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알못의 과거
저는 게임을 그동안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게임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90년대 초등학생 시절에 오락실에 가 본 적은 있지만 그냥 구경만 했을 뿐이었고, 중학생 때는 친구가 들려주는 어느 게임의 웅장한 스토리를 즐겨 들을 뿐이었지요. 고등학생 시절에는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마다 PC방에 가기는 했지만 그땐 영화에 굶주려 있을 때라 주로 영화 예고편이나 관련 기사들을 몰아서 보는 게 목적이었고요 ('씨네서울' 참 좋아했었는데).
물론 게임을 한 번도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슬쩍해본 것도 있고 재밌어서 클리어까지 간 것도 있어요.
처음 컴퓨터를 샀을 때 <듀크 뉴켐 3D(1996)>라는 게임CD가 같이 따라왔었는데요, 이건 정말 좋아했어요. 최종 보스까지 클리어하고 나서도 몇 번 더 반복해서 플레이했고요. 나중에 iOS 버전으로 나왔을 때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한번 플레이를 했지요.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영화 <아바타(2009)>와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의 모바일 게임은 아이팟 터치로 했습니다. 게임 자체에 관심이 있었다기보다는 영화가 좋았기 때문에 그 여운을 더 즐기고 싶었던 것에 가까웠고요. 그리고 아이팟 터치라는 놀라운 기계를 다양하게 써보고 싶기도 했고. 그런데 두 게임 모두 배경과 캐릭터만 다를 뿐 비슷한 느낌이라 끝내고 나니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었습니다. <듀크 뉴켐 3D>와는 달리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이후로는 <앵그리버드(2009)> 같은 가벼운 모바일 게임을 몇 번 해보기는 했지만 대부분 금방 그만뒀어요. 그러다가 <듀크 뉴켐 3D>의 속편 <듀크 뉴켐 포에버(2011)>가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그래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때까지는 존재도 모르던 스팀 계정까지 만들어가며 <듀크 뉴켐 포에버>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를 시작했죠.
역겨웠어요. 듀크라는 캐릭터가 지저분하고 변태적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거든요. <듀크 뉴켐 3D>를 했을 때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영어 대사를 알아듣지도 못했고 자막도 없었을뿐더러 그래픽도 당시로서는 대단했더라도 그리 디테일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저 액션의 타격감과 SF적인 배경에만 심취해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알고 보니 듀크가 생각보다 끔찍한 캐릭터였던 겁니다. 물론 자기애 가득한 마초스러움을 듀크의 매력으로 뽑는 사람도 많겠지만 제겐 그렇지 않았어요. 게다가 <듀크 뉴켐 포에버>에서는 불필요한 시청각적 불쾌함이 잔뜩 추가되어 있었습니다. <듀크 뉴켐 포에버>는 평가가 굉장히 나빠 크게 망한 게임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재미있고 없고를 떠나서 더럽고 불쾌해서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제 스팀 계정은 <듀크 뉴켐 포에버>라는 망작 하나만 구입 목록에 남겨두고 묻혀버렸지요. 그 이후 오랫동안 저의 아이패드와 아이폰에는 게임이 상주할 일이 없었습니다.
게임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적당히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했어요. 특히 1인용 비디오 게임이 그랬습니다. 빠르게 몰입할 수 있고 짧은 시간으로도 기분을 전환시켜 줄 수 있는 취미는 소중하니까요. 독서도 영화도 좋은 취미지만, 따지고 보면 둘 다 의식적인 집중이 필요하고 대개 정적이며 일반적으로 수동적 혹은 수용적 취미라는 것도 사실이지요. 특히 영화는 한 편을 나눠서 보는 게 질색이라서 아이가 있는 지금은 시간을 만드는 것부터가 커다란 장벽이자 스트레스입니다. 글쓰기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이기까지 훌륭한 취미지만, 어쩌다 보니 글로 돈을 벌게 된 지금은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순수한 즐거움을 위한 취미라고 하기는 어려워졌고요(그래서 내년에는 당분간 글로 돈을 버는 일에 거리를 둘 생각까지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적당한 취미로서의 게임은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어떤 게임은 스토리가 정말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어서 궁금해지기도 했고요.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게임의 스토리가 훌륭하다고 하면 그냥 인터넷에서 줄거리를 찾아보고 넘어갔고요. 이후로도 게임과는 인연 없이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2023년 어느날, 11년 만에 스팀 계정이 되살아나고 여기에 열 개의 게임이 추가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패드와 맥에도 게임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흔히 게임패드라고 부르는 컨트롤러까지 책상에 등장하고요.
제가 생각해도 재미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겨보고자 합니다. 대단한 내용은 아닐 테고 그냥 평소에 하지 않던 게임이라는 것을 해보면서 느꼈던 것과 거기서 뻗어나간 생각을 짤막하게 써 내려 가려고 합니다.
딱히 누가 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글도 아닐 거라 생각해서 <위 베어 베어스>의 저 세 마리 곰을 독자라고 생각하고 쓰려고 합니다. 별로 관심 없지만 일단 듣는 척은 하는 저 표정이 가상의 독자로 딱 좋을 것 같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