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반찬
처음 외로움의 괴물이 찾아온 건 여덟 살 때였다. 그날은 엄마도 없었고, 아빠도 없었고, 할머니도 없었다.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했다. 자연스럽게 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나 같은 아이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덟 살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집이 비어 있다는 것만 느꼈다.
할머니는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집에 있었다. 밥상에는 늘 김이 올라와 있었다. 접시 한가운데 가지런히 놓인 김. 다른 반찬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항상 김뿐이다. 나는 다른 반찬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밥을 김에 싸서 조용히 먹었다. 한 장, 또 한 장. 김의 짠맛이 입안에 먼저 퍼지고, 밥은 그 뒤를 따라왔다. 그렇게 먹으면 이상하게도 배가 빨리 찼다. 할머니가 말했다.
- 윤제이! 다른 반찬도 같이 먹어야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 김 있잖아.
할머니는 그 말에 더 묻지 않았다. 김 접시만 조금 앞으로 밀어주곤 했다.
그렇게 하루는 늘 비슷하게 흘러갔다.
항상 햇님이 불을 끄기 전, 할머니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하늘의 불이 꺼졌는데도 할머니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고, 집 안은 조용했다.
그저 외로움의 괴물만이 나와 함께 하고 있었다
학교는 할머니 집에서 멀었다. 버스를 타야 했고, 정류장까지 걷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을 더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집 앞 놀이터 가로등 아래에 쪼그려 앉았다.
- 애야, 깜깜한데 혼자 뭐 하니?”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물었다.
- 할머니 기다려요.
아주머니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가로등 불빛이 생각보다 어두웠다.
- 혼자 있으면 위험해. 어서 들어가.
그 말만 남기고 아주머니는 불빛 밖으로 사라졌다.
모래 위에 나뭇가지를 끌며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얼굴은 엄마였다. 엄마와 아빠를 본 지 한 달이 넘은 것 같았다. 얼굴이 흐려질까 봐 기억을 여러 번 꺼냈다. 조그만 손으로 나뭇가지를 꼭 쥐고 부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엄마의 눈, 코, 입을 그렸다. 아마도 외로움의 괴물과 싸우기 위해 엄마를 불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는 어떤 괴물도 이길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놀이터 미끄럼틀 사이로 보이던 꼬부랑 길에서도 할머니의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내 곁에 남아 있던 건 나무 한 그루와 나비 두 마리, 그리고 줄을 지어 지나가던 개미들이었다. 나는 눈물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손을 내밀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달라고. 그 순간,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가볍게,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 있던 것처럼. 얼굴이 아니라 꼬리 쪽을 보니 이상하게도 외계인처럼 보였다. 입이 뻥긋뻥긋 움직이는 것 같았고,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모래 위에 그린 엄마 얼굴 위로 개미들이 지나갔다. 그 모습이 마치 그림을 완성해 주는 것 같았다.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그때 달빛이 내려왔다. 둥근 빛이 내 얼굴과 모래 위 그림을 조용히 비췄다. 외로움의 괴물은 그 순간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을 알아주는 첫 번째 친구들을 만났다.
달빛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빛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깨 위의 나비를 가만히 두었다. 쫓아낼 생각도, 만질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있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나비는 가볍게 숨을 쉬고 있었고, 그 숨은 아주 작아서 들리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외로움의 괴물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괴물은 늘 있었다. 다만, 혼자가 아닐 때는 조금 작아질 뿐이었다.
놀이터 미끄럼틀 사이로 보인 꼬부랑길에서 익숙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생각할 틈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 할머니!
달님이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내 목소리가 밤공기를 먼저 가르며 달려갔다. 그리고 그대로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는 잠깐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 아이고! 오래 기다렸지?
그 말은 묻는 말 같았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 어여 들어가자! 밥 먹어야지.
달님이 볼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기다렸는지,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꼬부랑길은 그날따라 조금 덜 구부러져 보였다. 집에 들어서자 불이 켜졌고, 밥상에는 김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날도 김에 밥을 싸서 먹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날 밤은 혼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의 괴물은 문 밖에 남아 있었고, 나는 할머니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