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조금만 더 다정했으면

<2025년 7월호>

by 성해인


간혹 누군가를 너무 오래 바라보다가, 그 흐릿한 테두리만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계절도 그렇다. 올해도 여름은 오고 있지만, 나는 여름을 떠올릴 때마다 그 주변부, 그러니까 여름이 되기 직전의 조금 이상하고 어중간한 공기만을 떠올린다. 습하고 흐린 날씨 속에서 반소매를 입을까 망설이게 되는 그 며칠을 기준으로 날을 되새긴다.


누가 그랬다. 인생은 고르게 굽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아직 어떻게 굽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덜 익은 부분과 태운 자국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느낌은 든다. 내가 나를 완전히 익히는 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새벽이 훌쩍 넘어, 지친 탓에 나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괜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의미 없는 갤러리를 넘기고, 타인의 삶을 괜히 기웃거리는 게 전부다. 시간도, 마음도, 조명도. 무엇도 공짜가 없다. 일정을 스스로 만들어야만 돌아가는 직업이 그렇다. 일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대신 아무것도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런 생활 속에서 오래 살다 보니, 가끔은 내가 일에 사는 건지, 일이 나를 살리는 건지 헷갈린다. 요즘은 둘 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냥 뭐든, 습관처럼 한다. 습관이라는 건 참 무섭다. 감정도, 결정도, 심지어 삶까지도 습관이 된다. 그런데 또, 그게 싫진 않다. 그래도 살아내고 있다는 표식 같아서.


점장님은 쭈그려 바닐라빈 베이스를 찾던 내 정수리를 보고 말했다. “흰머리 뽑아도 돼요?” 그 말이 아저씨가 된 것 같아서 괜히 웃겼다. 예전엔 흰머리 하나도, 여드름처럼 툭 튀어나온 생채기 같았는데,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날 퇴근하고 아저씨들이 가는 구석진 동네 식당에 들어가선 갈비탕을 시켰다. 국물 한 숟갈 뜨는데, 식당 아주머니가 김치 한 접시 더 줄까 물었고, 나는 “고마워염! 이모 최고!” 라고 대답했다. 고맙다는 말은 잘 나왔다. 엊그제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데려다준 아빠한테는 아무런 인사도 못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봤다. 눈 아래가 살짝 붓고, 턱에 작은 뾰루지가 돋아 있었다. “좀 피곤했나 보다.” 혼잣말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내 하루는 전부 피곤하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그것은 방어일 수도 있고, 신호일 수도 있다.


어떻든 또 밤이 된다. 하루가 지나갔다는 게 실감 나는 유일한 순간이다. 괜히 잠에 들기 싫어 새벽에 몸을 비빈다. 잠에 들면 또 내일이 오고, 내일이 오면 또 일을 해야 하니까. 불을 다 끄고 소파에 가만히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루치 에너지를 일에 써버리면 외로움에 쓸 여유가 없다. 바쁘면 외롭지 않다는 말은, 아마도 외로움을 미루는 방식일 것이다. 마음이 애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가만히 있다고 뭐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지금은 뭐든 다 괜찮았으면 좋겠는 마음.


멀리서 택시 경적이 들리고,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도 들린다. 이런 것들이 나를 위로한다. 요즘 나는 참 이상한 기준으로 위로를 받고 있다. 보잘것 않더라도 꾸준히 존재를 증명하는 것들이 나를 지탱해 주는 요즘이다. 존재와 형태보단 그들이 지닌 꾸준함에 집중한다. 나는 그것이 참 좋다. 새벽이 움직임을 멈추는 아주 가끔, 침묵이 문득 뚜렷해질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은 참 싫다.


글은 여전히 쓴다. 그런데 요즘엔 문장이 자꾸만 가볍다. 어떤 날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다가, 너무 무거워서 '좋아'로 낮춘다. '좋아'도 거슬려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문장을 끝낸다. 그러면 문장이 아니라, 그냥 쉼표다. 올해 여름의 문장은 대개 쉼표에 기대어 산다. 그러니 침묵은 지금으로서 최선의 다정이다.


근데 또 웃기지. 이런 하루 끝에서도 나는 또 한 번 생각한다. ‘그래도 내일은 좀 나아질까?’ 이 질문이 바보 같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내일에 기대게 된다.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 그냥 사소한 바람이겠만 아주 작은 기대 말이다. 흰머리가 피어나고, 과로로 쓰러지고. 사랑을 하지 않아도, 그래도 살아진다. 그냥 살아지는 능력, 이건 21세기에서 엄청난 능력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을 마감한다. 거창하게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하루의 끄트머리에 앉아 내 신발끈을 살짝 조여 본다.

.

.

.

7월의 파편. 어묵탕에 머리를 푹 처박으며 지랄 맞은 수다. 궁상맞은 얘기. 일이 너무 바쁘다며. 얼굴 보기가 힘들다 그치. 눈치 보며 서로를 탓하다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탓하고. 이런 상황을 방치한 나를 탓하고. 벌써 가려고? 조금만 더 있자. 안돼 내일 학교 가야 돼. 응. 얼마예요? 49700원입니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 오늘은 내가 살게. 라고 말하고 싶은데. 하필 오늘 월세 나간 날이야. 멋진 척 못하겠다. 반올림해서 이만 오천 원 보내줄게! 반올림.. 짜치지만 그게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새로운 사람을 접할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관계를 유지할 정도의 비용은 필요한 셈이지.
그게 꼭 돈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감정에도 유효기간이 있더라.
그러니까, 끝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그냥 끝이야.
그걸 받아들여
예술도, 표현도, 기록도 다 좋아.
근데 너의 생각에 네가 잡아먹히면 답이 없어.
예술병 걸리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하자.

지금처럼만.

내 걸음은 내 두 다리에 달려 있잖아.


저벅-


폰을 슬쩍 들여다본다. 연락이 왔나 하고.
잘 살고 있으면 좋겠다.
…아, 아니지. 너무 또 행복은 안 했으면 좋겠어.
아 나 왜 이렇게 하남자 같냐.

날은 또 왜 이렇게 더워.
웃고 울다가, 뜨거운 여름.
내가 데려온 나의 고민은 어딨으려나.
드그득— 선풍기 소리에 묻혀버린,
따스한 여름이 푹 덮어버린.

쫄딱 젖어 푸스스 산발이 된.


스무 살의 조각집에는 이렇게 적혀 있더라

가끔 나를 살리는 건 문장이 아니라 문장 바깥의 무언가이다.

애새끼가 인생을 다 아는 척 꼴값은.

하지만 말이야

간혹 누군가를 꽉 껴안고 싶은 계절이 있잖아.
애인을 베개 삼아 품에서 정수리를 힐끔 보고 싶고

몸이 상할 정도로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도 않아

엄마아빠한테 감정 표현을 부끄러워하고 싶지도 않고

감정의 유효를 모르던 때로 가고 싶다가도

그것이 지난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야

단지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그 모든 날의 책임이 온전히 내 것이 되니

가끔은 내려놓고 싶다가도

이 여름, 어떤 것들이 남고 어떤 것들을 남길 지

먼 훗날 이때를 뒤돌아 볼 때

기억될 만한 오늘이었으면 좋겠어


그래, 그런 거지 뭐.

집에 가기 싫다

코노 갔다 갈래?

응 좋아

그래도 문장은 마무리 지어야지


아-

여름이 조금만 더 다정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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