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반팔을 입어도 되었을 만큼 여름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햇빛이 쨍하게 내리쬐던 낮과 얼음이 가득 든 음료가 전해주는 차가움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있는 듯한데, 언제부터인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싸늘한 바람이 계절을 앞질러 골목을 채웠다. 20도를 웃돌던 기온이 단숨에 4도까지 떨어면서, 몸은 아직 여름과 가을의 사이 어디쯤에 머물러 있는데 바람만 먼저 겨울을 기억해 버린 것 같았다.
이 추위가 단지 계절때문이라기 보다는 내가 지금 어느 지점에서 금이 가고 있는지를 들추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더 아팠다. 피곤한 하루였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내 마음이 허전했고,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엔 아직 완전히 부서지진 않은 상태였다. 그냥 조금씩 금이 퍼져나가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그런 밤이었다.
화요일,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 허겁지겁 하차한 은행 앞에서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흐릿한 가로등불빛 아래, 작고 빨간 노점을 열어둔 노부부였다. 불편한 오른팔은 주머니에 넣어 고정한 채 왼팔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붕어빵을 구워내는 할아버지와, 밝은 목소리로 손님을 맞이하는 통통한 할머니. 천 원에 여섯 마리였던 붕어빵은 어느새 불쑥 오른 물가를 따라 세 마리로 줄어 있었다. 슈크림과 팥. 단출한 메뉴판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반갑게 인사하시는 할머니의 팔에 이끌려 붕어빵 틀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응응.."
뇌출혈 후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왼팔에는 붕어빵 기계에 덴 흉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흔적이라기보다는, 기계 앞에 계속 서있기로 다짐한 하나의 약속처럼 보였다. 쉴 새 없이 구워지는 붕어빵 틀 위로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그 김을 따라 시선을 천천히 들었다. 짙은 하양에서 점점 옅어져 공기 중으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저 하얀 김들도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짧은 생각이 스치자, 그 생각에 기대고 있는 나 자신이 어딘가 낯설었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것이 우습다기보다는, 그마저도 붙들고 있어야 할 만큼 마음에 빈틈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어딘가 씁쓸했다.
"팥 천 원어치만 주세요."
"응응"
하얀 종이봉투 안으로 통통한 붕어빵 몇 마리가 들어갔다.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 횡단보도를 건넜다. 발걸음을 따라 봉투 안에서 바스락거리며 서로 부딪히는 붕어빵의 소리가 싫지 않았다. 틈새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맴돈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그 냄새에 갑자기 침샘이 찌릿했다.
찬바람이 휘잉- 하고 얼굴을 스쳤다. 흩어지는 앞머리와 귓속을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 식어버릴세라 붕어빵 봉투를 품 안 깊숙이 넣었다. 금세 붕어빵의 온기가 갈비뼈를 따라 가슴께를 간질이며 온몸으로 퍼져나갈 때, 내가 생각보다 꽤 많이 식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위로나 기쁨이라 부르기엔 미약했지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들어주는 얇은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사람이란 건 참으로 간사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 내 어깨에 매달린 피로와 스트레스가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했는데, 단돈 천 원이 가져다준 온기 하나만으로 풀어지는 기분이라니.
그날 내가 삼킨 것은 붕어빵 속 팥이었을까, 아니면 '아직 조금은 더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까. 그것은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그 붉은 천막 안에서 나는 여전히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붙잡힌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예전에도 완전히 무너질 듯한 순간에, 뜨겁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어떤 온기가 나를 다시 도로 위로 올려놓았던 적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글을 쓴다는 행위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인지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시기를 지나던 적이 있었다. 일과 아르바이트, 부업 사이를 오가며 하루하루의 나이테를 새겨가고 있던 중 노트북을 두들기는 일이 점차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쓰기에 쓰는 시간을 돈벌이에 사용했다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불안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피어올랐다. '작가'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조차 나에겐 과한 잘난 척이 아닐까, 뜬구름을 잡는 일이 아닐까 두려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탈퇴'버튼 위로 마우스를 가져갔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날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쓰고 있던 소설의 한 페이지를 발행하는 날이었다.
'이제 남은 건 8페이지.'
그렇게 작가로서의 시한부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와 목덜미를 쥐었다. 메말랐던 눈가에 눈물은 차오르고 귀 끝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멍하니 앉아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은 상태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혼자 남은 사무실의 적막을 깨고 검은 휴대폰 화면에서 브런치 알림이 울렸다.
"산책을 하다가 걸음을 멈추고 읽었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댓글이 달렸다. 짧은 문장 속에 꺼내어진 심장 위로 잘 말린 목화 솜이 덮혀지는 듯했다. 누군가가 내 글을 통해 단 몇 초라도 걸음을 멈추었다는 사실은, 내가 쓴 글이 곧 지워질 낙서가 아니라 잠시나마 그의 다리를 붙잡을 수 있다는 반증이라고 여겨졌다. 진심인지, 지나가며 남긴 예의인지 그때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내 글이 완전히 쓸모없는 것이었다는 생각을 잠시 지울 수 있었다.
그 댓글을 남긴 작가님은 나를 무작정 잡아끌어 올린 사람은 아니었다. 축 쳐진 내 어깨 위로 가만히 손을 올려 "여기까지 왔다면 조금은 더 가볼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찾아보려면 다시 찾아볼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으려 한다. 그것이 희망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무너지는 것을 잠시 유예시키는 한 줄기의 압력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댓글 하나가 내 마음을 완전히 태우지는 못했어도, 그때의 불씨가 지금도 나의 손바닥에 남아 나를 데워주고 있다는 것과 다시는 얼어붙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그날 내가 붙잡은 것은 위로라는 이름의 거창함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도록 가슴 한쪽에 서서히 스며든 미약한 온기였다. 그리고 그 온기는 눈에 띄지 않게 나를 다시 '다음 글 발행하기' 버튼 위로 떠밀었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삶이 완전히 밝아졌던 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만, 분명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었던 체온들이 만들어내는 온기가 내 안을 비집고 들어오던 순간들이었다. 천 원짜리 한 장으로 건네받았던 작은 붕어빵의 온기. 그것이 나의 얼어있던 몸을 녹여주었다면, 산책 중 걸음을 멈추고 남겨주었던 짧은 댓글 한 줄은 주저앉으려던 나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아 주는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그것들은 화려한 위로도, 확실한 축복도 아니었지만 삶이 멈추는 것을 막아준 조용한 신호였다. 그 미세한 신호들이 있었던 덕에 나는 느린 걸음이라 할지라도 내 인생의 다음 경로를 위해 다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었다.
행복이란 어쩌면 폭죽처럼 화려하게 한꺼번에 폭발하듯 터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조금씩 모여 부서지려 하는 나를 잠시라도 붙들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괜찮다'라는 확신이 아니라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라는 아주 희미한 가능성을 느끼는 것. 나는 그런 순간들을 통해 몇 번이고 벗어났던 경로를 다시 찾아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인가'라고 묻는다면, 번쩍이는 기억 대신 천 원짜리 붕어빵의 미지근한 온기와 산책 중 걸음을 멈추고 남겨주었던 몇 글자의 댓글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순간들이 나를 완전히 구원해내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그만큼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붕괴를 유예할 정도의 온기. 그 온기를 한 손에 꼭 쥐고 오늘도 내일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