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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소] 메타 오피스 클럽 4화

가난의 냄새

by 해이

민정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젖혔다. 눅눅한 공기 속에 골목 가로등 불빛이 출렁이듯 흔들리고 있었지만,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심장이 한 번 ‘쿵’ 하고 내려앉았다.


“...환청인가?”


하지만 민정은 직감했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민정은 방 안의 불을 끄지 않았다. 그저 담배를 깊게 문 입술을 달싹이며 연기만 내뿜을 뿐.



누렇게 벗겨진 형광등 커버 속에서 깜빡이는 불빛이 방 한쪽, 곰팡이가 가득한 벽에 얼룩처럼 드리워졌다. 눅눅한 지하방 특유의 습기 어린 냄새와 향수의 우디한 향이 섞여 묘한 공기를 만들었다. 값싼 침대 매트리스 위에 누워 담배를 문 그녀는 귀를 기울였다.

위층에선 원두를 가는 소리가 나고, 옆방에선 술 취한 남자가 욕을 퍼붓다가 곧 여자 비명 소리와 함께 문을 쾅 닫는 소리가 들렸다.

“염병, 지랄을..”


민정은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가난이란 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공간을 낡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무슨 물건이든 여기 들어오면 곧 썩어빠진 것 처럼 보였고, 누가 살든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민정은 늘 방 한쪽 서랍에 고이 모셔둔 향수를 포기하지 않았다. 가난의 냄새라도 숨겨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은 유리처럼 반짝였다. 커피머신 소리와 키보드 타건음이 섞이며 사무실은 ‘근면의 합창’을 부르는 듯했다. 은지는 평소처럼 환한 미소를 띠고, ESG 봉사활동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지난주에도 유기견 보호소 다녀왔는데요, 정말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은 ‘좋아요’ 버튼을 누르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민정은 뒤에서 씩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선한 이미지가 아니야. 돈 냄새지.”



그녀의 시선이 은지를 정확히 겨냥했다.


점심 시간이 다가왔다. 영준 차장은 여전히 부은 볼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농담을 던졌다.


“아, 어제 모기한테 제대로 물렸네. 한 방에 훅 갔어.”


직원들이 웃는 둥 마는 둥 반응하자, 그는 괜히 더 크게 웃어 보였다.


은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차장님, 혹시 민정 대리랑은 오래 아신 사이예요?”


그녀는 웃으며 물었지만, 영준의 눈빛은 순간 흔들렸다.

“뭐...그냥 회사에서 아는 사이지.”


그의 대답은 시원치 않았고, 오히려 은지는 확신을 얻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점심 시간.
은지가 자연스럽게 인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을 때, 민정이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주변 공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민정은 일부러 은지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밥, 맛있어 보여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식당의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를 모조리 집어삼키는 힘이 있었다.

은지는 웃으며 대꾸했다.


“민정 대리님도 어제 많이 놀라셨죠? 곱등이 때문에 다들...”


“아니요, 전 괜찮았어요. 어차피 잡았으니까.”

은지가 더 말을 잇기 전에, 민정이 날카롭게 베어냈다.


“근데요, 은지 씨. 착한 이미지 팔아먹는 것도 적당히 하시죠.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거든.”

은지의 손이 젓가락을 움켜쥐다 멈췄다.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살짝 흔들렸다.

“민정 대리님은 여전히 직설적이시네요.”
“난 원래 그래요. 직설적이지 않으면, 돈이 안 되거든요.”

식탁 위에 보이지 않는 칼날이 몇 번이고 부딪혀 불꽃을 튀기는 듯한 순간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만 씹었다.






퇴근길.

민정은 지하방으로 향하는 골목길을 걸었다. 습기가 밤공기에 배어들어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가로등불에 비쳐져 더욱 도드라졌다. 잘록한 허리 위로 달빛이 쏟아져 내리며, 순간 그녀는 도시의 음습한 골목을 걷는 누군가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배우처럼 보였다.

민정은 자기 몸매가 남의 시선을 붙잡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때는 그 미모 하나로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을 뻔한 적이 있었다. 적당히 능력 있는 남자에게 안기면, 이 고단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기회는 늘 교묘하게 빗나갔다.
특히 딱 은지 어쏘 같은 부류 때문에.
예쁘장한 얼굴에 착한 미소, 봉사활동과 ESG 활동으로 포장된 ‘여시’들의 이미지 장사 앞에서, 민정의 날것 같은 매력은 언제나 천박하게 소비되곤 했다.

그때마다 민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세상은 결국 이미지 장사꾼들 편이지. 진짜 필요한 건 돈 냄샌데.”


그녀는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불꽃이 잠시 얼굴을 비추자, 그 불빛 뒤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민정은 일부러 담배 불을 바닥에 털며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영준 차장이 서 있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민정의 목소리는 놀란 듯했지만, 눈빛은 오히려 장난스러웠다.

영준은 능청스럽게 웃었다.


“집까지 같이 걸어드리죠. 어두우니까.”


민정은 미소를 지었다.


“차장님, 돈 없으시잖아요. 괜찮으세요?”


짧은 정적이 골목을 삼켰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뒤따라오는 또 다른 발소리와 겹쳐졌다.



누군가가

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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