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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도연 Oct 25. 2023

겜알못의 게임로그 여담1: 컨트롤러 이야기

나는 어떻게 걱정을 멈추고 컨트롤러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는가?

저는 전자기기를 좋아합니다.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 애매하게 말하자면 하드웨어를 좋아한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쓰지 않을 물건이라도요. 일 할 때 말고는 윈도우를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마이크로스프트에서 나온 서피스 제품군에는 큰 관심이 있고 항상 직접 만져보고 싶어요. 특히 킥스탠드와 키보드를 만져보고 싶네요. 아이폰을 쓰고 있어서 삼성의 갤럭시 시리즈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갤럭시 플립이나 폴드의 우아한 힌지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고요.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게임패드라고 부르는 컨트롤러도 제게 그런 존재였어요. 게임과는 인연이 없다 보니 직접 써볼 일은 없지만 여러 개의 버튼과 두 개의 아날로그 스틱이, 그리고 이름 그대로 방아쇠를 연상시키는 트리거가 손에 착 맞는 구조 속에 채워져 있는 기계는 왠지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듀얼쇼크3. 처음으로 손에 들어 본 컨트롤러.

컨트롤러를 처음 가까이서 보고 만져볼 기회가 있었던 건 일본 국립천문대에서 관측회 스탭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어요. 그때 행사 순서를 기다리는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미타카(ミタカ/Mitaka)>라는 천문 시뮬레이션을 시연하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미타카>는 일본 국립천문대의 4차원디지털우주프로젝트에서 개발한 소프트웨어인데 조작장치로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쇼크 컨트롤러를 썼어요. 커다란 화면에 <미타카>를 띄어두고 두 손에 쥔 컨트롤러의 아날로그 스틱과 다양한 버튼을 조작하며 태양계 행성부터 은하 바깥까지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게임은 하지 않더라도 컨트롤러 하나는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 글에서 썼던 것처럼, 결국 첫 컨트롤러는 게임을 위해서 구입하게 되었지요. 조금 기대도 되었어요. 드디어 컨트롤러를 제대로 써보는구나! 하면서.


왼쪽부터 플레이스테이션 듀얼센스,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닌텐도 스위치 프로콘


큰 선택지는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 듀얼센스와 엑스박스 컨트롤러, 닌텐도 스위치 프로콘, 그리고 그 외의 서드파티 컨트롤러.


결국 선택한 건 엑스박스 컨트롤러였습니다. 정확하게는 엑스박스 시리즈 X|S 컨트롤러, 흔히 엑스박스 4세대 무선 컨트롤러라고 하더군요. 플레이스테이션의 듀얼센스가 미래적인 디자인 때문이 보기에는 더 좋았는데 아날로그 스틱의 위치가 비대칭인 게 더 사용하기 편할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으로 엑스박스 컨트롤러를 골랐습니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을 처음 플레이했던 닌텐도 스위치의 조이콘+그립과는 오른쪽 버튼의 배열이 달라서 처음엔 조금 당황했지만 어차피 스위치로는 조금밖에 하지 않았던 터라 엑스박스의 배열에 금방 익숙해졌습니다.


제대로 된 컨트롤러로 게임을 해보니 역시 느낌이 다르더군요. 정말 손에 어떤 도구를 잡고 있다는 감각이 전해져서 좀 더 현장감이 느껴졌습니다. 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동 기능도 좋았어요. 화면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정보와 분위기를 전달해 줬습니다.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제노모프가 다가올 때마다 발소리에 맞춰 진동이 울리다 보니 긴장감이 훨씬 증폭되었어요.


게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새벽과 점심시간 정도밖에 없다 보니 회사에 갈 때도 컨트롤러를 챙겨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컨트롤러들의 내구성이 일반적으로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특히 스틱은 360도 구동부인 동시에 틈새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언젠가 먼지 유입 따위로 고장이 날 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먼지 가득한 가방에 넣고 다니기 위해서는 이동용 케이스가 필요했어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케이스를 검색하면 핸드폰 케이스처럼 착용한 상태로 사용하기 위한 것만 나왔습니다. 제가 원한 건 운반용 케이스였기 때문에 스틱이나 버튼에 구멍이 숭숭 뚫린 건 쓸 수가 없었어요. 운반용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니었는데 전부 부피가 컨트롤러보다 훨씬 큰 묵직한 것들 뿐이었습니다. 이래서는 가볍게 가방에 넣고 다니기가 어렵죠.


엑스박스 컨트롤러 캐링 케이스. 한국에는 이런 케이스의 수요가 없는 걸까요?

제가 원한 건 불필요한 부분 없이 컨트롤러 크기에 딱 맞는 케이스였어요. 한국에서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아서 미국 아마존에서 검색을 했더니 제가 원하던 게 바로 나오더라고요. 물건 값과 동일한 수준의 배송료를 지불하며 바로 구입했습니다. 덕분에 어딜 가든 컨트롤러를 가방에 대충 쑤셔놓고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이제 회사에 갈 때나 출장 갈 때나 큰 부담 없이 들고 다닙니다.


