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ent Hill f
|타이틀| 사일런트 힐 f (Silent Hill f)
|최초출시일| 2025년 9월 24일
|개발사| NeoBards Entertainment
|유통사| Konami Digital Entertainment
|구입처| Microsoft Store (Xbox)
|사용기기| 엑스박스 시리즈X, 엑스박스 시리즈X|S 컨트롤러
M3 맥북에어와 A17 Pro 아이패드 미니, 그리고 엑스박스 시리즈X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사일런트 힐 f>는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최신작이면서, 시리즈 전통의 주요 무대였던 미국 메인주의 ‘사일런트 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첫 번째 메인 시리즈 작품입니다. 독일의 어느 마을을 배경으로 한 단편 게임 <사일런트 힐: 짧은 메시지 (Silent Hill: The Short Message, 2024)>까지 포함하면 두 번째고요.
개발사 말에 따르면 이제 ‘사일런트 힐’이라는 특정한 마을에 갇히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사일런트 힐 현상’으로 세계관을 확장해 나가려는 시도라고 합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4편부터 일찌감치 라쿤 시티와 작별한 것을 떠올리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선택이기도 하지요(9편에서 다시 돌아갈 예정이지만요). 다만 ‘사일런트 힐’이라는 이름에 담겨 있던 신비감이 조금은 옅어지고, 일종의 정신적 증상처럼 일반화되며 단어의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일런트 힐 f>는 초반에는 <사일런트 힐 2>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주며 꽤 만족스럽게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기대했던 방향과 점점 멀어졌고, 결국에는 큰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 되었습니다. 게임 자체에 결함이 있다기보다는, 작품이 선택한 장르적 전환이 제 취향과 크게 어긋났다고 해야 할 것 같네요.
천천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개인적 비극과 사회적 비극
2. 밀레니엄 J호러의 귀환
3. 사라진 공포, 소모적인 전투
4. 불친절한 정보 결핍과 강요된 다회차
5. 아쉬운 감정선, 설득력 없는 인물 세탁
6. 심리 호러에서 영능력 배틀물로, 그리고 라이트 노벨
7. 좋은 작품, 잘못된 기대
8. 다음 게임
<사일런트 힐 2>가 유독 강렬하게 남았던 이유 중 하나는 한 개인의 비극과 죄책감을 끝까지 밀어붙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 제임스 선덜랜드는 누구를 대표하지도, 어떤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지도 않습니다(물론 어떻게든 읽어내려면 충분히 가능하겠지만요). 제임스는 오직 자기 자신의 후회와 부정 속에서 허우적대다가 결국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대가를 치를 뿐이지요. <사일런트 힐 2>의 공포는 철저히 제임스의 내면에서 발생하고, 그 안에서 완결됩니다.
반면 <사일런트 힐 f>는 조금 다른 방향을 택합니다. 1960년대의 극단적인 가부장적 일본 시골 공동체라는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 당시 기준 결혼 적령기 여성 시미즈 히나코를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 결혼과 임신·출산에 대한 공포, 폐쇄적 공동체의 음험함과 폭력성 같은 여성에게 있어 보다 보편적인 구조적 공포를 전면에 내세웁니다.
의미 있고 시의성 있는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 보편성의 무게가 커질수록, 히나코 개인을 위한 고유한 서사는 상대적으로 희석되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메시지가 비교적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제시되는 순간, 히나코는 강렬한 사건을 통과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처럼 보이는 장면이 생겨나고요.
괴물의 상징성에서도 그 차이가 드러납니다. <사일런트 힐 2>의 괴물들은 극도로 사적인 상징입니다. 제임스(혹은 안젤라)의 삶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지요. 그 기괴함은 특정 인물의 내면에서만 성립하는 공포였어요. 반면 <사일런트 힐 f>의 괴물들은 성차별적 사회나 폐쇄적 공동체 속 억압의 맥락을 알고 있다면, 굳이 히나코라는 개인을 거치지 않아도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사람만의 악몽’이라기보다는 ‘그 시대 그 상황 속에서 나타날 법한 은유’에 가까웠던 거죠.
물론 이것은 제가 남성이라는 위치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성의 경험과 억압을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거리 두어 인식하면서, 히나코의 이야기를 온전한 개인의 서사로 체감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는 거죠.
