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ident Evil requiem (2026)
|타이틀| 바이오하자드 레퀴엠 (Resident Evil requiem)
|최초출시일| 2026년 2월 27일
|개발사| Capcom
|유통사| Capcom
|구입처| Microsoft Store (Xbox)
|사용기기| 엑스박스 시리즈X,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M3 맥북에어와 A17 Pro 아이패드 미니, 그리고 엑스박스 시리즈X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신작인 만큼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은 가급적 자제했습니다.
1. 다시 라쿤 시티로
2. 전반부: 겁쟁이 그레이스의 탈출기
3. 후반부: 돌아온 레온의 진혼곡
4. 종반부: 과하고 허술하지만 눈감아 줄 수 있는
5. 안전한 선택, 훌륭한 실행
6. DLC를 기다리며
[다음 게임]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하 레퀴엠)>은 바이오하자드 메인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의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레온 S. 케네디가 (리메이크와 CG영화를 제외하면) 14년 만에 다시 전면에 나선 작품이기도 하고요. 동시에 지금껏 없었던 새로운 타입의 주인공 그레이스 애쉬크로프트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FBI 자료분석관인 그레이스는 라쿤 시티 사건의 생존자들이 정체불명의 증상을 겪으며 잇달아 사망하는 사건을 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이자 역시 라쿤 시티 사건을 겪었던 알리사 애쉬크로프트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한편, DSO의 베테랑 요원인 레온 역시 같은 사건을 조사하며 빅터 기디온이라는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고, 결국 두 사람은 그리 달갑지 않은 사건을 겪으며 서로 얽히게 됩니다.
라쿤 시티에서의 참극을 직접 겪은 레온과 그때는 미처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레이스를 공동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를 통해 <레퀴엠>은 길었던 과거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로 한 걸음 나아가려고 시도하는 것 같고요. 그리고 그 시도는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는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겁이 많은 주인공입니다. 좀비가 득실거리는 저택에서 탈출해야 하는데, 가진 거라고는 호신용 권총 하나와 급조한 나이프 몇 자루가 전부고요. 레온이 레퀴엠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빌려주기는 합니다. 하지만 권총 탄약도 부족한 마당에 레퀴엠 전용 탄약은 더욱 귀해서 함부로 쓸 수가 없지요. 그렇다고 권총이라도 쓰자니 좀비들이 소리를 듣고 몰려오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최대한 은신하며 다닐 수밖에 없는데, 이때 느껴지는 긴장감이 속된 말로 참 쫄깃했습니다.
여기에 겁에 질려 말을 더듬는 목소리 연기와 사정없이 흔들리는 총구, 허둥지둥 달리는 동작까지 곁들여지며 그레이스의 안절부절못한 심정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1인칭 플레이 때 그레이스 시야의 높이가 상당히 낮아서 꼭 어린아이 시선처럼 느껴졌는데, 조금 과한 느낌은 있기는 했지만 무력감 조성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좀비들의 특징 중에는 과거의 기억과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있는데, 이 특성을 이용한 섬뜩한 연출이 공포감을 한층 더 새롭게 해 줬습니다. 예고편에서부터 화제가 되었던 노래하는 가수 좀비, 더러운 것이면 무조건 닦으려고 드는 메이드 좀비처럼요. 예를 들어 바닥의 피를 닦고 있는 메이드 좀비에게 천천히 다가가면 갑자기 고개를 들고 화난 듯한 눈빛으로 노려봅니다. 마치 바닥 더럽히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좀비답지 않음'이 굉장히 섬뜩하게 다가왔고요. 물론 거기서 한 발짝 더 다가가면 무섭게 달려듭니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특징들을 이용해 좀비를 피하거나 서로 공격하게 만들어야 할 때도 있어서 공포 속에서 꼼꼼히 전략을 짜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감염자의 혈액을 이용해 다양한 아이템을 제작하는 것도 긴장감에 신선한 맛을 더해준 것 같네요.
시리즈 전통의 추격자 역할로는 "더 걸"이 나옵니다. 어둠 속에서 기괴한 목소리와 거대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말 아찔했네요. 3편 리메이크의 네메시스와 8편 <바이오 하자드 빌리지(이하 빌리지)>의 레이디 드미트리스쿠가 추격자로서 조금 아쉽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2편 리메이크의 미스터X 뒤지지 않는 추격자의 압박을 기대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반부 대부분은 한순간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그레이스 파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레온 파트가 짧게 끼어들면서 그동안 쌓여있던 긴장을 해소해 주는 동시에 강렬한 액션의 짜릿한 쾌감까지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생물학적 재해와 싸우며 보낸 레온에게 좀비는 이제 공포의 대상이 아닌 좀 위험한 장애물일 뿐입니다. 냉소적인 농담을 툭툭 던지며 좀비들을 말 그대로 쓸어버리는 모습을 보면 조금 전까지 같은 좀비들을 그렇게 무서워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그레이스 파트는 어떻게 회피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진행했다면, 레온 파트는 어떻게 공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고요. 물론 두 고민 모두 아주 즐거웠습니다.
드디어 라쿤 시티에 도착해 후반부에 들어서면, 게임은 레온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시작하고 장르가 호러에서 액션으로 완전히 전환됩니다. 전반부의 액션이 그레이스 파트의 긴장감을 해소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후반부의 액션은 그야말로 그 자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중간에 공포 파트가 삽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오랜 액션으로 쌓인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공포를 곁들인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로요.
