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알못의 게임로그 여담 10: 추억 긁어모으기

겜알못의 과거에도 게임은 있었다

by 해도연

저는 원래 게임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영화와 책을 훨씬 더 좋아했었고요. 프롤로그에서도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플레이한 경험 자체는 몇 번인가 있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맛보기에서 끝났지만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생각보다 많은 게임을 만나본 적이 있더군요. 물론 그 대부분도 짧은 스침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그중에는 어떤 의미로든 깊은 인상을 남긴 것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렇게 과거를 더듬어 긁어모은 겜알못의 게임 추억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겜알못이 게임을 접하는 루트들

① 컴퓨터 학원
② 게임 좋아하는 친구
③ 1가구 1컴퓨터 시대
④ 친구 따라 PC방
⑤ 모바일 시대
⑥ 잘못된 찍먹



① 컴퓨터 학원

초등학교 4학년 때 컴퓨터 학원을 처음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컴퓨터는 없었지만, 아버지의 선견지명 덕분에 지역 최고의 오지(奧地)라고 놀림받는 작은 마을에서 제법 이른 시기부터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고인돌(Prehistorik, 1991)>이나 <황금 도끼(Golden Axe, 1989)> 같은 제법 유명한 고전을 슬쩍 접해보기는 했지만, 딱히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없네요. 하지만 그 시절 제가 그나마 즐겨했던(것으로 기억나는) 게임은 코스를 직접 만들어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스턴츠(Stunts, 1990)>와 고전 탱크 게임 <스코치드 어스(Scorched Earth, 2001)>입니다.

왼쪽: <스턴츠>, 오른쪽: <스코치드 어스>. 이미지 출처: 레딧 r/retrogaming, r/nostalgia

특히 <스코치드 어스>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오랫동안 잊고 지나다가 20여 년이 지난 뒤에 문득 떠올라 인터넷을 뒤져가며 게임의 이름을 찾아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친구들끼리 그냥 ‘탱크 게임’이라고만 불렀었고요.


모두 제 기억 속에만 묻혀 있는 낡은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색해 보니 이 두 게임에 대해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제법 많더군요. 본 적도 볼 일도 없는 사람들과 묘한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② 게임 좋아하는 친구

②-1 오락실

아직 PC방이 흔치 않던 20세기 마지막 몇 해 동안, 제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오락실을 즐겨 다녔습니다. 월요일만 되면 주말 오락실 썰로 교실이 소란스러웠지요.


저는 여전히 게임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당시 유행하는 오락실 게임에 대한 잡지를 읽는 건 좋아했습니다. 특히 <더 킹 오브 파이터즈(The King of Fighters)> 시리즈의 설정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쿠사나기 쿄와 야가미 이오리의 라이벌 구도가 마음에 들었었습니다. 게임은 하지도 않으면서 다양한 기술의 이름을 읽고 스크린샷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상상해 봤던 기억이 있네요.


오락실에도 몇 번 가보기는 했습니다. 주로 친구들을 따라서 들어갔다가 구경만 하고 나오거나, 돈을 줄 테니 한 번 해보라는 친구들의 말에 스틱과 버튼을 몇 번 만지작 거린 정도지만요. 이때 해본 것 중 하나가 <메탈 슬러그 2>였는데, 형편없는 손놀림으로도 어느 정도 진행은 가능해서 제법 좋은 인상으로 남았고, 친구 따라 오락실에 갔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이걸 골랐습니다.

<더 킹 오브 파이터즈 '96(The King of Fighters '96, 1996)>, 오른쪽: <메탈 슬러그 2(Metal Slug 2, 1998)>


②-2 콘솔

어렸을 때 자주 놀러 가던 친구 집에 콘솔 게임기가 있었습니다. 어떤 기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걸로 그 친구와 유일하게 플레이했던 게임 하나는 기억이 납니다. 람보처럼 생긴 남자 두 명이 기관총 같은 걸 들고 정글 비슷한 곳을 가로지르며 적을 무찌르는 내용이었고요. 아마 정글 말고도 이런저런 공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지 않네요. 대개는 초반부만 하고 끝냈거든요.


당시에는 저나 그 친구나 모두 ‘람보 게임‘이라고만 불렀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콘트라(Contra, 1988)>라는 제목이더군요.

<콘트라>


③ 1가구 1컴퓨터 시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컴퓨터가 생겼습니다. 집에 컴퓨터가 있는 친구들고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던 시기였지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친구들끼리 게임이 담긴 디스켓이나 CD를 주고받는 일도 생겼고요.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이때 제법 여러 게임을 접해본 것 같습니다. <알렉스 키드 인 미라클 월드(Alex Kidd in Miracle Wolrd, 1986)>, <소닉 더 헤지혹(Sonic The Hedgehog, 1991)>, <심시티 2000(Simcity 2000, 1993)> 같은 것들이 떠오르네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냥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앞부분을 몇 번 플레이해 봤을 뿐, 오래 이어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외는 있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컴퓨터를 샀을 때 딸려온 <듀크 뉴켐 3D>는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몇 번이나 클리어했을 정도로요.