그럼에도 분명한 차이는 있습니다. <사일런트 힐 2>가 끝까지 한 개인의 죄책감과 후회를 향해 깊이 침잠했다면, <사일런트 힐 f>는 공포의 원천을 개인을 넘어선 시대와 사회까지 확장해 나갑니다. 같은 시리즈의 속에서 전혀 다른 결의 공포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대비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낡은 마을, 생활감이 묻어나는 목조 건물, 도리이 너머로 보이는 작은 신사, 그리고 겉과 속이 달라 보이는 사람들. 어둡고 짙고 선명하면서도 채도는 낮은 풍경 사이로 스며드는 기괴한 징조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공포의 대상. <사일런트 힐 f>의 초반부는 2000년 전후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공포 영화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주인공 시미즈 히나코의 첫인상도 좋았습니다. 웃고 있을 때조차 어딘가 침울해 보이는 표정, 친한 친구들 속에서도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좁히지 못할 것 같은 거리감, 달라지기 시작한 소꿉친구와의 어색한 관계, 누군가의 빈자리가 묘하게 남아있는 가정환경까지, 심리적 호러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었지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치즈루야'라는 과자 가게에서 친구의 죽음을 확인한 히나코가 가게 밖에서 다가오는 '카시마시'라는 기괴한 괴물에게 이런 대사를 뱉는 순간이었습니다.
帰りな。今日はもう閉店だよ。
돌아가. 오늘은 벌써… 문을 닫았어.
예고편부터 화제가 되었던 여고생이 쇠파이프를 들고 끔찍한 괴물을 물리력으로 퇴치한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기는 합니다. 그래서 히나코가 또래보다 키가 크고 운동 신경이 좋으며, 인형놀이보다는 남자아이들과 뛰어노는 걸 좋아했다는 설정이 초반부터 깔려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 대사 한 줄이 나오는 순간, 그런 보강 설명 없이도 그냥 '아, 이런 캐릭터구나'하고 납득을 해버린 것 같네요.
풍경 속 크고 작은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어요. 20대를 일본에서 보내면서 게임 속 목조 건물과 좁은 골목, 오래된 신사를 직접 걸어보기도 했다 보니 익숙한 감정마저 들었습니다. 라무네가 나올 때는 여행지에서 한 병 마셨을 때의 청량감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기도 했고요. 그래서 주요 무대인 '에비스가오카'라는 공간이 스크린 너머에 존재하는 허구의 공간이라기보다 정말 어딘가에 있었을 법한, 직접 발을 들일 수 있을 것 같은 현실의 연장선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풍경 속에 얹힌 음산한 기운이 정말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간은 '아야카카시'는 허수아비가 등장하는 논밭 구간과 중학교 구간이었습니다. 허수아비와 학교 모두 공포물과 유난히 잘 어울리는 소재이자 공간이지요. 허수아비는 기괴한 동작과 섬뜩한 표정, 상징을 상상하게 만드는 퍼즐 구조 덕분에 호기심과 긴장을 동시에 자극했고, 중학교는 교실과 복도, 정원과 운동장을 하나하나 돌아다니며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허수아비가 갑자기 학교 복도에 나타난 순간은 정말 짜릿했고요. 그래서 학교 구간이 생각보다 짧았던 점은 조금 아쉬웠네요.
공포감의 상당 부분을 점프 스케어와 생리적 불쾌함에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공포물로서 충분히 훌륭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 친구 슈의 집을 방문한 다음부터, 이야기와 게임 플레이는 제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일런트 힐> 시리즈에서 이면세계는 언제나 주인공이 자기 내면의 공포와 죄책감을 직접 마주하는 공간이었습니다. 현실의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무언가에 잠식되어 뒤틀리거나 부식되고 무너진 모습하고 있지요. 그래서 <사일런트 힐 2>에서는 같은 건물이라도 이면세계에 들어서는 순간 화면 속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고, 그 낯선 질감이 긴장감을 끌어올렸습니다.
반면 <사일런트 힐 f>의 이면세계는 ‘여우신 사당’이라는 아예 다른 공간입니다. 이전 작품과 달리, 이곳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주 정돈되고 깔끔한 공간입니다. 일본에서 보았던 다양한 성이나 교토의 신사를 밤에 혼자 방문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해서 초반에는 음산한 신선함도 있었고요.
