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dow of the Tomb Raider (2018)
|타이틀|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 (Shadow of the Tomb Raider)
|최초출시일| 2018년 9월 14일
|개발사| Eidos-Montréal
|유통사| Square Enix
|구입처| Steam
|사용기기| M2 맥북 에어 기본형,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섀도 오브 더 툼 레이더(Shadow of the Tomb Raider, 2018, 이하 섀오툼 혹은 3편>는 2013년부터 시작된 <툼 레이더> 시리즈 리부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첫 작품인 <툼 레이더(Tomb Raider, 2013, 이하 1편)>와 두 번째 <라이즈 오브 더 툼 레이더(Rise of the Tomb Raider, 2015, 이하 라오툼 혹은 2편>를 거쳐 처음으로 하나의 시리즈를 끝내보네요. 클리어한 지는 제법 되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쓸 시간은 별로 없어서 이제야 씁니다.
<섀오툼>을 처음 본 건 애플의 2020년 WWDC였습니다. 그때 애플이 인텔 칩에서 벗어나 직접 설계한 애플 실리콘으로 이주할 것을 밝히며, 아이패드용 A12Z칩을 설치한 맥 미니로 <라오툼>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줬었지요. 그때는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때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4년이 지나 2세대 애플 실리콘을 탑재한 맥북 에어에서 그 게임을 플레이했다니 아무런 쓸모도 없지만 묘하게 뿌듯한 기분이 드네요. 게임이라는 게 대개 그렇지요. 겜알못인 제가 할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섀오툼>의 주요배경은 중남미입니다. 도입부에서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Lara Croft)는 세계적 영향을 가진 비밀 조직이자 아버지의 원수인 트리니티의 흔적을 쫓으며 멕시코에 있는 마야 유적지를 방문하는데요, 거기서 라라는 뜻하지 않게 파괴신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을 만큼 거대한 재앙을 불러일으킵니다. 조금 전까지 가족과 아이들이 화기애애하게 축제를 즐기고 있던 마을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켜 버려요. 심지어 위기에 빠진 어린아이가 결국 가족의 손을 놓치며 희생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기도 하고요. 본격적인 이야기는 페루에 있는 아마존 인근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과거에 잉카 문명이 있던 곳이지만 어째서인지 마야 문명의 흔적이 남아있고 곳곳에 기독교 문화도 엿보이는 곳인데, 그 이유는 이야기 후반부에 밝혀집니다.
1편은 간결하고 직선적인 이야기였고 2편은 여기에 조금 복잡한 플롯과 더불어 영화적인 연출이 더해진 느낌이었다면, 3편은 좀 산만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2편부터 중간중간 끼어드는 사이드 미션 때문에 메인 스토리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3편은 여기에 메인 스토리까지 좀 어중간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어요. 그냥 느슨하게 연결된 병렬적인 사건사고만 이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보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없었어요.
주인공 라라 크로프트의 이야기를 해보지요. 저는 1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리부트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를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의 제임스 본드와 비교했었습니다. 무모한 육탄전을 벌이기도 하고 옷과 피부가 찢어지는 걸 개의치 않으며 땀냄새와 피냄새를 풍기는 현실적인 캐릭터가 되었다는 측면에서요.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본드는 이 새로운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007 카지노 로얄 (Casino Royale, 2006)>로 시작된 작품들 속에서 과거를 마주하고 상처를 극복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제임스 본드라는 오래된 캐릭터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삶과 성장의 이야기를 만들어 줬지요. 하지만 리부트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는 방향만 바꿔가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결심 혹은 각성의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은 1편에도 등장했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오마주 장면과 거의 똑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라라는 이미 적이라면 언제든 살육을 망설이지 않는 존재였다 보니 각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그 전후로 달라진 게 딱이 없고요.
1편에 겪은 일의 흔적은 2편에선 사라지고 없고, 2편에서 극복한 것 같던 과거 이야기는 3편에서도 반복됩니다. 라라가 가진 서로 다른 트라우마(자신의 행동이 부른 무고한 희생과 가족의 죽음)를 모두 파고들려고 하지만 둘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보니 라라의 감정선이 흐릿해지기도 하고요. 심지어 두 트라우마 모두 본편에선 제대로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DLC를 통해서 조금 풀리기는 하는데 어디까지나 그마저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고요. 그리고 이런 핵심적인 요소를 본편이 아닌 선택사항인 DLC로 넘기는 건 좀 무성의한 것 같네요.
