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되는 해일막걸리 3.0
오랜만이에요. 잔뜩 미뤄놨던 일들이 한 번에 덮쳐 오는 바람에 이제야 키보드를 두드려 봅니다. 저는 여상한 날들을 보냈어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는데도 아직도 아침엔 눈을 뜨는 게 힘들고, 자야 하는 시간엔 쉬이 눈을 감기 아쉬워요. 제가 하루를 더 산만큼 해일막걸리도 하루를 더 살았습니다. 손님을 만나고, 체험을 준비하고, 외부 행사도 다녀오고, 각종 서류와 행정 작업을 해내면서요. 그리고 이제야 이름값을 하게 되었어요. 곧 막걸리가 나오거든요.
아, 막걸리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 게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인가 싶어요. 벌써 결심으로부터는 2년 반 정도, 양조장 공간을 마련한 것부터는 1년 반 정도가 흘렀네요. 하지만 또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시간을 내어 준만큼 원하는 술의 맛과 향을 찾았고, 스트레스도 (전혀 없던 건 아니고) 덜 받았으니까요. 그동안 내년에, 여름에, 10월에, 다시 또 내년 초에 막걸리가 나온다고 여러 번 말을 바꾸면서 정말 양치기 소년이 된 것 같았는데요. 이제는 진짜 '이번 봄'에 첫 술이 나옵니다.
얼마 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살짝 보여 드렸지만, 오래 기다려주신 만큼 4종의 막걸리를 한 번에 낼 예정입니다. <해일막걸리> 먼저 소개드리자면, 이름처럼 해일막걸리의 기본이자 정체성을 담은 막걸리입니다. 유기농 멥쌀을 주원료로 술을 빚고, 찹쌀의 구수한 단맛을 듬뿍 담았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고 만들기 원했던, 달달한 막걸리예요. 알코올 도수는 9도라서 너무 싱겁지도, 너무 독하지도 않습니다. 뒷맛도 아주 깔끔해요. 병은 소우주 오아시스의 병을 함께 사용합니다. 막걸리 병을 반납해 주시면, 깨끗이 살균소독하여 파손되기 전까지 다시 사용됩니다. 맛있는 막걸리도 그렇지만, 제가 가장 꿈꿔왔던 공병 순환을 이룬 게 가장 자랑스러운 부분이에요. 이 점은 나중에 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4번의 시도 끝에 제조 방법이 통과됐고, 주질 감정까지 차례차례 통과했어요. 여기까지만 하고 양조장에서 바로 술을 팔 수도 있었지만 이왕 하는 거 끝까지 해보자 싶어서 식품가공제조업 등록도 하고, 품목제조보고도 마쳤습니다. 장장 8시간 동안 진행되는 신규 제조업 위생 교육도 수료했고요. 상표 등록은 진행 중이고, 새로 디자인한 포장 일부도 발주 중입니다. 이 일들은 모두 올해 해냈네요.
2월 초에는 그동안 방치되었던 양조장을 싹 청소하고, 밑술과 덧술을 담갔습니다. 지금은 총 40kg의 본담금을 마친 상태인데, 이게 보통의 양조장치고는 매우 적은 양이지만 저한테는 엄청나게 힘들더라고요. 밑술 담그는 데만 7시간이 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답니다. 덧술은 수월하겠거니 했는데, 그것도 아닌지라 술 담그는 날은 모두 거친 노동을 마치고 새벽 퇴근을 했습니다. 하하! 위생복을 열두 번도 더 넘게 입었다 벗었다 했던 밤을 정말 잊지 못할 거예요... 어쨌든 지금 술덧들은 향긋한 향기를 폴폴 풍기면서 잘 삭고 있습니다. 뭐, 중간중간 탄산 때문에 술덧이 넘쳐흘러 때아닌 바닥 청소를 했다, 술통이 너무 무거워서 힘들고 슬프다, 새 물건을 사도 사도 필요한 게 또 생긴다 이런 하소연이 있는데요. 해막에 놀러 오시면 안줏거리로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양조장에서 남은 할 일은 채주와 숙성, 병입, 그리고 청소 등이 있고요. 양조장 밖에서는 쌀뜨물로 아이스팩도 만들고, 라벨도 뽑고, 사진도 찍고, 포스터도 만들고 하는 가내수공업이 남았네요. 이 일을 모두 마치고 나면 해일막걸리 구석에서 잠자코 있던 쇼케이스에 드디어 불이 들어오겠죠!
아마 제가 제일 기대하는 중이기에, 어제도, 오늘도, 술덧을 저어 주면서 무사히 발효를 마칠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내일도 변함없을 거예요. 모든 준비를 마치면, 막걸리들을 아주 소중히 품에 안고 인사드리러 다시 오겠습니다. 아마 봄꽃이 필 즈음일 거예요.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곧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