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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바다 Apr 07. 2021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

먹고살기가 이렇게 엄중한 일이다

        

언제부턴가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나면 왼쪽 골반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며칠이면 괜찮아지겠거니 생각한 지가 몇 달이 되어 결국 척추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엑스레이만 찍어 보고도 내 통증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장담했다. 그는 나의 척추 디스크가 눌려서 통증이 왼쪽 골반으로 향하는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의사의 권유에 비싼 도수 치료를 몇 번 받았지만, 다음 날이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날 때마다 왼쪽 허리를 잡고 ‘끙’ 소리를 내뱉어야 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같은 자세로 10년을 일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무직이라면 으레 겪는 일일 테다. 보수적으로 잡아서 1년에 6권, 10년간 총 60권의 책을 만들어 내는 여정에서 허리 병을 얻었다. (나는 책 만드는 노동을 하고 있다.)       




“아빠, 팔 들어 봐. 이게 안 돼?”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의 노동. 그렇게 25년도 넘는 세월 동안 세탁소 일을 하며 살아온 아빠는 그야말로 ‘황소처럼’ 일했다. 그렇게 우직하게 수십 년을 일한 결과, 팔을 위로 들어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어깨의 가동 범위가 좁아졌다. 매일같이 일하면서 아빠의 팔 관절이 빳빳해지고 허리가 굽었다. 병원에 다녀오시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아빠에게는 오랜 시간 천천히 진행된 그 못된 변화를 병원이 절대 고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듯했다. 지나간 것을, 이미 변해 버린 몸을 받아들이는 삶. 그것은 어른의 삶일까.

그동안 엄마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목소리가 작고, 예민하고, 욕을 모르던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목소리도 커지고, 피곤해서 잠을 잘 자고, 가끔 욕으로 감탄사 정도는 하는 사람이 되었다. 딸과 아들은 부모님의 노동을 먹이 삼아서 잘도 자라났다.      




매일 새벽 5시 50분은 찾아온다. 야행성이라 밤에 창작 활동도 잘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취업을 한 이후로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회사에 갈 준비를 한다. 허리 병은 아직 고치지 못했다. 조금씩 켜켜이 쌓여 온 노화와 질병을 어떻게 몇 번의 도수 치료로 고칠 수 있을까 싶다. 몇십 번을 받는다 한들 무엇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예전에 내가 기르던 강아지도 디스크였는데, 그때 수의사는 『백년 허리』라는 책을 추천하며 단호하게 ‘허리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을 해야 하는 나는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아빠와 엄마의 변화를, 그리고 그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을 떠올려 본다. 자식을 낳고 어른이 된 뒤로 그들은 늘 어깨가 무겁고, 허리가 아프고, 힘들고, 슬펐을 텐데. 그들의 노동으로 무사하고 안전한 내가 지금은 어깨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나도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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