본편의 메인 스토리에서 자신이 불러온 무고한 희생에 대한 죄책감 혹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에 대한 트라우마 둘 중 하나에 집중하고 파고들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 후자의 트라우마는 이미 2편에서 다루었으니 전자의 죄책감을 중심에 가져왔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입부에서 라라가 불러온 거대한 비극은 플레이어에게도 확실히 큰 충격으로 다가오니까요.
어떤 이야기든 3부작의 마무리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만 제대로 마무리된다면 아쉬운 부분이 좀 있더라도 다들 어느 정도 이해하고요. <제다이의 귀환 (Return of the Jedi, 1983)>이 그랬고, <대부 3 (The Godfather Part III, 1990)>가 그랬으며,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가 그랬습니다. 하지만 <섀도 오브 툼 레이더>는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않은 것 같아요. 메인 스토리에서 라라는 말 그대로 학살자로서의 성장 말고는 아무것도 증명하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는 인상입니다.
또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만큼 과거의 인물들에 대한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없었습니다. 1편에서 마지막까지 목숨 걸고 구했던 샘, 정신적 지주이자 멘토였던 로스, 2편에서 놀라운 정체를 보여줬던 제이콥,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배신자 아나, 모두 언급조차 되지 않았어요. 아나가 본편이 아닌 DLC에서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1-2초 정도 지나갔을 뿐이고요. 모두 라라의 삶을 정의하는데 큰 축을 맡은 존재들인데도요.
1편의 악역 히미코와 매티어스는 야마타이 섬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잘 어울리는 독창적인 캐릭터였고, 2편의 악역 콘스탄틴은 세계 정복이라는 목적이 좀 식상하기는 했지만 부대를 이끄는 카리스마와 극적인 연출을 통해 매력을 유지했습니다. 3편의 악역 페드로 도밍게스(Pedro Dominguez)는 악행의 근본적인 동기가 자기 고향을 지키려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한 욕심의 변주에 불과한 동기를 갖고 있던 다른 보스들과는 차별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어요. 도밍게스는 존재감도 별로 없고 역할도 어중간했습니다. 가끔은 너무 초라해 보여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요. 가마에 올라타 자신을 쿠쿨칸이라고 말하며 사랑을 전파할 때의 모습은 황당할 정도였습니다. 순수하고 선한 내면이 남아있다는 암시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는 좋아요. 하지만 연출의 문제라고 해야 할지, 중간중간에 나오는 느슨한 모습이 너무 뜬금없고 맥락이 끊어지는 인상을 받다 보니 캐릭터의 존재감이 층층이 높게 쌓이질 못했습니다. 최종 보스임에도 주요 동기의 대부분이 서사적 연출이 아니라 문서로 전달된다는 점에서도 캐릭터로서의 무게감을 많이 잃었고요.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는 마블 영화 <블래팬서(Black Panther, 2018)>의 에릭 킬몽거가 얼마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이었는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도밍게스와의 최후 결전은 시리즈 중 가장 화려하고 역동감이 넘쳤습니다. 일식이 일어난 하늘 아래라는 분위기도 멋졌고요.
1편에서 은연중에 그 존재가 암시되고 2편에서 본격적으로 세계 정복 야욕을 드러내며 등장한 트리니티 역시 3편에서는 존재감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전체 이야기에서 트리니티의 존재를 완전히 빼버려도 전개에 큰 문제가 없을 정도로요. 심지어 후반부에서 트리니티의 수장들이 헬리콥터 추락으로 모두 사망해 버리는 걸로 조직이 와해되어 버립니다. 심지어 이게 근처에 있던 무전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다 보니 저는 트리니티가 이렇게 무너졌다는 걸 게임 플레이 중에는 몰랐어요. 1편과 2편에서 쌓아 올렸던 무시무시한 트리니티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최후였습니다.
