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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연 Dec 02.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4: <옵저베이션>

Observation (2019)

|타이틀| 옵저베이션 (Observation)

|최초출시일| 2019년 5월 21일

|개발사| No Code

|유통사| Devolver Digital

|구입처| Steam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w/ Crossover 23.7),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옵저베이션 (Observation, 2019)>
탐사선 카시니가 촬영한 토성 북극의 육각형 폭풍


지금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사실 봄에 완성했어야 하는 이야기인데 밀리고 밀려 이제야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어요(편집장님 죄송합니다). 그러다가 <옵저베이션(Observation, 2019)>라는 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우 현실적인 우주정거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라고 하길래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조금 더 알아보니 토성과 토성의 극지방에 있는 육각형 폭풍이 중요한 키 이미지로 등장하더군요. 그리고 지금 쓰는 이야기에서도 토성의 이 육각형 폭풍이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아무래도 많은 부분이 겹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설프게 피해 가는 것보다는 겹치더라도 알고 겹치고 또 참고할 곳은 참고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SF는 아무래도 실존하는 과학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소재가 겹칠 때가 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고, 토성의 육각형 폭풍은 고리와 함께 토성의 가장 신비로운 특징 중 하나니까요. SF를 쓰는 작가라면 한 번쯤 다루고 싶어 할 만한 현상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게임 <옵저베이션>은 MacOS에서 돌아가지 않았어요.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박스, 그리고 윈도우 버전 밖에 없었죠. 그래서 게임 개발사인 No Code에 이메일을 보내서 MacOS나 iOS 버전은 만들 계획이 없냐고 물어봤습니다. 없다고 하더군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저희 집에 윈도우 PC가 아예 없지는 않아요. 맥북프로 2013년 모델에 부트캠프로 윈도우 10을 설치해 둔 게 있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 시도를 해봤습니다. 스팀을 통해 <옵저베이션>을 설치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실제 실행은 아주 버벅거리더라고요. 인트로 화면에서 메뉴를 선택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이 2019년에 나온 건데 2013년 맥북에 부트캠프 윈도우로 돌리는 건 어려웠나 봐요.


그래서 작년에 구입한 M2 맥북에어에서 다시 시도해 봤습니다. 애플실리콘 M시리즈부터는 부트캠프를 쓸 수가 없어서 가상 OS 소프트웨어인 '패러렐즈'로 윈도우 11을 설치했어요. 패러렐즈는 유료였지만 <옵저베이션> 플레이타임은 길어도 10시간 이내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14일 무료 체험판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잘 안 됐어요. 2013년 맥북만큼은 아니지만 역시 좀 버벅거리더군요.


 그래서 마지막 방법으로 '크로스오버'를 사용해 봤습니다. 크로스오버는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리눅스나 MacOS 같은 다른 OS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호환 레이어 소프트웨어로, 같은 목적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Wine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요. 크로스오버의 제작사인 CodeWeaver의 홈페이지에 가면 크로스오버를 통해 윈도우 소프트웨어를 다른 OS에서 구동했을 때의 호환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옵저베이션>은 별 다섯 개로 'Runs Great'라고 되어있더군요. 이거다! 싶어서 이번에도 14일 체험판을 설치했습니다. 실행해 보니 전혀 버벅거리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래픽이 뭔가 이상하더군요. 화면 위에 뜨는 UI가 게임 속 정거장 물건들 뒤로 가려지는 겁니다. 처음엔 원래 그런 시스템인가 했는데 유튜브에서 플레이 영상을 찾아보니 아니더라고요. 무시하고 해보려고 했지만 나중엔 진행을 위해 중요한 정보까지 가리게 되어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출장 중 자유시간 풍경.

그래서 다음날 크로스오버를 삭제했는데 바로 그날 오후에 크로스오버 업데이트 소식이 뜨더군요. 아주 많은 부분이 개선되었다면서요. 게다가 그날 하루 동안 사이버먼데이 70% 할인으로 10만 원쯤 하던 1년 구독료가 3만 원이 채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잠시 고민하다가 구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크로스오버 23.7을 설치하고 <옵저베이션>을 실행해 봤습니다. 아주 잘 돌아가더군요. 최고해상도에서는 화면 양쪽이 살짝 잘려서 해상도를 좀 낮춰야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아무튼 드디어 성공! 마침 이날부터 1박 2일 출장이 있었고 자유시간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출장 중에 끝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옵저베이션>의 기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엠마 피셔(Emma Fisher)는 우주정거장 '옵저베이션'의 승무원이자 의료 책임자입니다. 지구 저궤도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엠마가 정신을 차렸을 땐 정거장에 자기 혼자 밖에 남아있지 않았고요. 그래서 엠마는 동료들을 찾으며 사고의 원인과 정거장의 상태를 조사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게임의 플레이어가 맡는 캐릭터는 엠마가 아니라 우주정거장의 인공지능인 샘(SAM)입니다. 정거장 곳곳에 있는 카메라와 정거장 내외를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커넥션 스피어라는 기계공을 통해 엠마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거장의 다양한 시설을 조작하며 퍼즐을 풀고 정보를 모아 사고의 진실을 밝혀야 하고요.


긴장감은 별로 없었습니다. 액션도 없고요. 엠마는 샘에게 시간이 없으니 서두르라고 하지만 느긋하게 진행해도 별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퍼즐 게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게임의 매력 자체가 긴장이나 액션에 있는 게 아니라서 문제는 없었습니다. <옵저베이션>을 플레이는 동안 저를 즐겁게 해 주었던 건 실제 우주정거장을 조작하는 듯한 정교한 고증과 연출, 경이롭고 압도적인 풍경, 그리고 SF 마니아의 심금을 울리는 고전적이면서도 여전히 놀라운 스토리였어요.


