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야, 제발, 거기서 멈추지 마.
성인 ADHD 진단을 받고 나아지는 과정에서 반드시 오는 감정은 바로 ‘후회’인 것 같다.
처음 치료를 시작하면서 들어간 ADHD 커뮤니티에서 종종 올라오는 주제 중 하나는 바로 지난날에 대한 후회였다.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게 어디야.’
‘앞으로 남은 날들이 더 중요한 걸.’
당시의 나는 그들의 후회를 참 단순하게 바라보았다.
마흔이 넘어서며, 많은 어려움을 지나 마침내 ADHD라는 실마리를 거머쥐고 이제 해답만 찾으면 되는 단계라 생각했고, 앞만 바라보며 후회 대신 희망을 선택한 스스로를 꽤 괜찮게 여겼다.
우습게도 그때의 나는 후회라는 감정을 아직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치료가 시작되면서 생각보다 빠르게 삶이 나아지기 시작하자, 그 변화가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하나하나 좋아지는 걸 경험할수록, '전에는 왜 이걸 몰랐지?'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어느샌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아쉬움의 순간들은 이내 후회라는 이름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나아진 내 삶도 앞으로 이어질 변화에 대한 기대도 내 마음 한켠에 조용히 자리 잡아나가는 후회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나의 삶은 점점 더 나아져갔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로 슬픔은 더 커져갔다. 살면서 뭔가를 이렇게 명확하게 ‘잃었다’고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를 찔렀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라는 단순한 진실이 매일같이 나를 조금씩 무너지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은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해서 엉엉 울고, 또 어느 날은 미처 알아채지 못한 내가 미워서 엉엉 울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은 나를 힘들게 해서 복합적인 증상을 만들어버려 숨겨진 ADHD를 찾지 못하게 만든 부모님이 미워 울고 세상이 미워 울었다.
그렇게 내 마음에 후회로 인한 슬픔이 꽉 찬 어느 날 나는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다.
"내가 너무 늦게 알아버려서 슬퍼요."
나 또한 치료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후회라는 녀석을 직면하게 된 날이었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내가 나의 '이상함'을 알고 병원을 찾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20대 어느 날에도 정말 말하기 어려운 괴로움에 병원을 갔었다.
온화한 노년의 의사는 엉엉 울며 횡설수설하는 내 말을 조용히 들어주었고, 약을 내어주었다.
나는 나의 어려움에 어떤 병명이 붙은 건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약을 타왔고, 며칠 약을 먹은 후 '이 약을 먹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며 더는 병원을 찾지 않게 되었다.
당시 나는 우울감을 호소했기에 아마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단순히 ‘우울하다’고 느낀 게 아니었다.
그때에도 나는 무언가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 속에 갇혀 있었다.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겠고, 이유도 설명할 수 없는데, 삶 자체가 너무 버겁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병원을 찾은 거였다.
나는 치유나 위로보다는, '문제의 원인'이 알고 싶었다. 왜 이렇게 괴로운지,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힘든지를 알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나아질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었다.
분명 그날의 상담은 위로가 되었고, 엉켜 있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라는 질문 앞에서 발이 묶여버렸다.
그렇게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한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병원을 찾아가기까지의 고통과 괴로움을 그저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덮어버렸다.
이렇게 크게 후회하게 될 줄도 모르고 말이다.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그때 다른 병원을 한 번 더 알아봤더라면.’
‘조금 더 진지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봤더라면.’
‘덮어두지 말고, 끝까지 원인을 찾으려 했더라면.’
20대 그 어리고 찬란했던 시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방법을 찾아, 결국 내가 ADHD라는 걸 조금이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어쩌면…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 지금쯤은 서로 상처 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을 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부에 흥미를 붙이고 미래를 계획하며 도전해나가는,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일찍부터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 조금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사실 지금에 와선 가장 쓸모없는 말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 아쉬워질 때마다 부득불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해 보면 30대에도 기회는 있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에 다시 상담센터를 찾았으니까.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상담사는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단지, 누군가가 나의 복잡한 내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왜 내가 이렇게 힘든지에 대한 단서를 하나라도 함께 찾아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는 두서없는 내 말을 들으며 겉핥기식의 조언 몇 마디만 툭툭 던졌을 뿐이었고, 내가 어릴 적 겪은 아마도 조현병 초기 증상이었거나, 공황장애였을지 모르는 이상한 감각 경험들을 이야기하자 그때부터는 나를 미친 사람처럼 몰아갔다.
그리고는 마침내 내가 이상한 시선으로 주변과 세상을 왜곡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라며 처음 만난 그날, 단 한 번의 상담만으로 나에 대해 일방적인 결론까지 내려주었다.
“당신이 사실은 더 나쁜 사람이에요.”
나는 단지, 나 자신에 대한 해답을 찾아 이 괴로움을 해소하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그날 상담실에서 받은 것은 이해가 아닌 철저한 부정과 거절이었다.
상담실 문을 나서며, 나는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 이 세상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막막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건 그저 미숙한 상담사와 만나 발생한 단 한 번의 실패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날의 나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한참을 망설인 끝에 찾아가서일까, 세상 전체에게 외면당한 것 같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고작 그 한 번의 경험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포기하기로 결정하고야 말았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줄 다른 상담사를 만나보았더라면,
다른 방법들은 없을까 찾아보았더라면,
조금은 이 괴로움을 이겨내고 끝내 원인을 찾아, 방법을 찾아가며 끈질기게 버텼더라면...
지금 생각해 보면 'ADHD라는' 이렇게 확실한 이유가 있었는데, 나는 너무 쉽게 포기했다.
어쩌면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고작 한 발을 더 내딛음으로 조금 더 빨리, 조금 덜 아프게 지금과 같은 미래를 맞이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40대가 되어서야 나는 내 어려움이 무엇인지 조금은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정말 운 좋게도 여전히 두서없던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조심스럽게 "혹시 ADHD는 아닐까요?"라고 말해준 사람을 만났다.
'ADHD'라는, 당시의 내겐 생소했던 단어.
따뜻한 조언들 속에서 유독 그 단어 하나가 마음에 깊이 남았다.
그래서 나는 그 단어 하나를 붙잡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했지만, 예전과 달리 나는 주저앉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다시 발을 내디딘 두번째 병원에서, 마침내 평생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감정과 행동들의 시발점과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치료를 이어가며, 그제야 나는 알게 됐다.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조차도 내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몰아붙여왔다는 것을.
바뀔 수 없는 것을 바뀔 수 있다 믿으며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해 왔다는 것을.
불가항력적으로 이상한 사고에 빠져버리기 쉬웠던 나였음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만 덜 두려워했더라면.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에서야 알게 된 건, 이제야 비로소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그 말은 위로였고, 어쩌면 진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에서라도 알지 못했다면,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끝없이 헤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쉬이 넘길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 되돌릴 수 없기에 더 아쉬운 순간들.
남들처럼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한심해하며 미워하던 밤들과,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쌓인 무력감들.
삶이 너무 버겁다 느낄 때, 뭔가 잘못되어 있다 느낄 때, 그 신호를 그냥 지나치지 말았어야 했다.
노력을 해도 바뀌기 어렵다면, 지금과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했음을 알았어야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았더라도,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해 치유할 수도 있음을 믿었어야 했다.
그렇게 지나쳐버린 시간을 떠올리면, 끝내하지 못한 한 마디가 자꾸 마음속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