하지만 단 한순간도 무섭지는 않았습니다. 그 대신 맥락 없는 전투가 이어졌지요.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서사를 진행하기 위한 전투라기보다는, 그저 플레이어를 지연시키기 위해 적이 배치된 듯한 인상이 강했습니다. 갑자기 지급되는 언월도는 휘두르는 손맛은 있었지만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결정적으로 흐름이 어긋났다고 느낀 건 ‘여우팔'이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팔을 잘라내고 여우팔을 붙여 새로운 힘을 얻고 나서부터는 게임의 성격이 눈에 띄게 변합니다. 이미 체력 외에도 정신력, 지구력, 집중, 무기 내구도 등 여러 수치가 화면을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적의 혼을 흡수해 채우는 게이지까지 등장합니다. 그렇게 모은 힘으로 폭주 모드 같은 걸 발동하는데…, 더 이상 공포 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사일런트 힐 2>에서는 이면세계에 접어들 때마다 바싹 긴장을 하며 빨리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 달리, <사일런트 힐 f>에서는 여우신 사당에 들어설 때마다 귀찮으니 빨리 지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안개에 잠긴 에비스가오카는 적어도 이곳저곳을 탐색하며 마을 경치를 감상하는 재미라도 있었는데 여우신 사당은 깔끔한 공간치고는 그런 볼거리도 좀 부족했고요.
게임 전반에 있어 아이템 구조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복 아이템만 해도 10종류가 넘고, 체력/정신력/지구력/집중에 제각각 다른 영향을 줍니다. 여기에 조건부 효과를 가진 다양한 부적까지 더해지니 관리 요소가 급격히 늘어나고요. 이런 아이템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제겐 그게 조금 과하게 느껴졌습니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에도 비슷한 아이템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두세 개 자원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수준에 그쳤어요. 특수 아이템들은 어디까지나 공포와 긴장을 관리하는 시스템 정도로만 작동했던 거죠. 하지만 <사일런트 힐 f>에서는 복잡한 아이템과 다양한 게이지 관리가 전면에 나오면서 분위기와 사서에 몰입하는 걸 방해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전투에도 간파 회피라는 걸 하면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거나, 적이 공격 직전에 붉게 빛나는 순간 먼저 공격하면 간파 반격이 가능하다는 시스템이 있습니다. 간파 회피나 간파 공격이 잘 먹혀드는 순간의 쾌감과 재미는 분명히 있었지만, 이런 시스템이 공포와 긴장감을 앗아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역시 많았습니다.
특별한 서사나 진행 없이 자원의 소모와 관리가 이어지고 그저 전투를 위해 준비된 것만 같은 공간이 반복되면서, 공포의 밀도는 점점 옅어졌고 액션 RPG 혹은 소위 소울라이크에 가까운 감각이 강해졌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이 두 장르에 익숙하지 않아서 느낀 편견 혹은 이질감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사일런트 힐 f>는 최소 3회차까지 플레이해야 진짜 엔딩에 도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1회차에서는 결말이 하나뿐이고, 2회차에서는 두 갈래 중 하나, 3회차에 이르러서야 ‘진짜’ 결말이 열립니다. 문제는 이 다회차 구조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사일런트 힐> 시리즈는 원래 다양한 엔딩과 다회차 플레이를 특징으로 삼아왔습니다. <사일런트 힐 2> 역시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1회차에서 세 가지 엔딩 중 하나가 결정되며, 이후에 해석의 여백을 확장할 수 있는 다회차 전용 엔딩이 추가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건 1회차만으로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충분히 성립한다는 점입니다. 다회차는 어디까지나 여운과 해석을 넓히는 선택지였지, 필수 조건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일런트 힐 f>는 1회차에서 어떻게 플레이하든 결말은 하나뿐이고, 그마저도 불완전하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히나코를 ‘사일런트 힐 현상’으로 이끌었는지, 주변 인물들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아요. 그래서 ‘해석의 여백’이 아닌 ‘정보의 보류’를 통해 다회차를 강요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게임이 취향에 맞았던 사람에게 이런 구조는 도전이나 초대처럼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경우에는 그 반대였고요.
