나눠 관리했는데 마지막 통합목록을 만들 때 빠진 것 같다. 면목 없는 실수다.

Michel Mayor & Pierre-Yves Frei의 "New Worlds in the COSMOS: The Discovery of Exoplanets" (2003년, Cambridge University Press 출판)

메이어에 대한 이야기 중 많은 부분이 이 책을 참고로 했다. 이걸 고칠 방법은 중쇄를 하는 것 밖에 없으니 이걸 위해서라도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


여담 2.

책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우리나라에 외계행성을 다루는 책이 있는지 알아봤다. 일본에는 이미 여러 권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몇 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외계행성으로 검색해서 나오는 건 무관한 책들 뿐이었다. 며칠 뒤 도서관에 가서 한 권을 발견했다. '쌍둥이 지구를 찾아서'라는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리기는 했지만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혹시나 영향을 받을까 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만 가볍게 훑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다큐멘터리 한 편의 느낌에 가까웠다. 미국 천문학계 중심의 이야기였고 외계행성 천문학 자체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고, 주로 사람과 학계 사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직접관측이나 원반, 우주생물학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전문용어의 번역에도 문제가 조금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는 끝나지 않을 더 넓고 깊은 이야기였다. 외계행성 천문학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다.

'외계행성'의 초고를 다 쓰고 도서관에 가서 다시 이 책을 펼쳤다. 이번엔 조금 더 자세히 봤다. 천문학자 이야기 일부에서 비슷한 곳이 조금 있어 참고문헌을 살펴보니 내가 본 것과 같은 자료가 있었다. 천문학계 안에서는 꽤 유명한 일화들이었으니 이 부분에서 비슷한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대신 그 일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어 흥미로웠다.


여담 3.

브런치는 원래 '외계행성'의 집필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러지 못하고 지금까지 방치했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이후로는 외계행성 천문학의 최신 소식과 작가로서의 활동에 대해 이것저것 적어볼 생각이다.


'외계행성:EXOPLANET'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6085087

교보문고: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91189852047&orderClick=LAG&Kc=

예스24: http://www.yes24.com/Cooperate/Naver/welcomeNaver.aspx?pageNo=2&goodsNo=7523530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