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과정마저 존엄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2025년 6월호>

by 성해인


무릇 웃음을 간직한다는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귀한 역량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무구한 이는 애틋하지만 한편으로 경시하기 쉬워 동정이 들고, 순수를 가장하여 행복을 누리는 이들이 내심 질투가 나다가도 시기를 인정할 줄 아는 것이 행복을 행한 길이라는 구절에 이기심을 숨깁니다.


나는 아직 어립니다. 때는 그것을 자랑스러워하였고, 한편으로는 그 사실에 싫증이 났습니다. 까치발을 들어 저 너머를 보려 하지 않아도 언젠가 노년에 착륙할 텐데, 나는 황급히 내면이 주름 진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땅히 정해둔 지점은 없습니다. 언젠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 존재하리라 믿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그날에도 여전히 나는 나일지 그토록 궁금합니다. 한 뼘 짜리 푸닥거리에 신음하며 고작 사랑 따위에 휘둘릴지. 그날의 상처는 꾸준히 아물지 못한 채 나를 툭툭 괴롭힐지. 소음에 불과한 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또 다른 개인이라며.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는 평생의 다짐이 부러져, 과연 언젠가 사상에 매몰되어 목청만 커지는 것은 아닐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것이 무어냐는 질문은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자꾸만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가치는 의미를 곧 상실하고는 하는데, 아울러 취향은 머지않아 편향이 되니 여생을 정처 없이 사는 것이 때로 바람직하겠습니다. 무엇 하나 뚜렷하지 못하고, 흐릿한 채 흘러가는 나는 여전히 미흡하지만, 무엇 때문인지 여전히도 시시한 고집 따위가 마음 깊이 자리합니다. 유독 두드러지는 파편만을 모아 그 조각집을 나인 양 행세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인데, 행복을 의무적으로 전시해야만 행복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행을 무기 삼아 몸집을 부풀려야만 한다면, 그것을 행복이라 칭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비관의 유혹을 매 때마다 뿌리칩니다.


유혹은, 말하자면 목줄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달콤한 무력감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올가미처럼 느껴집니다. 모두가 그 앞에서 눈치를 볼 때, 나는 감히 한 발짝 나아가기로 했습니다. 진실은 점잖은 외면 속에 자취를 감추곤 하기에, 나마저 스스로를 합리화해 버리면 도무지 나일 수 없을 것 같다는 같잖은 고집입니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그러나 침묵이 예의라 여겨질 때조차 말을 꺼내는 이를 손가락질하는 시대 속에서, 나는 도리어 한마디를 참지 않으려 합니다. 무해한 고백은 때로 전복적이지만 단지 두렵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한낱 떨림이 세상의 무게를 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오늘 명확히 다짐합니다. 나는 한평생을 철저한 미완으로 살겠습니다. 엉성한 마음을 테가 나도록 꿰매어도 기왕 앙상한 모습이겠지만 적어도 하늘 아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리라는 퍽이나 근사한 아집과 함께. 나의 미완이 일종의 미덕으로 작용하기를 소망하며, 나는 끝끝내 완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라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하나의 방식으로, 작은 확신을 품고 살아갑니다. 먼 후에 노년에 착륙할 적에, 나의 미완이 누군가의 용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완성되지 않기에 더욱 진실한 마음으로,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 아니라 지워지는 과정마저 존엄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서투르지만 조용히 그러나 필사적으로, 빼곡한 기록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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