애초에 기대했던 장르가 아니었다는 판단에 결국 다회차는 포기하고 유튜브 영상으로 2/3회차 엔딩을 확인했는데, 굳이 다회차에서만 열어둘 이유가 있었는지 의문이 남더군요. 2회차 엔딩은 1회차가 없다고 성립하지 않는 구조가 아니었고, 3회차의 진엔딩 역시 앞선 엔딩이 반드시 선행되어야만 이해 가능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순차적으로 경험하면 여운이 더 깊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건 플레이어의 선택에 맡겨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게임이기에 가능한 경험이기도 하니까요.
다회차는 어디까지나 해석과 여운의 확장이 되어야지, 빠진 맥락의 보충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드라마의 시즌1을 보는데 일부 장면이 의도적으로 빠져있고, 시즌2에서는 90%가 동일한 내용에 새로운 장면은 10% 추가되며, 시즌3에 가서야 시즌2와 90% 같은 내용과 함께 그동안 꼭꼭 숨겨두고 있던 마지막 10%를 마침내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실직적인 이야기는 12화 분량인데, 그걸 보기 위해 거의 같은 시즌을 무조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봐야 한다면 좀 어처구니가 없는 거죠. 빨리감기나 넘어가기가 되지 않는 게임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사일런트 힐 f>는 전작보다 훨씬 많은 설정을 품고 있습니다. 여우 남자, 부모, 친구들, 신적 존재들까지 세계관은 풍부합니다. 플레이할 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장면들도 설정을 파고들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 분명 있고요. 하지만 플레이어는 설정집을 읽기 위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지요. 핵심 서사는 플레이 과정 안에서 자연스럽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3회차 구조까지 활용하면서도 설정의 밀도를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플레이 속에서 새로운 장면은 일부에 불과했고, 상당수의 핵심 정보는 문서나 후반부 컷신에 의존했으니까요. 그래서 순전히 스토리 작가가 1회차만으로 담아내지 못한 욕심을 풀기 위해 다회차를 강요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아마 아닐 테지요).
물론 이런 설계를 완성도 있게 구현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결말을 보기 위해 최소 3회차 플레이를 요구한다면, 플레이어 입장에서도 그만한 경험적 변화는 바랄 수는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본격적인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중반부부터 루프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1회차에 기존 3회차까지의 이야기를 모두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랬다면 아주 색다른 서사적 전환을 통해 이야기의 밀도를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면 2회차부터 히나코가 반복을 자각하거나 이전 회차의 기억을 통해 새로운 결말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렇다면 다회차가 단순한 반복이 아닌 신선한 변주가 되었을 테고, 이런 변주라면 2회차는 물론이고 3회차까지도 굉장히 큰 기대가 되었을 것 같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1회차의 엔딩 '자업자득'이 오히려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그 결말을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공포 게임으로서도 경악을 금치 못할 굉장히 충격적인 엔딩이 되었을 것 같았습니다. 플레이 이후에도 아주 강렬한 뒷맛을 오랫동안 품고 갈 수 있었을 텐데, 다회차 구조를 위해 그 완결성이 희생된 듯해서 아쉬움이 크네요. 솔직히 3회차 진엔딩조차 제게는 문제를 외면하고 갈등을 억지로 봉합하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게임 속에서 시미즈 히나코는 모종의 이유로 세 개의 분열된 존재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임에도 히나코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고요. 2회차에 가서야 조금씩 힌트가 주어지는데, 이조차도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습니다.
다른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회차에서 유난히 음험하거나 악랄해 보였던 인물들의 사정이 3회차에서 뒤늦게 설명이 되는데, 자연스러운 재해석이라기보다는 급하게 보완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런 해명이 그들을 입체적 인물로 만들어주기보다는 오히려 억지 부품처럼 느껴지게 만든 것 같습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히나코 부모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1회차에서 아버지 시미즈 칸타는 무능하면서도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3회차에 가서는 그에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설명이 붙어요. 신부복을 입고 작별을 고하러 온 딸 앞에서 눈물도 흘리고요. 결국 훌륭한 가장은커녕 좋은 가장도 아니었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식의 정리입니다. 그런데 가족의 비극은 대개 그런 안일함과 회피 때문에 끊어지기 어려운 것 아닌가요? 그래서 시미즈 칸타를 '완전한 악인'에서 '사실은 가족을 사랑했던 가장'으로 포장하며 어떻게든 딸이 아버지를 동정하게 만들려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좀 억지스러운 신파적 인물 세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어머니 시미즈 키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회차에서는 폭력적인 남편에게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는 수동적이고 애처로운 중년 여성으로 나오는데, 3회차에 가서는 '사실은 따뜻했던 남편'을 변호하는 인물로 기능합니다. 남편이 병든 자신을 가족 모르게 잘 간호해 주고 있었으며, 자신도 어디까지나 가장의 위엄을 세워주기 위해 순종적인 척을 했을 뿐, 사실은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부부싸움이라는 게 남편이 마실 차에 걸레 빤 물을 넣거나 싫어하는 반찬만 만드는 식입니다. 갈등의 심각함을 희화화하며 다시 한번 시미즈 칸타의 이미지를 완화하는 장치로 작동해요. 그리고 어머니이자 아내인 시미즈 키미에의 역할은 그게 전부입니다.
