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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아니냐고요? 갓 마흔입니다만

by 해이




나는 내 손을 부끄러워한 적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손은 유난히도 새하얗고 곱게만 보였다. 나보다 더 많은 나이의 사람들조차 손가락은 매끈했고 손등은 촉촉해 보였다. 그런데 내 손은 늘 거칠었고, 마디마다 굳은살처럼 두께가 생겼다. 덕장에 널어둔 황태처럼 버석하게 수분이 빠져나가버린 표면은 찬바람이 불 때마다 갈라지기를 반복했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부업 탓에 작은 상처들로 가득했다. 문득 그런 손을 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온 시간 전부가 이 손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감추고 싶으면서도 도무지 감춰지지 않는 흔적들. 생계를 위해 해온 온갖 일들, 버티기 위해 잡았던 잡다한 일거리들, 어릴 때부터 '돈은 실용적으로 써야 한다'라고 배워온 환경. 나는 필요 이상의 것을 만져본 적이 없었다. 결국 그 최소한의 삶이 이 손에 깊게 각인된 것인지도 모른다.


스물네 살, 처음으로 네일아트 용품 도매상에서 일했을 때 나는 화려한 세계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세계와는 도무지 맞닿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책상 위에는 반짝이는 파츠들과 컬러젤이 줄지어 있었고, 조그만 손톱 하나에 화려한 아트를 만들어내는 네일리스트들의 샘플이 가득했다. 향이 진한 핸드크림이 수십 종류나 줄을 서 있었고, 유리병처럼 매끄럽고 얇은 손가락을 가진 손님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사이에 서 있는 나는 손등 하나도 촉촉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수천 가지의 매니큐어 색 이름을 줄줄 외우고, 케어 도구를 누구보다 잘 알고, 네일 학원에서 강의까지 했을 정도였지만 정작 내 손톱은 바라보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꾸미는 데에는 인색했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당시의 나는 치장이라는 단어를 철저히 '나와 무관한 세계'로 분리해두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갓 마흔을 넘긴 지금, 내 손은 더 이상 젊은 사람의 손으로 보이지 않는다. 손등 위 피부는 얇아졌고 핏줄은 더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겨울마다 조그만 틈이 생기고, 봄이 와도 그 틈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어떤 날은 기름기 하나 없이 뽀얗게 말라버려 손등을 움직일 때마다 따끔거리는 통증이 찾아온다. 하지만 신기한 건, 이런 불편함들 속에서도 나는 점점 내 손을 미워하지 않게 되어간다는 사실이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는 이 거친 손을 감추려고 애썼다. 휴대폰을 들고 있다가도 괜히 손등이 보일까 싶어 옷소매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잡힌 굳은살이 눈에 띌까 봐 주머니에 넣어 감추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이런 흔적들이 자꾸만 익숙한 위안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 손으로 살아남았고, 이 손으로 버텼고, 이 손으로 수많은 순간을 넘어왔다.


돌이켜보면 내 손이 이렇게 변해온 데에는 아주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했던 아르바이트들, 새벽까지 일하던 물류센터에서의 시간들, 짧은 시간 안에 닦고 치워내야 했던 기계들, 종일 붙들고 있던 서류들, 온갖 잡동사니를 옮기느라 마디가 붓던 날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내 손은 별다른 불평 없이 그 일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나는 이 손이 고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 번도 고생을 원망해 본 적은 없다. 마치 '아직은 할만하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손에게도 그런 말을 되뇌며 살아왔다. 그래서일까, 내 손은 나보다 먼저 나이를 먹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끄럽지는 않다. 오히려 그 세월의 증거들이 내 안에서 어떠한 자부심처럼 일어난다.


사람들은 종종 손을 보고 상대의 인생을 읽는다. 부드러운 손을 가진 사람은 편안한 삶을 살았을 것 같고, 거친 손을 가진 사람은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런 말은 어쩐지 단편적이지만,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내 손은 나이보다 먼저 늙었고, 또래보다 거칠고, 남들이 보기에 다소 투박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손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쌓아온 그간의 삶을 본다. 버티느라 놓쳐버린 시간들, 끝까지 붙잡고 버텼던 날들, 포기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앞질러 행동했던 순간들. 그 모든 것들이 주름 사이에 스며 있다. 손바닥 굴곡마다 붙어있는 굳은살은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쥐었던 무거운 것들의 흔적이고, 마디마다 깊어진 선들은 내가 지나온 계절들이 각인된 지도 같다. 과거에는 비록 잘 몰랐을지언정, 이제는 이 흔적들 하나하나가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해 준다.


사람마다 자기 손에 기대하는 그림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부드러운 손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관리 잘 된 손에 자존감을 느낀다. 나도 한때는 그런 손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는 다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내 손은 나를 닮았고, 내가 견뎌온 날들을 닮았다. 이 손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가 살아온 방식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게 된다. 나는 이 손으로 상처도 닦았고, 무너진 마음도 일으켰고, 삶의 다양한 실패들 또한 새 살로 이어 붙여온 사람이다. 그런 손이 조금 거칠고 조금 빠르게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그 가치를 의심할 이유는 없다.


앞으로 이 손이 얼마나 더 거칠어질지, 얼마나 더 두꺼워질지 나는 모른다. 아마 지금보다 더 마르고, 더 많은 주름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변화가 두렵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어쩌면 견딜 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손으로 사는 데 익숙하고, 이 손의 무게를 이미 오랫동안 견뎌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이 손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자주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시간을 조용히 쓰다듬는다. 사람들은 손에 나이가 드러난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이 손에는 나의 인생이 들어 있다고. 그리고 그 인생을 나는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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