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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해이 : 기억으로 짠한 문장을 빚다.

by 해이





A. 시작의 이유


1. 글을 처음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시작이랄 게 따로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낙서처럼, 게임처럼 가볍게 나에게 보내는 이메일이나 카톡,

휴대폰 메모장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두곤 했어요.

화났던 일, 눈물 났던 순간, 재미있었던 기억, 짧은 편지,

갑자기 번쩍 떠오른 문장들 같은 것들이요.

그러다 우연히 '카카오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글들을 옮겨 쓰기 시작한 게 계기라면 계기겠지요.


2.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감정이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글의 종류마다 달라요.

〈유년기 에세이〉에서는 추억과 회상의 그리움이 중심이라면,

〈고시원 연가〉에서는 짠함 속에서도

슬픔에 잠식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지려 해요.

은정토스트〉에서는 현실 앞에서도 잃지 않는 긍정,

〈동화외전〉에서는 약간의 섬뜩함과 냉소가 있죠.

결국 어떤 글이든 작중 화자에 이입해서 쓴다는 점이 저의 공통된 태도예요.


3. 당신의 글은 당신을 어디로 데려가나요?

대부분 제 글 속에 등장하는 '그때'로 돌아가요.

불에 탄 폐허, 무역센터 앞 길가, 버스정류장 같은 장소들로요.

그곳에서 어릴 적 나를 만나기도 하고,

〈엄마는 거기 없었다〉의 영주나 〈고시원 연가〉의 김 차장,

〈은정토스트〉의 은정이도 다시 만나죠.

글을 쓰면 저는 늘 제 세계의 인물들과 재회하게 돼요.


4.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나 장소가 있나요?

특별한 시간대는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회사에서 잘 써져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_<)


5. 당신의 글이 가장 자주 출발하는 감정은 어느 쪽인가요?

'짠함'이에요.

짠하면서도 우습고, 짠하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짠하면서도 어딘가 당찬 글들.

제 글의 기저엔 늘 그런 감정이 깔려 있어요.



B. 작가의 세계관과 개성


6. 당신의 글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인가요?

보라색이요.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색.

어쩐지 그게 제 글의 온도와 닮았다고 느껴요.


7. 글을 쓸 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나 이미지가 있나요?

과거와 추억이요.

돌이켜보면 제 글은 늘 '지나간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더라고요.

지금까지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이 인터뷰를 계기로 처음 자각하게 되었어요.


8. 독자들이 당신의 글을 읽고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나요?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감정이었으면 좋겠어요.

슬픔, 분노, 고독 같은 감정도 결국 독자에게 흥미로워야 남잖아요.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한마디를 고르라면

저는 주저 없이 "재미"라고 말할 거예요.


9. 글을 쓰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각각 무엇인가요?

잃은 건 '망각'이에요.

글을 쓰면 잊고 싶던 일조차 또렷해지거든요.

대신 얻은 건 '사람'입니다.

브런치에서 같은 꿈을 꾸는 작가님들과 만나고,

서로의 글을 나누며 배운 게 제겐 큰 행운이에요.


10. 이건 다른 작가들과 차별된다고 생각한다, 하는 나만의 장점이 있나요?

깡촌에서 자란 덕분에

동년배 작가님들과는 조금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덕에 유년기 에세이를 쓸 때

조금은 새로운 시선과 정서를 담을 수 있죠.



C. 작가로서의 목표와 애정


11. 글을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조금은 거창한 꿈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출판사와 손잡고 제 이름으로 책을 내고 싶어요.

그리고 제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지는 상상도 자주 해요.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요.


12.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본인 글은 무엇인가요?

〈고시원 연가〉요.

다른 글보다 훨씬 오랜 시간 준비했고,

한 회 한 회 쓸 때마다 스트레스를 느낄 정도로

제 에너지를 쏟아부은 작품이에요.


13. 이 글만큼은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은요?

역시 〈고시원 연가〉입니다.