주변 인물도 별다른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편부터 함께 했고 모든 주변 인물 중 유일하게 연속해서 출연한 조나는 비중은 있지만 그렇다고 큰 역할은 하지 않았어요. 옛 추억담을 주고받는 걸 제외하면 연속 출연의 의미가 별로 없었다 보니 그냥 새 캐릭터로 바꿔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바이오하자드 RE:2>의 에이다 웡 없이는 <바이오하자드 RE:4>의 에이다 웡도 있을 수 없는 것과 비교하면 캐릭터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툼 레이더> 시리즈는 라라 크로프트가 원탑 주인공이기 때문에 여러 인물이 비중을 나눠 갖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하지만, 굳이 전작의 캐릭터를 중 단 한 명만 계속 출연시킨다면 아무래도 연속성을 조금 더 기대를 할 수밖에 없지요.
그 외에도 2편의 제이콥 같은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누라투가 비슷한 역할로 나오기는 했지만 제이콥에 비하면 좀 평면적이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기보다는 그저 게임의 서사만을 위해 움직이는 느낌이었어요. 1편에서 출연 시간은 짧았지만 존재감 있었던 로스와 비교해서도 우누라투는 출연 분량에 비해 존재감이 얕았습니다. 강한 여성 캐릭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우누라투의 역할과 퇴장이 허무하게 느껴져 아쉬웠어요. 조연 캐릭터가 1편과 2편에 비해 많은 편이었는데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네요.
예상외의 존재감을 드러낸 건 지하 유적의 괴물 부족 야실(Yaaxil)을 이끄는 사제 크림슨 파이어(Crimson Fire)였습니다. 지하 유적 스테이지는 훌륭한 공포 영화였던 <디센트 (The Descent, 2005)>를 떠올리게 하는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는데,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순간에 부족을 이끌며 처음 등장한 크림슨 파이어는 외관부터 분위기까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야실 부족 때문에 고생을 하는 동안에는 1편의 스톰가드나 2편의 불멸의 존재 같은 초자연적 적대자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바지에 이르러 예상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도 좋았습니다.
나중에 관련 자료를 보면서 야실 부족과 크림슨 파이어의 놀라운 정체와 기원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게 DLC에만 나온다는 게 또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크림슨 파이어는 주변 인물들 중 누구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한 느낌이 드네요. 본편에서는 라라와 도밍게스, 트리니티와 크림슨 파이어의 관계와 서사 구축에 집중하고 다른 부차적 요소들의 비중을 좀 줄였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2편도 그랬지만 3편은 오픈 월드 요소가 더욱 강화된 느낌이었습니다. 마을과 유적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상호작용을 하고 다양한 보조 임무(혹은 퀘스트)를 받아 수행하며 경험치를 쌓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선형적인 플레이를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굉장히 몰입을 깨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본편 속 라라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사건에 휘말려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갑자기 해결사가 되어 마을 주민들의 온갖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게 납득이 가질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아이의 빼앗긴 주사위를 찾아준다거나. 물론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본편 임무를 위해 한창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는데 화면 구석에서 보조 임무가 있다고 뜨고 주민과 대화하라는 암시를 던져줄 때마다 굉장히 거슬렸어요. 그래서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보조 임무 몇 개만 진행하고 나머지는 거의 무시했고요. 그래도 게임을 진행하고 클리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럴 거면 게임을 클리어하면 개방되는 추가 컨텐츠 같은 걸로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쁜 놈도 쓰러뜨리고 세상도 구했다면 이제 마을 사람들의 해결사 역할을 해줄 여유는 있을 테니까요.
비밀 무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간중간에 비밀 무덤이 근처에 있다고 나오는데 금방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이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고 그래도 게임 진행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어요. 정작 본편의 스토리는 '무덤'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어서 이러면 '툼 레이더'라는 이름이 좀 무색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편을 이야기하면서도 언급했었지만, '툼 레이더'라는 제목을 쓰는 만큼 '무덤'이라는 요소가 본편 스토리 속에서 단순한 퀘스트나 스쳐 지나가는 경로가 아니라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1편에서는 섬 전체가 히미코의 무덤이었기에 '툼 레이더'라는 제목이 잘 어울렸던 것처럼요.
아쉬운 점을 이것저것 늘어놓기는 했는데 게임 자체는 재미있었습니다. 사실 서사적 재미와 만족을 원했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면 되지요.
