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집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숨 쉬는 게 불편해졌다. 어깨가 먼저 올라갔고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제야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 왜 이렇게까지 하는데.
목소리가 커졌다. 생각보다 컸다. 말을 꺼내는 순간 더는 멈출 수가 없었다.
- 도대체 왜.
- 이게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 다 나가세요.
- 다 나가시라고.
집 안이 한순간에 흐트러졌다.
사람들이 서로를 보며 움직였고, 누군가는 물러났고 누군가는 말하려다 멈췄다. 경찰관들도 쉽게 나서지 못했다. 무전기를 쥔 채 상황만 살피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을 보며 다시 말했다.
- 병원 갈 거면 제가 알아서 갈게요.
- 그러니까 제발 나가주세요.
목소리는 커져 있었지만 말은 분명했다. 억지로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갈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문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오갔다.
- 거 봐요. 억지로는 데려갈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덧붙였다.
- 본인이 동의해야 같이 갈 수 있어요.
그 말이 집 안을 가르듯 지나갔다. 실랑이는 계속됐다. 몸은 가만히 있지 못했고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어디까지가 내 몸이고 어디부터가 소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경찰관의 무전기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엉킨 숨소리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때였다.
"펑".
밖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집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곧바로 무전기에서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재 발생.”
경찰관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짧은 말들이 오갔고, 그들은 서둘러 현관 쪽으로 몸을 옮겼다.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리다 짧게 말을 남겼다.
- 이렇게는 안 됩니다.
- 이런 방식으로는 데려갈 수 없어요.
곧이어 문이 닫혔다.
집 안에는 가족들만 남았다. 조금 전까지 가득 차 있던 소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어색한 숨소리만 남았다. 부모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 병원 가자.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었다. 부탁에 가까운 말이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집 안이 갑자기 넓어 보였다.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공간이 한순간에 비워진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가게 되는 건지, 지금 이 선택이 무엇을 바꾸는 건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정작 생각은 정리되지 않았다. 부모님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빠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 다 기다리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 침묵이 말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몸 안쪽에서 조금 전과는 다른 긴장이 올라왔다. 버티는 쪽이 아니라 결정해야 하는 쪽의 긴장이었다. 잠깐, 아주 잠깐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어.
입을 열기 전, 숨을 한 번 고르며 몸 안쪽의 흔들림이 가라앉는 걸 느꼈다.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아져 있었다. 크지도, 급하지도 않았다. 잠시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집 안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눈빛도, 막아보려는 표정도 아니었다. 그저 내 다음 말을 기다리는 얼굴들이었다. 그 사이 몸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바닥을 딛고 서 있다는 감각이 분명했다. 머릿속도 아까처럼 흩어져 있지 않았다. 그제야 다시 입을 열었다.
- 나 혼자 운전해서 갈 거야.
말은 더하지 않았다.
그 한 문장으로 충분하다고 느꼈다. 그 말을 하는 동안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고, 말은 중간에서 끊기지 않았다. 누군가를 향해 설명하듯 말하지도, 부탁하듯 낮추지도 않았다. 집 안이 조금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바뀌었다. 무언가를 재확인하려던 기색이 잠시 멈춘 얼굴들이었다. 아무도 바로 말을 잇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길게 느껴졌다.
잠시 멈춰 서서 흩어진 생각들을 다시 맞추려 했다.
돌이켜보면 이상할 만큼 우연이 많았다. 설명하려고 하면 괜히 더 복잡해질 정도로. 아침 일찍 목욕탕으로 향하던 길에서 외삼촌을 만났다. 정해진 약속은 아니었는데 삼촌은 아무렇지 않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마치 나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목욕탕으로 바로 가지 않고 가는 길에 외할아버지 집에 들렀다. 문을 열자 할아버지는 이미 우리가 올 걸 알고 있던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깐 인사를 하고,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목욕을 마친 뒤 외삼촌과 둘이 돈가스를 먹었다. 식당에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 둘 뿐이었다. 접시 위에서 김이 천천히 올라왔다. 삼촌은 잠시 휴대폰을 내려다보더니 조카가 집에 와 있다고 했다.
- 소유랑 월미도 갈 거라는데 같이 갈래?
삼촌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 말도 이상하게 자연스러웠다. 갑작스럽지 않았고, 설명도 필요 없었다. 오늘은 외로움의 괴물이 잠시 모습을 감춘 날처럼 보였다. 사람이 있었고, 일정이 이어졌고,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몸은 반응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그저 정해진 순서대로 하루를 통과하고 있었다. 마치 어디로 가는지 이미 정해진 사람처럼. 지금 생각해 보면 오늘의 우연들은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나를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 하나씩 놓여 있었던 것 같았다. 외삼촌을 만난 것도, 할아버지 집에 들른 것도, 함께 밥을 먹고 놀이동산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문을 여는 순간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오늘 하루가 그 장면을 위해 차근차근 준비되어 있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