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러지지 않는 감각 속에서
며칠 전 유튜브에서 'ADHD인의 시선' 이란 쇼츠를 우연히 보았는데 웃음이 나왔다. 내 얘기였다
영상 속 주인공은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흔들리는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시선이 닿는 족족 처음 목적을 잃어버린 채 당장의 눈에 띄는 일을 했다.
빵을 먹을 포크를 가지러 일어서서는 칼로 사과를 잘라먹는 것으로 끝난 그 영상을 보고, 많은 ADHD인들은 공감을 하며 자신의 일화를 웃음과 함께 덧글로 보탰다.
내가 특히 공감이 갔던 건, 영상의 내용 그 자체도 있었지만, 카메라 전환과 흔들림으로 표현되는 ADHD 특유의 시선이었다. 누군가에겐 "정말 어지럽네요"라는 댓글을 남기게 만든 그 화면이, 나에겐 너무도 익숙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병원에서 처음 진료를 받던 날, 검사를 마치고 진료실로 들어서던 나에게 의사가 말했다.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는 모습만 봐도 ADHD같아요."
그때는 가볍게 흘려들었지만, 치료를 이어가면서 알 수 있었다. 내 시선이 얼마나 쉽게 흩어지고, 자극 앞에서 변별력이 없었는지를.
약을 먹고 처음 느낀 것 중 하나는 시야의 범위가 좁아지고 또렷해진 낯선 감각이었다. 호, 불호를 따지자면 불호에 가까웠던 그 감각은, 선명하지만 회전이 느리고 좁아져 갑갑했고 심심했으며, 관찰력과 각종 생각들, 호기심이 제한당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
하지만 의사에게 세상을 슬로우모션으로 살고 있는 것 같다, 지루하고 갑갑하다, 라고 불평을 하게 만든 이 감각이 '현재에 집중해 필요한 자극만 받아들이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되기까지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았다. 꽤나 약에 익숙해져 '약을 먹는게 차이가 있긴 한가?' 라는 생각으로 종종 빼먹기 시작하면서 약효가 사라진 시간대가 생기고 만 것이다.
약효가 떨어진 어느 아침, 평소처럼 운동을 나섰다. 매일 하듯 이어폰을 끼고 달리다보니 시선이 흩어지는게 느껴졌다. 귀에 소리가 걸리는게 느껴졌다.
나뭇잎의 흔들림, 강물의 일렁임, 지나가는 사람들, 발소리와 대화 소리, 이어폰의 노래 소리, 비에 젖은 낙엽 냄새까지, 주위의 자극들이 하나하나 스며들어 왔고, 머리를 채웠다. 나의 발걸음은 점차 느려졌고, 머리는 감각이 가져온 생각으로 가득 찼다. 세상은 아름다웠으나 나는 더 이상 운동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에 집중해 다른 것들을 무시한 채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안타깝지만 약의 힘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이전의 내가 제대로 운동한 날들은 엄청난 자극들 속에서 할 일을 놓치지않고 해낸 것임을.
그런 경험이 몇차례 쌓이며, 보통의 사람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현재 자신에게 중요한 자극만 남기고 나머지를 흘려보내지만, 나는 현재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별 없이 자극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도.
그래서인지 나는 항상 '현재'에 머무르기가 어려웠다.
아이 숟가락을 가지러 가다가 싱크대를 정리해서 밥먹다말고 뭐하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고, 세탁기의 다 된 빨래를 꺼내러가다 갑자기 냉장고 청소를 시작하는 바람에 쉰 빨래를 다시 돌려야 했던 일도 다반사였다.
'ADHD인의 시선'이란 영상의 속 주인공처럼 나 또한 좀처럼 처음 생각이 끝까지 이어지질 못했다.
청소기를 돌리다 연필을 주우면 '필통에 넣어두고 청소기를 돌리자'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필통을 찾는데, 그렇게 필통을 찾으면 '필통이 지저분한데', '필요없는게 든거 같은데', '필통을 어디에 두는 것이 맞을까' 같은 너무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고 만다.
그리고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필통의 색깔이 어떠한가' '지우개는 잘 지워졌던가' 하는 전혀 다른 생각까지 물고와, 어느새 청소기를 돌리고 있던 중이었다는 현재의 사실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나버린다. 그렇게 나는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필통 정리 또는 그 구성품으로 정신이 옮겨가버리는 것이다.