<툼 레이더>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자유롭고 역동감 넘치는 액션은 여전하면서도 2편보다 더 확장되었습니다. 절벽에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 로프를 타고 타잔처럼 이동하기도 하고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의자나 테이블 하나에도 길이 막혀버리는 것과 비교하면 라라 크로프트는 쇼생크를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더욱 강화된 잠입과 암살 요소도 좋았습니다. 요령을 익힐 때까지는 좀 어렵고 불편했지만 익숙해지고 나면 제법 재미있고 중독성도 있었어요. 진행할수록 라라는 완벽한 대량 살인마이자 암살범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되기는 하지만요.
진한 초록으로 가득한 빽빽한 밀림은 왠지 <쥬라기 공원/월드> 시리즈의 주요 배경들을 떠오르게 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제법 흥이 돋았고, 깊고 투명하고 선명한 밀림의 경치는 게임 속 화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치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아름답게 다가와 눈이 즐거웠습니다. 1편의 섬, 그리고 2편의 사막과 눈 덮인 산이 좀 삭막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반면, 3편의 밀림은 굉장히 풍요롭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어렸을 때 종말론과 음모론에 흠뻑 빠져있었다보니 마야 문명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때 책에서 봤던 신이나 신전, 상형문자나 그림체 등을 보니 반갑기도 했고요.
게임 초반부에 표범이 등장하는데요, 역할은 2편에서 나왔던 곰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약간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져서 곰보다는 존재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에이리언 3 (Alien 3, 1992)>의 명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연출이 있었어요. 그래서 <에이리언 3>의 제노모프 같은 역할이라도 할까 기대를 했는데 그렇진 않더군요. 표범이 계속 몰래 쫓아오며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기습해 오는 요소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도 연출하고 1편이나 2편과는 차별되는 게임 플레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취향에 맞춘 희망사항입니다.
클리어 이후에는 DLC를 해봤습니다. 이번에도 다양한 DLC가 준비되어 있었는데요, 세트로 구입해서 모든 DLC가 따라왔지만, 메인 스토리와 관련된 것만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어요. 해보고 싶은 DLC를 선택했더라도 그걸 플레이하는 방법이 조금 까다롭기도 했고요. 인트로 화면에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세이브를 불러온 다음 해당 DLC와 관련된 장소와 인물을 직접 찾아가야 했어요. 어떤 DLC를 하려면 어떤 장소의 누구를 만나야 한다는 걸 알고 그곳에 갔는데 그 사람은 없고 다른 인물과 연계된 다른 DLC를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눈먼 할아버지의 옛 탐사 지역을 확인해 주거나, 실종된 마을 주민을 찾아주는 등 본편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클리어하기도 했고요. 그러고 나서도 제가 원하는 DLC와 관련된 인물은 정해진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순서나 조건 같은 게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이건 전작들도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는 클리어 이후에 인트로 화면에서 선택만 하면 되었다 보니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원하는 걸 플레이할 수 있었던 건 <악몽 (The Nightmare)>이라는 DLC였습니다. 앞에서 잠깐 이야기한 라라의 트라우마 극복기 중 일부인데요, 게임 플레이 자체는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1편과 2편에서 등장했던 적들이 환영으로 잠시 다시 등장하기도 하고, 2편에서 라라에게 큰 상처를 준 아나 역시 환영으로나마 얼굴을 비추고요. 3부작의 마무리로서 본편 서사의 일부로 잘 녹아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후반부에 그림자에 가려져 얼굴이 보이지 않는 여성 캐릭터가 악몽의 근원인 것처럼 등장하는데 처음엔 1편에 나왔던 절친인 샘(혹은 사만다 니시무라)인 줄 알았어요. 샘은 1편에서 고생하다가 라라에게 구출되기는 했지만, 후일담을 다룬 코믹스에서 다시 한 번 라라의 사건에 휘말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걸로 나온다고 들었거든요. 라라의 입장에선 자신이 아끼는 사람이 비참한 최후를 맞은 첫 번째 사례인 만큼 큰 상처로 남아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1편에서 콘래드 로스나 알렉스 바이스, 앵거스 그림도 목숨을 잃었지만 이들은 그래도 라라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진 것이었던 반면, 샘은 자신의 의사와는 완전히 무관하게 비극의 구렁텅이로 떨어진 거였으니까요. 그래서 2편에서 야마타이 섬과 샘에 대한 언급이 없어 더 아쉬웠던 차에, 3편 DLC에서나마 샘이 라라의 악몽에 등장했다고 생각해 기대를 했는데……. 알고보니 그냥 또 다른 라라 자신이더군요. 흠.