여우 남자 코토유키나 히나코의 언니 키누타 준코에 대해서도 정도만 다를 뿐, 역시 3회차에서 인물을 억지로 순화시키려고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코토유키는 결국 '그는 착했지만 신이 나빴다'는 식으로 흘러가며 개인의 트라우마 혹은 사회적 억압이 불러온 비극이 갑자기 산으로 가버리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비슷합니다. 1회차에서 무언가 대단한 악연이나 배신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보여줘 놓고, 3회차에 가서는 이런저런 다툼은 있었지만 사실 아끼는 친구였다는 식으로 관계의 복잡성이나 입체성을 확장하기보다는 갈등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생활을 하다 보면 한두 번 정도는 겪거나 목격할 만한 일 정도가 되어버리고요.
그래서 왜 이렇게까지 모두를 '사실은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걸까 싶었어요.
과거의 트라우마가 핵심 키워드인 <사일런트 힐 2>를 통해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접한 저로서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히나코 본인을 포함해 모두가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시미즈 히나코를 '사일런트 힐 현상'으로 밀어 넣은 심리적 동인 혹은 트라우마는 무엇이었을까?
<사일런트 힐 2>에서 제임스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깊고 어두운 죄책감 속에 갇힌 인물이었습니다. 즉, 과거에 대한 후회에 사로잡혀 사일런트 힐 현상에 빠져들었지요. 하지만 히나코는 과거에 커다란 비극을 겪지는 않았고, 가족과 친구들에 대한 복잡한 애증과 결혼/임신/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는 혼인이라는 삶의 변화를 맞이하는 당대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히나코가 시대를 앞서 나간 주체적인 인생관을 가진 어린 여성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제임스와는 달리 과거가 아닌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일런트 힐 현상에 빠져든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분명 '사일런트 힐 현상'을 한 층 더 깊게 만들어주는 흥미로운 차이입니다. 하지만 정보의 결여와 보류에 의존하는 반복적인 3회차 구조, 그리고 인물들의 다소 억지스러운 연출과 재평가가 겹치면서, 정작 플레이어가 따라가야 할 히나코의 감정선은 충분히 단단하게 쌓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 물론 히나코를 사일런트 힐 현상에 빠뜨린 실질적 주범이자 가장 나쁜 놈은 이제 친구라고 말하기도 뭐 한 이와이 슈지만요. 나쁜 의도 없이 저지른 철없는 짓이었다고 치부하기에는 정말 심각한 짓이었어요.
(플레이 영상을 보며) 특히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2회차와 3회차에서 등장하는 최종 보스였습니다. 미스테리한 초자연적 현상 속에서 자신의 내면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싸움이 아니라, 인격화된 신적 존재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구도였기 때문입니다. 심리적 공포물로 시작해 액션 RPG의 형태를 띠더니, 결국에는 영능력 배틀물처럼 전환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취향의 문제겠지만, 제가 기대했던 ‘사일런트 힐’의 공포와는 결이 너무 달랐습니다.
도법인지 마법인지 모를 힘을 쓰는 여우 남자, 쓰러뜨린 적의 혼을 흡수해 폭주 모드를 발동하는 여우팔,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직접 등장해 싸움을 벌이는 인격을 가진 신적 존재. 이 장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2000년대에 읽고 보았던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시선이 바뀌고 나니, 초반에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대사들도 다시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帰りな。今日はもう閉店だよ。
돌아가. 오늘은 이미 문 닫았어.
私をこれ以上怒らせるな!
날 더 이상 화나게 만들지 마!