제가 인생 드라마로 꼽는 작품이 〈응답하라 1988〉인데요,

그 감성과 제 경험을 합친

"해이만의 응답하라 1988" 같은 작품이에요.


14. 내 글 중 가장 애정하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고시원 연가〉 5화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왜... 왜 도와주셨어요?"
그의 어깨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등은 그대로인 채, 목소리만 돌아왔다.
"제 딸도... 고등학생입니다."

두 인물이 주고받는 단 두 문장 안에

그들의 서사 전체가 담겨 있기를 바랐어요.

몇천 자의 서사가 이 대화로 설명될 수 있기를 바라며 썼죠.


15. 그 문장을 쓸 때의 상황이나 마음을 기억하고 있나요?

일찍 부모를 잃은 자매와,

사춘기 딸을 두고 이혼을 한 중년의 사내에게 동시에 이입해서 썼어요.

문장을 완성했을 땐 묘하게 시원했지만,

그만큼 마음 한켠이 무겁기도 했답니다.



D. 작가의 일상과 글의 온도


16. 글을 쓸 때 당신만의 루틴이 있나요?

특별한 루틴은 없어요.

다만 글을 쓰기 전에는 조용한 환경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17. 글 외의 일상에서 영감을 주는 건 어떤 순간인가요?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을 때요.

그 속에서 단어 하나, 감정 하나, 장면 하나를 얻어요.

그리고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에서도 영감을 받아요.

시장 상인의 손짓, 퇴근길의 버스 불빛, 길가의 꽃 한 송이에서도요.


18. 당신의 글상(글의 기운)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제가 작성한 질문지이지만, 이 문항은 특별히 어렵게 느껴지네요.

음..'기다림'이요.

제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

새 연재를 기다리는 독자가 있다는 건 큰 행복이니까요.

저 역시 그런 기다림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E. 다음 작가에게


19. 나만 알고 싶었던, 애정하는 작가를 추천해 주세요.

마른틈 님입니다.


20. 다음 인터뷰어를 이분으로 추천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글에 대한 편식이 꽤 심한 편이에요.

주로 저와 비슷한 결의 글을 쓰는 분들의 작품을 자주 읽고 좋아하죠.

그래서 @마른틈 작가님을 좋아한다 하면 의아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어요.

그분은 저와는 전혀 다른 결의 글을 쓰시거든요.


마른틈 작가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달빛바람 작가님이 만든 오픈채팅방이었어요.

그곳에서 작가님들의 브런치 링크를 받아

한 편, 한 편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꽤 많은 글을 읽어 내려간 뒤였죠.


그분의 글에는 단단하고 조용한 문장 뒤로,

심연에서 끌어올린 듯한 무거운 마음이 느껴졌어요.

슬픔을 직접 드러내거나 화려한 미사여구로 꾸민 문장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깔끔하고 정제된 문장들이었죠.


그런데 그 문장들이 가진 힘은 실로 강렬했어요.

그 안에 숨겨진 장면들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또 재생되더라고요.

문장 안에 분명 체온이 있었어요.

소리를 내지 않아도 제 마음이 흔들렸고,

심장이 뛰었어요.


그 글 안에 저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제가 존재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죠.


'글이란 것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구나'

그걸 깨닫게 해 주신 분이 바로 마른틈 작가님이에요.


이 연재북은 사실, 마른틈 작가님을 소개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21. 지금 당신에게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나를 인정하고 드러내는 과정'이에요.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쓰는 일.

그게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큰 힘이에요.






글이란 결국 마음의 기억을 꺼내어,
누군가의 세계와 맞닿는 일이라고 믿어요.

한 명의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들려주고,
또 다른 작가에게 질문을 건넬 때,
그 사이에서 또 하나의 문장이 태어납니다.

《글이 태어나는 순간》은 그렇게 이어집니다.


어쩌면 글이 태어나는 찰나는,
누군가의 마음이 조용히 움직이는 순간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그 마음의 바통을 마른틈 작가님께 건넵니다.
다음 이야기에선 또 다른 온도의 문장과
또 다른 세계룰 만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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