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 나에게 할머니였다,

엄마, 나 괜찮아.

by 해관

그날 집에는 평소와 다른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짙은 색 옷을 입은 경찰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집 안의 가구보다도 더 단단해 보였고, 하얀 가운을 입은 두 남자는 왜 그렇게 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좋아 보였다. 그 하얀 가운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어깨와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고, 숨을 쉬고 있는데도 공기가 충분히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몸 안쪽 어딘가가 천천히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은 괜히 더 크게 뛰었고, 가슴 안에서 딱딱한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서서 내 몸이 먼저 긴장해 버린 걸 알아차렸다.


가족들은 이미 모두 모여 있었고, 그 누구도 나를 반기듯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의 시선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내가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물건이 된 것처럼, 혹은 아주 작은 자극에도 폭발할 수 있는 존재인 것처럼. 그 눈빛 속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고, 그 두 감정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 기분은 어젯밤에도 나를 따라다녔다.


어젯밤,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부엌을 먼저 보았다. 몸이 먼저 그쪽으로 향했다. 싱크대 옆에 있어야 할 칼이 보이지 않았고, 서랍 속에 늘 있던 가위도 없었다. 부엌 한쪽은 지나치게 말끔했다. 꼭 없어야 할 것들만 골라 치운 것처럼. 나는 그 앞에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엌은 유난히 조용했고, 그 빈자리는 나를 피해 남겨진 것처럼 보였다.


집 안은 그대로였다. 그 틈에서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그날 얼굴이 유난히 창백해 보였다. 빛을 덜 받은 것처럼, 얼굴에 혈색이 없었다. 가만히 서 있었지만 몸 전체가 긴장한 사람 같았다. 어깨는 조금 올라가 있었고, 손은 같은 자리를 몇 번이나 만졌다 놓았다. 내가 말을 걸자 엄마는 잠깐 나를 보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때 엄마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걸 보았다. 눈을 크게 뜨지도, 찡그리지도 않았는데 그 안에서만 작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흔들림은 어떤 말보다 먼저 와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잠시 움직이지 못했다. 발이 바닥에 붙은 것 같았다.


집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현관문에 걸린 종이 유난히 크게 울렸다. 짧은소리였는데 공기 속에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사람들의 숨소리가 느껴졌다. 누군가는 숨을 들이쉬었고, 누군가는 내쉬었다. 마치 모두가 동시에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관의 무전기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 성함과 주민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이는 고개를 돌렸다.

- 무슨 일이시죠?

경찰관은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말해주지 못했다. 문장들은 중간에서 끊겼고, 의미는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 부모님께서 신고를 하셨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제야 엄마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 괜찮아. 괜찮아. 너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괜찮아.

엄마는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나는 바지에 손을 움켜잡았다.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엄마를 설득할 문장을 찾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 응, 엄마. 나 괜찮아.

나는 ‘괜찮아’라는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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