幸せになりたきゃ努力して運命を変えろ!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해서 운명을 바꿔!
お前が消えるまで!
네놈이 사라질 때까지!
苦しみながら死ね!
고통받으며 죽어!
처음엔 광기에 잠식되어 가는 여고생의 심리가 반영된 절박하고 처절한 외침이라고 생각했지만, 후반부와 2/3회차 결말을 모두 본 뒤에는 이 대사들이 심리적 붕괴의 언어라기보다는 오히려 장르적 클리셰처럼 느껴졌습니다. 인물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공포와 긴장이 사라지는 순간, 인상적이었던 대사들이 전혀 다른 장르의 과장된 결의와 선언으로 치환되어 버린 거죠.
불만을 잔뜩 늘어놓기는 했지만, <사일런트 힐 f>가 나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존 시리즈와는 다른 시스템과 접근을 시도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려고 했지만, 제가 처음 기대했던 방향과는 너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거죠. 이런 기대의 반전이 어떤 플레이어에게는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겠지만, 제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그리고 스토리텔링의 방식 역시 저와는 잘 맞지 않았고요.
제가 다회차 강요라고 말했던 구조도,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어떤 플레이어에게는 즐거운 초대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이야기 역시 전체 서사를 놓고 보면 충분힌 야심과 밀도를 갖추고 촘촘하게 짜여 있습니다. 굉장히 공들여 만든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다만 그걸 게임 플레이에 녹여내는 방식이 제게는 다소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결국 <사일런트 힐 f>가 남긴 가장 큰 아쉬움은 재미의 부족이나 이야기의 빈곤이 아니라 기대에 어긋난 장르적 전환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심리 호러로 시작해 액션 RPG를 거쳐 배틀물로 옮겨가며 각각의 장르가 가진 매력은 보여줬지만, 하나의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수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회차를 통해서만 비로소 완성되는 이야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이야기가 다회차를 통해 더 깊어지는 것이 더 좋은 서사적 경험을 제공한다고 생각하고요.
어쩌면 스토리텔링에 많은 제약이 있는 게임보다는 영상물이나 소설에 더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만약 애니메이션로 나왔다면 굉장히 재미있게 봤을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소설판이 있다고는 하더군요.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시간이 지나 좀 더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경험하고, 1회차의 인상이 조금 옅어진다면 언젠가 2회차를 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는 개인적인 인상과 평가도 크게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2/3회차까지 끝까지 직접 플레이하고 나면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큰 기대에서 시작해 실망스러운 경험으로 남게 되어 굉장히 아쉬운 작품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바이오하자드 레퀴엠(Resident Evil Requiem, 2026)>입니다. 맥북 에어에서 플레이한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는 제가 지금까지 게임을 이어나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고, <바이오하자드 레퀴엠>은 제가 처음으로 예고편 공개 전부터 기대를 품고 출시 전 소식을 챙겨가며 예약까지 한 게임입니다. 제게는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종류의 경험입니다. 비유하자면 매일 집에서 티비로만 영화를 보다가 예고편부터 챙겨보던 영화를 처음으로 극장 개봉일에 가서 보는 것과 비슷하려나요.
하필 출시일이 출장 마지막 날이라서 당일에는 아마 리모트 플레이로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냥 하루 더 기다려서 화질 저하나 딜레이 없이 직접 플레이하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엑스박스 시리즈S를 중고로 하나 사서 들고 가는 것까지 생각까지 했는데 이건 좀 과한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그나저나 이 게임로그를 언제까지 쓰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보지 않을 블로그 글을 쓰기 위해 하루에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무언가 비생산적인 글을 써보자는 생각에 시작한 건데, 어느새 5의 제곱수만큼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6의 제곱수만큼의 글을 쓰는데 데까지 왔네요. 과연 누가 읽을까요? 직접 찾아와 읽고 가시는 분들의 흔적도 심심찮게 발견하지만, 10개 남짓 눌리는 라이킷도 사실 상당수가 매크로에 가까운 홍보용이고 미약한 조회수도 아마 검색용 봇이나 AI학습용 스캔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프롤로그에서 밝혔던 것처럼, 이 글은 별로 관심은 없지만 일단 듣는 척은 해주는 <위 베어 베어스>의 세 마리 곰을 독자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습니다. 언제 멈추든 아무래도 좋고, 언제 재개되어도 이상하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