엑스박스 컨트롤러 플레이앤차지 킷

또 한 가지 추가로 구입한 건 배터리입니다. 배터리는 엑스박스 컨트롤러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내장 배터리를 사용하는 듀얼센스와는 달리, 엑스박스 컨트롤러는 AA타입 건전지를 쓰는데요, 건전지를 교체하는 게 귀찮다는 사람과 배터리 수명이 떨어질 때마다 컨트롤러를 버릴 필요가 없어서 좋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 다 쓴 건전지 쌓아두는 걸 싫어해요. 건전지는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항상 따로 분리를 해둬야 하는데 그때그때 버리기가 너무 번거로운 거죠. 특히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장난감에서 나오는 다 쓴 건전지의 양이 제법 많았던 터라 더욱 그랬습니다. 


다행히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AA 건전지 대신 쓸 수 있는 충전용 배터리를 따로 출시하고 있었기에 그걸 구입해서 건전지 대신 넣었어요. 충전지를 빼서 따로 충전할 필요 없이 그냥 컨트롤러에 케이블을 연결하면 충전되다 보니 내장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쓸 수 있었습니다. AA 건전지보다는 사용시간이 좀 짧지만 애초에 많이 쓰는 편도 아니니 큰 문제는 아니었고요.


그렇게 해서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컨트롤러가 완성되었습니다. 완성이라기에는 이동용 케이스 하나 사고 충전용 배터리를 넣은 것뿐이지만요.


지금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에이리언: 아이솔레이션>과 <툼 레이더>를 클리어하고 <바이오하자드 빌리지(Resident Evil Village, 2021)>를 플레이하고 있어요. <툼 레이더>와 <바이오하자드 빌리지>를 하는 동안 국내외 출장이 여러 번 있었고 그때마다 컨트롤러를 들고 다니며 플레이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게임을 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방에서 꺼낼 일이 없어서 사실 어딜 가든 들고 다니는 것에 가까워요.


컨트롤러가 새로운 취미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되었다 보니 애착이 조금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엑스박스 디자인랩이라는 걸 발견했어요. 사용자가 컨트롤러의 재질과 색깔 등 디자인을 직접 고를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나만의 컨트롤러를 만들 수 있는 거죠.

엑스박스 디자인 랩에서 만들어 본 컨트롤러 디자인.

그래서 두 가지를 만들어 봤습니다. 달착륙선과 아폴로 시절 우주비행사를 컨셉으로 한 것, 그리고 그냥 좋아하는 색을 대충 때려 넣은 것입니다.


색만 바꾸면 기본형 컨트롤러와 가격이 똑같습니다. 물론 할인 없는 가격이지만요. 저는 여기저기 재질을 바꿨다 보니 가격이 10만 원을 훌쩍 넘더라고요. 지금 쓰는 기본형 컨트롤러를 할인가로 5만 원 정도에 구입했는데 두 배 이상이라니. 아쉽지만 일단 첫 컨트롤러가 고장 날 때까지는 참아봐야겠어요.


나중에 알아보니 플레이스테이션 5의 듀얼센스가 새로운 기술이 많이 적용된 차세대 컨트롤러에 가깝다고 하더라고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드웨어를 좋아하다 보니 듀얼센스에도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이미 엑스박스 컨트롤러의 비대칭 디자인에 익숙해져서 듀얼센서를 직접 만져봤을 땐 좀 어색하더라고요. 물론 조금 써보면 금방 익숙해지겠지만 그러면 또 사고 싶어질 테니 더 이상 만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맥북으로 게임을 하기 때문에 키보드와 마우스라는 선택지도 있기는 합니다. 아이패드 역시 키보드와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고요. 키보드와 마우스로 플레이하는 것만의 매력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컨트롤러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면 그냥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제게 키보드는 일하는 물건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 쓰는 건 물론이고 작가로서 일을 할 때도 키보드를 두드리죠. 그래서 키보드로 놀고 싶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우스. 맥은 트랙패드가 마우스보다 훨씬 편하기 때문에 평소에 마우스 자체를 잘 쓰지 않아요. 마우스는 비상용으로 책상 밑에 하나 챙겨두고 있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컨트롤러라는 기계 자체에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손에 꼭 들어오는 기계를 잡고 아날로그 스틱을 돌리며 트리거를 당기는 느낌의 매력이 게임을 하는 이유의 적어도 40% 정도는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손에 들고 있기만 해도 이리저리 움직이고 누르고 싶어지는 기분이에요.


컨트롤러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두서없는 이야기였는데요, 브런치에 쓰는 모든 글은 두서없이 쓸 생각입니다. 글 쓸 때 골머리 앓는 건 청탁 원고 쓸 때로 충분하니까요.


다음 글은 아마 <툼 레이더> 게임로그가 될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올해가 끝나기 전에는 쓰겠지요.



겜알못의 게임로그

맥북에어(2022)나 아이패드 프로(2020)에서 가능한 것만 합니다. 컨트롤러로만 합니다. 싱글 플레이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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