설정 충돌이 있기도 했습니다. 2편의 DLC 중에 모든 일을 마친 라라가 크로프트 저택에 숨겨져 있던 어머니의 무덤을 발견하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전까지 라라의 어머니는 사망이 아닌 실종 상태였고요. 그러니까 이미 성인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 거죠. 그런데 <악몽>에서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아직 어린 라라가 아버지와 함께 슬퍼하는 장면이 지나가요. 라라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었을 텐데 설정이 어긋나 버린 거죠. 사실 본편 속에도 비슷한 설정 충돌이 있습니다. 1편에서 라라가 아버지에게 대학 합격증을 위조했다는 얘기가 나와요. 그러니까 라라가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는 아버지가 살아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3편에서는 라라가 열 살 정도일 때 죽은 걸로 나옵니다. 라라가 아무리 똑똑해도 그 나이에 대학을 들어갔을 것 같지는 않고요. 아버지의 죽음은 라라의 삶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였을 텐데 이 설정이 어긋나다니. 여기까지 오니 3편의 제작진들은 라라 크로프트라는 인물의 서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DLC는 <집으로 가는 길 (The Path Home)>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야실 부족과 크림슨 파이어의 정체가 부분적으로 드러난다고 들었거든요. 그들이 사실은 어떤 포탈 너머에서 온 다른 행성 혹은 다른 우주에서 온 존재였을지도 모른다는 SF적 설정을 던져준다고 하니 관심이 잔뜩 생겼지요. 이런 설정이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요, 사실 2편에서도 간접적으로 비슷한 설정이 등장하기는 했습니다. 핵심 소재였던 '신성의 원천'을 전해준 존재가 사실 우주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우주복을 입은 듯한 존재의 독특한 유물을 발견한 라라가 잠시 의심을 하다가 그럴 리가 없다며 넘어가버리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은 결국 해보지 못했습니다. 이 임무를 전해 줄 인물이 정해진 장소에 나타나질 않더라고요.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결국 포기했습니다.
좋았던 점도 있고 아쉬웠던 점도 있지만 리부트 라라 크로프트와의 여정은 제법 만족스럽게 끝났습니다. 비록 인물의 서사가 조금 불완전하게 끝나기는 했지만 라라 크로프트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고, 라라가 보여준 다양한 액션들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바이오하자드> 주인공들이 의자나 테이블, 바닥의 자그만 틈새 하나를 넘지 못할 때마다 라라가 생각나겠지요.
올해 10월 10일에는 넷플릭스에서 리부트 시리즈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가는 애니메이션 <툼 레이더: 라라 크로프트의 전설 (Tomb Raider: The Legend of Lara Croft, 2024)>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게 나올 때까지 게임 3부작을 모두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적당한 타이밍에 마무리를 하게 되었네요. 3편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고 하니 게임 3부작에서 아쉬웠던 라라의 서사가 조금 더 완성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라의 목소리를 맡은 배우가 게임 3부작의 카밀리 러딩턴(Camilla Luddington)이 아니라 마블 영화 속 패기 카터 역할로 유명한 헤일리 앳웰(Hayley Atwell)이라고 하네요. 연속성이 끊어진 건 좀 아쉽지만 패기 카터 역시 강한 여성의 이미지가 있는 만큼 괜찮은 캐스팅인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애니메이션이 게임 리부트 3부작과 클래식 시리즈를 이어주는 역할을 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던데, 클래식 시리즈의 라라에 대해서는 예전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리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아무튼 10월 10일이 기다려집니다.
다음 게임은, 이라고 하기는 좀 애매하네요. 요즘 일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 기분 전환이 필요했는데, 그렇다고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엔 버거웠어요. 그때 타이밍 좋게 맥용으로 나왔던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 (Resident Evil 8: Biohazard, 2017)>을 한 번 더 해봤거든요.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와 <바이오하자드 7: 레지던트 이블>과 역시 몇 달 전에 역시 한 번 더 해 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의 2회차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