가족이 산 게임잡지 부록으로 들어있던 <영웅전설 3: 하얀 마녀(英雄伝説III: 白き魔女)>도 있습니다. 사실 이 게임은 의욕이 가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반부까지 밖에 진행을 못했습니다. 들판에서 만난 '폰 독수리'라는 녀석을 도무지 쓰러뜨릴 수가 없었거든요. 다들 어떻게 했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전설 3: 하얀 마녀>는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도입부에서 봤던 세계관과 스토리, 일러스트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직접 돈을 주고 구입한 게임, <신세기 에반게리온: 강철의 걸프렌드(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鋼鉄のガールフレンド)>가 있습니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팬으로서, 가이낙스가 직접 개발해 원작의 그림체 그대로 그려낸 What IF 스토리는 꼭 직접 보고 싶어 어렵사리 주문했던 기억이 있네요.


사실상 대화 기반 연애 시뮬레이션에 가까웠다 보니 게임으로서의 재미는 별로 없었지만, 그럼에도 원작 속에 등장했던 여러 공간을 제한적으로나마 돌아다녀 볼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네요. 오직 이 게임에서만 등장한 히로인 ‘키리시마 마나’가 굉장히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왼쪽: <듀크 뉴켐 3D>, 가운데: <영웅전설3: 하얀마녀>, 오른쪽: <신세기 에반게리온: 강철의 걸프렌드>


④ 친구 따라 PC방

2000년을 지나며 PC방의 시대가 도래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1년에 몇 번 정도는 PC방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다들 <스타크래프트(Starcraft, 1998)>를 했는데, 저도 자연스럽게 몇 번 해보기는 했고요. 물론 실력은 엉망이었지요. 대신 <스타크래프트>의 설정집과 스토리를 읽는 건 좋아했습니다. SF였으니까요. 영화 <에이리언> 시리즈의 팬이다 보니, 저그 종족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지요. <포트리스 2(Fortress 2, 1999)>도 몇 번 해본 기억도 있는데, 제게 탱크 게임이란 곧 <스코치드 어스>였다 보니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냥 의무적으로만 해보는 정도였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에 살면서 주말마다 PC방에 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게임은 안 하고 영화 소식과 예고편만 열심히 찾아본 기억 밖에 없네요.


⑤ 모바일 시대

2010년에 접어들며 모바일 게임의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모바일 기기를 갖고 있다면 좋든 싫든 모바일 게임은 겪어볼 수밖에 없는 시대였지요. 저도 유행 따라 이런저런 앱과 게임을 설치해보고는 했습니다. <앵그리 버드(Angry Birds, 2009)>나 <모뉴먼트 벨리(Monument Valley, 2014)> 같은 게임도 그렇게 스치듯 해봤고요. 역시 오래가지는 않았지만요.


영화에 대한 팬심으로 플레이했던 <아바타(James Cameron's Avator, 2009)>나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Therminator Salvation, 2009)>, 추억 회상을 위해 플레이했던 모바일 버전 <듀크 뉴캠 3D>는 그나마 끝까지 했습니다.


기억을 짚어보면서 의외였던 건, 제가 이미 오래전에 <바이오하자드>와 <사일런트 힐>을 모바일 게임으로 접해 봤었다는 겁니다. 모바일 버전 <바이오하자드 4(Resident Evil 4 Mobile Edition, 2009)>는 아주 파편적인 기억만 남아있고, <사일런트 힐: 디 이스케이프(Silent Hill: The Escape, 2008)>는 컴컴한 복도만 기억이 나네요. 두 게임 모두 도입부만 조금 해보고 지웠던 것 같습니다. 구매 기록을 뒤져보다가 우연히 다시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이 두 작품을 해봤다는 걸 아마 기억도 못했을 겁니다.


지금은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사일런트 힐 2>를 정말 좋아한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네요.

왼쪽: <바이오하자드 4 모바일 에디션>, 오른쪽: <사일런트 힐: 디 이스케이프>


⑥ 잘못된 찍먹

게임과는 동떨어져 살아가다가 <듀크 뉴켐 3D>의 추억을 떠올리며 스팀 계정까지 만들어 구입했던 <듀크 뉴켐 포에버(Duke Nukem Forever, 2011)>는 제 인생 최대의 잘못된 찍먹이었고​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혀를 씻어내고 싶은 경험이었습니다.



겜알못은 언제까지 겜알못인가


비극적인 잘못된 찍먹에서 11년이 지난 2023년 8월,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으로 비디오 게임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로 게임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게임을 시작한 지 이제 2년 반 정도 지났네요. 새롭게 시작한 취미이니 뭐라도 남겨보자는 생각에 게임로그를 쓰기 시작했고요. 처음에는 맥북과 아이패드 같은 애플 기기에서 가능한 것만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최근에는 엑스박스를 구입하기에 이르렀네요. 그동안 인디 게임부터 트리플A 게임까지 36개의 작품을 플레이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겜알못이라는 수식어를 떼기에는 좀 망설여집니다. 여전히 취향은 편협하고 게임의 구조에 대한 이해는 얕으니까요.


평생 만져볼 것 같지 않던 콘솔까지 구입했고 다음에 플레이하고 싶은 게임도 잔뜩 쌓아두기는 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이 취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게임이라는 취미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주의집중력을 필요로 하더라고요. 흙손에게는 더욱 그렇고요.

일단은 세워본 플레이 계획

어쩌면 지금이 제 게임 취미의 클라이막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크게 그리고 오랫동안 기대해 왔고 처음으로 예약까지 해서 구입한 <바이오하자드 레퀴엠(Resident Evil requiem, 2026)>을 플레이하기 시작했으니까요.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이 30대 후반이 되어 뒤늦게 시작한 취미의 막바지 정점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는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의 두 주인공, 그레이스와 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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