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로컬 브랜드가 될 수 있나 봐 2
마음을 먹은 지 며칠이나 되었을까요, 여상하게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가 파운드 관악 3기 교육 참여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관악에서 로컬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은 예비 창업자와 기존 창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었죠. 내 고민을 메타가 훔쳐 들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 맞는 타이밍이었습니다. 광고를 보고 곧바로 신청서를 작성했던 게 기억납니다. 지난 1년 간 관악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지금 관악형 로컬 브랜드 사업에 참여하며 어떤 어려움을 느꼈는지, 로컬 브랜드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배우고 싶은지로 빈칸을 채워갔습니다. 사실 물질적 지원보다는 교육에 초점이 맞춰진 사업이라 이 정도 지원서면 수월하게 붙지 않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률이 꽤 높았더라고요. 감사하게 받은 자리였습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진행된 교육에서는 로컬 브랜드의 정의부터 BLC 워크시트 작성법, 기초 사업 이론까지 여러 연사분들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어떤 날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상태에서 참석하기도 했고, 보통 점심시간이 막 끝나고 식곤증이 몰려올 시간이라 수업 태도가 유난히 좋았다고 생각되진 않네요. 차가운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불가항력적으로 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지나고 보니 후회되는 점입니다.
그래도 로컬 브랜드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정의는 마음속 깊이 와닿았습니다. 정확한 목적을 가지고 정교히 기획된 타 로컬 브랜드와 다르게, 저는 살던 곳에서 아무 논리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벌였던 터라 스스로 헷갈리는 지점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거꾸로 된 출발점에서 제대로 앞을 보고 달릴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파운드 관악 교육을 들으면서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하는 것' 자체가 로컬 브랜드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미 있는 자원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신규 자원이 되는 것이죠. 특히 마지막 사업 계획서 발표 전 이루어졌던 멘토링에서 '만약 내가 해일막걸리를 방문한다면, 당신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 게 완벽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지원할 때만 하더라도 꼭 1등을 해서 상금을 받아야지! 하고 당차게 꿈꿨지만, 교육 횟수가 늘어갈수록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들었습니다. 참신한 사업 아이템과 활동적인 대표님들 사이에서 해일막걸리는 주목받지 못했거든요. 첫 자기소개를 제외하고 해일막걸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소개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미래 비전이나 지난 과제를 공유하는 자리에서도, 기존 창업자들에게 현재 사업 현황을 묻는 시간에서도요. 자유 멘토링 시간에 한 멘토님이 저에게 운영하는 브랜드가 무엇인지 물어보시기에 해일막걸리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더니, 제가 답변하는 동안 제 눈 대신 휴대폰을 보시더라고요. 음, 관심이 없으시구나. 해일막걸리가 그리 매력적이진 않구나. 냉정한 현실을 본 기분이었습니다.
상권 필드트립이 해일막걸리가 있는 신림동에서 대학동으로 바뀌었을 때나, 해일막걸리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은 투자나 스마트스토어 운영에 관련한 교육을 들었을 때는 이 시간이 정녕 도움이 되는가 하는 의문도 품었습니다. 쓸모없는 배움은 없고 다 언젠가 이 경험을 활용하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요. 그래서 그런지 처음 사업계획서의 골자를 세울 때는 정말 의욕이 없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겨우 프레젠테이션 테마만 완성했죠. 어차피 안 될 거라는 패배주의에 잠식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사업계획서 제출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나서야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었습니다. 서두를 뭘로 할까 한참을 고민했는데, 역시 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살고 싶은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배움을 중심으로 이전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하필 그 주에 일이 많아서 발표 연습도 몇 번 밖에 하지 못했어요. 발표 시간 5분을 맞추기 위해서 중요한 내용만 고작 두어 번 반복해 본 게 다였습니다. 심지어 발표 당일에는 오전에 행사가 있어 매장에서 짐을 챙겨 성동구로 갔다가, 다시 관악구로 돌아와서 제 발표를 마치고, 발표가 끝나자마자 잠시 마포구에 들린 다음, 다시 심사 결과를 들으러 관악구로 돌아오는 아주 혹독한 일정이 잡혔습니다. 중요한 자리인 건 알았지만 온전히 발표에만 신경을 쓸 수 없었어요.
