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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연 Dec 01.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여담2: 헬렌 오브 트로이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트로이 10년 전쟁을 납득하게 되었는가?

왼쪽: 영화 속 질 발렌타인. 오른쪽: 게임 속 질 발렌타인

영화 <레지던트 이블 2(Resident Evil: Apocalypse, 2004)>에는 질 발렌타인이라는 캐릭터가 나옵니다. 원작 게임에서는 1편부터 등장한 아주 유명한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이라고 하는데 영화를 볼 당시엔 그런 건 몰랐지요. 유일하게 플레이를 해 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에도 나오지 않았기에 사실 지금도 잘 모르고요. 게임 속 클립 영상만 몇 개 봤는데 날카로운 눈빛과 거침없는 행동이 매력적이었어요.


영화 <레지던트 이블 2>에서 질 발렌타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시에나 길로리(Sienna Guillory)입니다. 시에나 길로리는 TV 영화 <헬렌 오브 트로이(Helen of Troy, 2003)>에서 헬렌(혹은 헬레네) 역할을 했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고등학생 때 도서관의 멀티미디어실에서 DVD로 처음 봤어요. 그리고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잊지 못하고 있다가 일본에 유학 중일 때 DVD로 샀고요. 그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시에나 길로리입니다.

<헬렌 오브 트로이(Helen of Troy, 2003)>

<헬렌 오브 트로이> 속 시에나 길로리는 내용은 아무래도 좋으니 헬렌이나 한 번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 혹은 이 헬렌을 위해서라면 트로이 10년 전쟁도 납득이 간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연예인에도 이성에도 관심이 없었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에나 길로리의 헬렌에게는 완전히 혼을 빼앗겼던 걸로 기억해요. 그래서 나중에 여자 사람 친구가 <레지던트 이블 2>에서 질 발렌타인이 정말 예뻤다고 말했을 때 크게 공감하며 <헬렌 오브 트로이> DVD를 빌려줬었죠. 헬렌은 예쁘지만 너무 길어서 중간에 자버렸다고 하더군요.

<헬렌 오브 트로이> 속 헬렌의 모습들

<헬렌 오브 트로이>는 애초에 TV용으로 만들어진 저예산 작품이었다 보니 완성도는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습니다. 전쟁 장면은 조금 어설퍼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헬렌/헬레네만큼은 지금까지 제가 본 모든 영상물 중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외모뿐만 아니라 철이 덜 든 말괄량이 공주에서 시작해 자신 때문에 그리고 자신을 명목 삼아 일어나는 비극을 목격하며 자기 운명을 고뇌하게 되는 캐릭터 묘사에서도요. 이에 비하면 다음해에 나오는 헐리우드 영화 <트로이(Troy, 2004)> 속 다이앤 크루거의 헬렌/헬레네는 따분할 만큼 평면적이었어요.


<헬렌 오브 트로이> 속 아가멤논.

<트로이>는 이야기 속 캐릭터의 비중이 파리스와 헥토르, 아킬레우스 3명에만 몰려있었던 감이 있지만 <헬렌 오브 트로이>는 TV 영화인 만큼 시간이 넉넉해서인지 다양한 캐릭터를 좀 더 풍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시에나 길로리의 헬렌과 함께 루퍼스 슈얼(Rufus Sewell)이 연기한 아가멤논이 유독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언제나 침착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큰 욕망을 품고 가장 참혹한 일을 저지른 인물이었어요. 바람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아가멤논이 저지른 일은 사랑 때문이 일어난 10년 전쟁보다 끔찍했지요. 배우의 강렬한 눈빛 역시 잊을 수 없고요. 1차원적인 정복욕 밖에 보이지 않는 <트로이>의 아가멤논과는 인상이 많이 달랐습니다.


<헬렌 오브 트로이>의 엔딩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가 널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난 당신을 사랑할 수가 없는걸." 등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길지 않은 대화는 많은 여운을 남겼어요. 뒤엉킨 욕망과 운명이 만들어낸 거대한 파국 뒤에 남은 허망함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그 허망함을 바라보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시선도요.


한국에서 <헬렌 오브 트로이>를 정식적으로 볼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고 DVD는 있는 것 같네요. 그런데 유튜브에 전편이 올라와 있더군요. 저작권 문제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2023년 4월에 올라온 이후 그대로 있는 걸 보면 저작권자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자막이 없어도 괜찮다면 이걸로 봐도 되겠지요.

유튜브에 있는 <헬렌 오브 트로이> 속 헬렌(시에나 길로리)에 대한 헌정 영상을 링크하고 이 여담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담 속 여담.

컨트롤러를 바꿨습니다. 복지포인트가 조금 애매하게 남아서 잔액 처리하는 김에 엑스박스 컨트롤러의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걸 사 봤습니다. 스페셜이라고 해봤자 색깔이 좀 다른 게 전부지만요. "스톰클라우드 베이퍼"라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블루 퍼리 캣"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왼쪽: 엑스박스 시리즈 X|S 무선 컨트롤러 스톰클라우드 베이퍼 에디션. 가운데&왼쪽: 블루 퍼리 캣.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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