그래놓곤 또 우습게도 이내 필통 속 물건들을 쏟아놓은 어질러진 책상에 눈이 가 필통 정리를 잊고 책상 정리를 하다가, 정리하려 집어든 책에 무심코 시선이 가, 또 책상 정리도 잊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책을 한참보다 그 세계에서 멀어질 무렵, 문뜩 시계를 보곤 점심 식사가 더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모든 것을 펼쳐둔 채 부랴부랴 주방으로 향하지만, 설거지거리에 눈이 닿는 순간 또 다시 방향을 틀어 설거지를 한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생각에 끌려 행동하다 보면, 배가 고프다는 신호가 올 때에야 비로소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는 늘 같은 결론에 도착한다.
“대체 나는 무슨 정신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의 일상은 항상 이렇게 산만하고 부산스러웠다.
눈앞에 나타난 것들에 생각이 미치면 자극이 되고, 그 자극에 아차하면 정신이 순간적으로 납치된다. 게다가 생각이 꼬리를 물기라도 하면 더는 ‘지금’으로 돌아올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또 우습게도, 어떤 자극에는 정반대로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 다른 모든 자극이 들어오지 못하는 상태, 흔히 말하는 ADHD의 과몰입이다. 냉장고 청소를 하든, 설거지를 하든, 책을 읽든, 핸드폰을 보든 갑자기 훅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시작된 과몰입은,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간 듯 나를 삼켜버린다. 더 강한 자극이 오기 전까지는, 어느 순간 정신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스스로 그 안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
그것들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라 미처 예상할수도 없고, 정말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라 그 속에 있을 땐 현 상태를 스스로 인지해내기도 어려웠다. 마치 일반인이 게임이나 SNS, TV에 잠깐 신경이 쏠려 정신을 뺐기는 것처럼, 나는 그렇게 일상적인 자극에도 정신을 뺐겨버리는 것이다.
ADHD를 가진 소아정신과의사인 지나영 교수도 야구장 가는 길에 뭔가를 줍다가 손에 들고 있었던 야구장 티켓을 그대로 놓고와버린 일이나, 운전 중 새를 보다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 사고가 난 일들에 대한 일화를 유튜브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도 정말 그러고싶지 않은데, 정말 정신 차리려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신을 놓쳐버린다. 남편이 어디 나가서 아이를 놓고올까봐 걱정하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할 일을 놓칠까봐 연락할 정도로.
혹자는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ADHD인은 사냥꾼의 감각이며,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오감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주변 정보들을 빠르게 읽어내는 특성이 있고, 즉각적인 대응을 하게 되어있다고. 단순히 생존(위험을 피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더 유리한 특성이지만, 더이상 현대사회에 맞지않아 어려움을 겪는 것일 뿐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어쩌면 정말로 현대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여 적응하지 못한 생물학적 문제일지도 모른다. '생존' 또는 '사냥'이라는 단순한 목적 하나만 두고, 모든 감각을 그 목적을 이루는데만 온전히 사용하는 시대였다면, 하루에 해야할 일이 많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내는 특성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너무 빠르고 복잡하며 할 일은 많고 자극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속에서의 ADHD는 병이다. 이토록 현대인들에게는 단순한 일상조차도 내겐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니까.
약을 먹고난 이후, 나의 일상은 많이 나아졌다.
남편은 더 이상 내가 아이를 두고올까 걱정하지 않고, 운전하는 것에 잔소리를 덜했으며, 하던 일을 놓치는 문제로 생기던 다툼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하루 일과 중 마무리해내는 일들이 늘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좋아진 것만은 아니다.
약을 먹으며 나의 찬란한 세계는 빛을 잃었다.
"회색의 칙칙한 세상의 바닥에 두 발을 딛고 사는 기분이에요. 너무 재미가 없어요!"
나의 말에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요."
약효가 떨어진 날, 모든 자극이 쏟아지던 그 날.
하려던 것은 못했지만, 세상은 참 얼마나 아름다운지.
때로는 모든 일이 신비롭고, 재미있으며, 쉬지않고 생각이 흐르던 날들이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한다.
현재의 나는 더이상 하늘을 날지 못한다.
무지개 빛 세상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듯 걷지 않는다.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이전의 내가 간신히 노력해야 현실에 발을 붙일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세상을 꿈처럼 느끼기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위해 생각을 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어느쪽이 더 나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더 낫다고 말할 것이다.
여전히 보통 사람과는 같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 자신의 현재를 놓치지 않는다는 건 아주 큰 차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치료를 받은 지금에서야 알았다. 어차피 나라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노력의 방향만이 바뀌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