가장 감성적인 장면 역시 후반부에 있었습니다. 레온은 원래 어떤 상황에서도 짧은 농담이나 던지며 솔직한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런 레온이 라쿤 시티 경찰서와 켄도 건샵에서 처음으로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는데, 2편을 플레이했던 모든 팬들에게 가슴이 찡해지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이 시리즈에서 <빌리지>와 DLC <섀도즈 오브 로즈> 이후로 짧지만 감정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동시에 시리즈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도 레온이 이 '진혼곡'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해서 굉장히 의미 깊게 다가왔습니다.
레온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4편 리메이크에서 레온은 2편 때 겪은 라쿤 시티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겉모습도 거칠게 변해 있었지요. 하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신입 경관의 순수한 정의감을 그대로 품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왔었고요. 그렇기에 이번 작품에서 레온이 그 트라우마와 정면으로 마주하며 다시금 변치 않는 정의감을 다잡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라쿤 시티에서의 플레이는 공간적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금까지 바이오하자드는 주로 저택이나 연구실처럼 닫힌 공간을 배경으로 할 때가 많았고, 야외로 나가더라도 대개는 밤인 데다 시야가 그리 넓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폐허가 된 라쿤 시티의 탁 트인 경치를 밝은 대낮에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되더라고요. 2편과 3편에서 어둠 속 대혼란을 헤치며 가로질렀던 곳을 모든 것이 무너진 뒤에 환한 빛 속에서 다시 걷는 경험은 은근히 감수성을 자극했습니다.
라쿤 시티 중심부에 도착한 직후, 레온은 좁은 골목길 하나를 지나갑니다. 28년 전, 라쿤 시티에 도착하자마자 지났던 바로 그 골목길입니다. 그 골목을 지나며, 레온은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종반부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블록버스터 B급 SF 액션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최종 보스는 진지하지만 어딘가 유치하고 어설픈 데다 설득력도 없어요. 웅장한 계획에는 구멍이 가득하고요. 사실 종반부뿐만 아니라 서사 전체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변곡점들이 있습니다. 일부 장면에서는 감정과 동기보다는 기능과 진행을 위해 캐릭터를 움직이는 느낌도 있었고요.
물론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애초에 B급 정서로 가득한 작품이었습니다. 과장된 액션과 설정, 중2병에 걸린 것 같은 나사 빠진 악역은 그리 낯설지 않지요. 애초에 게임은 서사보다는 행위를 위한 매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가 원래 그렇다고, 게임이 원래 그렇다고 넘기기에는 오늘날 이 시리즈가 가진 영향력과 체급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나마 예외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 7편과 8편의 성과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눈감아 줄 수 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재미있었던 게임 플레이, 쫄깃한 공포와 강렬한 액션의 훌륭한 조화, 라쿤 시티에서 보여준 감동적인 장면들이 그 모든 아쉬움을 가뿐하게 덮어줄 수 있었으니까요.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7편과 8편이 보여준 것 같은 새롭고 도전적인 시도를 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전작들에서 이미 검증된 것들을 그대로 가지고 오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을 한 거죠.
거기서 끝났다면 안일하고 식상한 작품이 나왔겠지만, 개발사 캡콤은 리메이크를 포함해 7편 이후의 작품들로 그동안 쌓아온 내공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그 안전한 선택을 아주 훌륭하게 실행했습니다. 여기에 기존 작품들에 대한 헌사와 가슴 찡한 팬서비스까지 곁들인 결과물이 바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라고는 생각이 드네요.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결코 완벽한 작품이 아닙니다. 하지만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서 무엇이 가능한지, 그리고 무엇을 잘 해낼 수 있는지를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게임 플레이를 끝내고 돌아보면 서사 측면에서는 허술한 부분이 꽤 많습니다. 특히 새로운 주인공인 그레이스는 매력적인 설정을 가진 잠재력 높은 캐릭터임에도, 다소 도구적으로 소모된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분명 성장하는 캐릭터지만 그 변화가 충분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묘사된 것 같지는 않고요.
레온의 서사는 라쿤 시티에서의 연출 덕분에 그나마 괜찮지만, 그래도 약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엔딩 장면에서의 레온은 항상 보던 레온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요. 하지만 늘어난 주름보다도 모든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 가지 변화가 있었지요. 이미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나카니시 코시 디렉터가 스토리 확장 DLC를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과연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드러나게 될까요? 4편 리메이크의 <세퍼레이트 웨이즈>, 7편의 <낫 어 히어로>나 <엔드 오브 조이>처럼 본편 서사의 빈 곳을 채워줄지, 아니면 8편의 <섀도즈 오브 로즈>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본편의 완성도와 여운을 한층 더 끌어올려 줄지 기대됩니다.
DLC가 나올 때쯤이면 본편의 내용이나 대사, 결말에 대한 이야기도 좀 더 편하게 할 수 있겠지요. 게임을 플레이하며 공감하고 상상했던 두 주인공의 감정과 동기에 대한 이야기는 그때까지 미뤄둬야겠습니다.
…물론 참지 못하고 중간에 털어놓을 수도 있겠지만요.
올해에는 일단 매달 하나씩 플레이를 해보기로 했고, 4월에는 <메트로 엑소더스(Metro Exodus, 2019)>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데 전작은 엑스박스 버전에서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듯해서 그냥 원작 소설을 읽어보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메트로 엑소더스> 역시 한국어 번역에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일본어 더빙이 훌륭하다고 해서 일본어 음성으로 해보려고요.
그런데 4월부터 또 큰 번역 작업이 시작되다 보니 계획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