우주정거장 옵저베이션은 전체적인 외관은 다르지만 실존하는 국제우주정거장 ISS의 구조와 설계를 참고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주와 우주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ISS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성지 같은 곳이기에 샘의 기계공을 빌려 정거장 곳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니고 살피는 과정은 아주 즐거웠습니다. 크고 작은 기계적인 부분부터 벽에 걸린 사진이나 잡지, 메모 같은 생활의 흔적까지, 게다가 시각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각종 소음과 작동음을 포함한 청각적인 부분도 실제 우주정거장처럼 정말 자세히 구현해 두었기에 정말 승무원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옵저베이션 정거장에서 바라본 풍경들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공식 홈페이지 예고편에서 토성 궤도에 있는 정거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길래 그냥 이야기합니다. 진행 초반에 정거장이 토성으로 이동해요. 그때부터 정거장 창문 밖으로 토성이 보이는 데 이 모습이 정말 경이롭고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창문이 보일 때마다 토성을 잠시 내려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가 샘이 정거장 바깥으로 나갈 때가 있었는데 이때 정말 혼을 빼앗겼습니다. 일부러 정거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전체적인 풍경을 내려다보기도 했어요. 토성 사진이야 CG가 아닌 실제 사진으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지만,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스토리와 캐릭터에 감정과 감각을 이입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인간이 만든 거대한 기계, 그리고 그것이 사소하고 나약한 먼지로 보일 만큼 웅장한 토성의 모습을 하나의 시야 속에서 직접 내려다보는 체험은 놀라웠어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영화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 2011)>

스토리가 아주 새롭진 않습니다. 대부분 어디선가 가져온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하지만 이야기라는 게 원래 그렇죠. 중요한 건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옵저베이션>은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몰입도 높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놀랍고 가슴이 웅장해지는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특히 기괴한 소리와 함께 검은 육각형의 형태로 나타난 우주적 존재와 낯선 기호를 통해 직접 소통하는 건 게임을 통해서만 가능한 경험이지요. 리뷰를 찾아보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Space Odyssey, 1968)>와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두 영화에 대한 오마주로 생각되는 요소들이 많아요. 밀폐된 공간에서 초월적 경험을 하고 이성을 잃은 동료에게 위협을 받는 부분은 <스피어(Sphere, 1998)>나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1997)>, <팬도럼(Pandorum, 2009)>을 떠올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유독 선명하게 떠오른 영화는 <어나더 어스(Another Earth, 2011)>였습니다. <옵저베이션>과 <어나더 어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만, 게임 속 일부 인상 깊은 연출 그리고 어느 충격적인 장면은 <어나더 어스>의 몇몇 장면을 봤을 때의 오묘한 느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자세한 건 게임과 영화 모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야기하지 않겠지만요. 영화 <어나더 어스>에 대해서는 여담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수동 저장이 불가능해서 게임을 중단했다가 다시 할 때는 자동 저장된 부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서 긴 컷신을 다시 봐야 할 때가 자주 있어요. 자동 저장 자체는 괜찮은데 뒤따라오는 컷신을 스킵할 수가 없더라고요. 엑스박스 컨트롤러로 스크린샷을 찍을 수도 없었습니다. 이게 크로스오버를 사용해서 그런 건지 원래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정거장 내부 여러 공간이 비슷하게 생겼다 보니 자주 헤맸습니다. 정거장 외부에서는 더 많이 헤맸고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디테일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기에 그리 나쁜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답답한 느낌이 들기는 했어요. 하지만 게임의 경험을 손상시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과 연결점이 있었습니다. <옵저베이션>의 디렉터이자 작가이고 게임 속에서 짐 얼라이어스의 목소리를 맡은 존 맥켈렌(Jon McKellen)이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UI 및 디자인 총감독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엠마 피셔의 목소리와 모션캡처를 담당한 케이자 버로즈(Keiza Burrows)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의 주인공 아만다 리플리의 모션 캡처를 담당했었다고 하고요. 케이자 버로즈는 원래 아만다 리플리의 목소리도 담당했었지만 나중에 안드레아 덱(Andrea Deck)이라는 다른 성우로 교체되었다고 하는데, 게임 속에서 아만다의 비명과 신음은 여전히 케이자 버로즈의 목소리였다고 하네요.

왼쪽: 아만다 리플리. 가운데: 케이자 버로즈. 오른쪽: 엠마 피셔.

다행히 <옵저베이션>은 출장 둘쨋날 오전에 클리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은 좀 지나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만 뺄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그래도 좋은 참고가 되었습니다. 직접 우주선을 타고 토성의 육각형 폭풍을 내려다보고 온 느낌이 들어요.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일이 더 수월해진 것 같습니다. 물론 게임 자체도 재미있었고요.


다음 게임 후보는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Rise of The Tomb Raider, 2015)>와 <배트맨:아캄 시티(Batman: Arkham City, 2011)>, 그리고 <소마(SOMA, 2015)>와 <탈로스 법칙(The Talos Principle, 2014)>입니다. 그런데 이젠 정말 마감이 시급해서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12월 말에는 <바이오하자드 4 리메이크>가 나오는데 어쩌면 그걸 먼저 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까지 마감을 잘 처리한다면요.

왼쪽 위: <라이즈 오브 툼 레이더(Rise of The Tomb Raider, 2015)>. 오른쪽 위: <배트맨:아캄 시티(Batman: Arkham City, 2011)>. 왼쪽 아래: <소마(SOMA, 2015)>. 오른쪽 아래: <탈로스 법칙(The Talos Principle, 2014)>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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