각 일정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큰일 나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제시간에 발표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주어진 5분을 10여 초 남기고 발표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정신을 잡지 못해서 질의응답은 거하게 망쳤죠. 막걸리 제조에 대한 전문성을 물어보시는 데 갑자기 제조방법 승인에 세 번 실패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를 않나, 출시 예정인 막걸리의 대중적인 기호성을 여쭤보시는 데 몸을 배배 꼬며 제 입맛이 꽤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하지를 않나. 일단 말을 내뱉어 놓고 뇌에서는 뭐 하는 거냐 그만 멈추라는 신호가 울리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진 않았죠. 제가 연단에 서있는 게 아니었다면 말하다 말고 제 입을 스스로 틀어막거나 이마에 딱밤을 때렸을 겁니다.
그래도 기대가 없었으니까 이대로 잊히면 된다! 하며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 돌아왔는데요, 결과 발표 이전에 심사위원분들이 전체적인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사업 계획을 발표할 때의 태도나 복장, 사업으로서 숫자로 말하는 것 등 조언 하나하나가 마음에 꽂히더라고요. 다 제가 잘 못한 부분 같아서요. 이후 장려상부터 우수상까지 차례차례 다른 대표님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더없이 착잡해졌습니다. 물론 함께 멘토링을 하거나 필드트립을 한 대표님들이 수상을 하셔서 기쁘긴 했지만요. 그래, 오늘 와서 비싼 과일이라도 간식으로 먹고 가니 남는 게 있긴 있다.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남은 대상에서 해일막걸리가 호명되었습니다. 정말로 놀라서 듣자마자 비명을 질렀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거든요.
상을 받고 소감을 말하고, 후에 영상 인터뷰도 하는데 너무 얼떨떨하고 정신이 없어서 또 이상한 말만 한 것 같아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벅차오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뭔가 미안하기도 하고. 그중에서도 저를 제일 크게 흔들었던 건, 드디어 인정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창업을 준비할 때부터 지금까지 제 사업 계획은 늘 한결같았거든요. 둘러싼 논리만 약간씩 바뀌었을 뿐, 언제나 즐거운 콘텐츠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막걸리를 파는 아담한 양조장이 된다는 게 중심이었어요. 하지만 늘 이런 심사자리에서는 '그래서 도대체 뭘 하고 싶다는 거냐'는 핀잔이나 '그 많은 걸 혼자 할 수 있겠냐' 혹은 '사업이 유지될 거라고 생각하냐'는 불신만 받아 봤습니다. 네 진정성을 느꼈고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준 심사장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참 감사한데, 이 기쁨을 완전히 누려도 되는가 의구심이 피어올랐습니다. 수많은 팀들을 제치고 내가 제일 열심히 참여했는가? 아니오. 발표된 계획 중에 나의 사업이 가장 유망했는가? 아니오. 과거의 나처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간절히 상금이 필요했는가? (해막의 법인 통장 상황도 안 좋지만) 아니오. 그렇다면 마침내 인정받은 이 영광을 모두 나의 공로라고 볼 수 있는가? 아니오.
오로지 나의 몫이 아닌 행운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귀갓길에 내린 결론은 '이 행운을 나눠주자'였습니다. 대상이라는 명예는 나눌 수 없지만, 상금은 나눌 수 있기에 소액 기부를 결정했습니다. 어쨌든 관악에 자리 잡은 청년 사업가를 위해 지원되는 상금이니, 나와 같은 관악 청년에게 약간이라도 전달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언젠가 모두 청년이었을 노인분들께도요. 순수한 선의는 아니고, 제 부채감을 덜고 싶다는 이기적인 의도지만요. 관악구청에 연락해 기부 방법을 안내받고 상금이 들어온 다음날 바로 입금을 마쳤습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였어요. 드디어 후련하더군요.
대상이라는 성대한 결과로 2024년을 마무리하고 2025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잠깐이라도 매장에 들르고 있고요. 손님이 오시면 오시는 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예약이 없으면 없는 대로 늦잠을 자고 슬렁슬렁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기도 합니다. 내가 행복한 게 제일이라는 신조를 유지하며 월 수익이나 손익분기점에 시시각각 불안해하지도 않고요. (음, 언제까지 태평할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긴 합니다만.) 미뤄뒀던 행정 업무를 하기도 해요. 계속 해일막걸리를 하며 살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이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해일막걸리와 살고 있는 중입니다.
감히 관악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겠다고 선언하지는 못하지만, 올해에도 여기 지금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해일막걸리가 될게요. 때로는 벅차고 부담스러워도, 살아내고야 마는 해일막걸리를 지켜봐 주세요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