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도무지 노력으로 되지 않았던 이유

ADHD가 뭐길래

by 해자

나는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ADHD 약인 콘서타 18mg을 복용한 첫 주부터 약의 효과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으니까.

많은 ADHD인들이 초반 저용량으로는 별다른 변화를 못 느끼거나 애초에 약이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축에 속했다.


늘 시끄럽고 복잡하게 돌아가던 머릿속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처음엔 어딘가 멍하고, 바보가 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생각이 느려지고, 주변 자극에 반응하지 않게 되자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이 고요함이 내가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정상 상태’였다는 걸.

항상 방방뜨다 푹 주저앉던 감정도 큰 기복없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운동을 할 때에도, 책을 읽을 때에도, 운전대를 잡고 있을 때에도 생각이 이리저리 흘러나가던 내가, 처음으로 원하는 순간에 '집중' 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허둥지둥 부산하게 움직이던 몸짓이 사라졌고, 매일 만성처럼 안고 살았던 피로감도 함께 사라졌다.


나 스스로는 상당한 변화를 느꼈으나, 남편은 별반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고 했다.
“노력하면 되는 걸, 무슨 약까지 먹?”
“네가 ADHD면 나도 ADHD다.”
“요즘 사람들, 병원 가면 누구나 진단 하나쯤은 나온다더라.”
그 말들엔 단순한 의심이 아닌, 정신과 치료에 대한 뿌리 깊은 거부감이 깃들어 있었다. 정신과 약은 ‘정신 나간 사람’이나 먹는 것이라는 편견. 약한 의지를 병 핑계 댄다는 편견.
그 한마디 한마디는 내 고통을 과장된 것으로 만들었고,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불편과 좌절을 한순간에 하찮은 것으로 바꿔버렸다.


나는 분명 변화를 느꼈다. 단지 기분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고 일관된 변화였다. 하지만 그걸 말로 설명하려 들면 막막해졌다.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는 알겠는데, 어디까지가 ‘약의 도움’이고, ‘내 노력’인지 스스로도 헷갈렸다.
내가 겪는 많은 문제들이 ADHD 때문인지, 성격이나 성향 때문인지, 삶 속에 녹아든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인건지, 선명한 기준이 없는 그 경계에서 나는 계속 혼란스러웠다.


꾸준히 1년 넘게 치료를 이어가며 나의 ADHD와 약효에 대해 기록해나가는 지금도, 여전히 나의 ADHD는 모호하다.
게다가 기존의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고 나니, 그 아래 숨어 있던 또 다른 문제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까지 모두 ADHD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여전히 헷갈리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나는 나아지고 있다. 아니 솔직히 '이전에는 어떻게 살아낸거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것이 좋아졌다. 그간 아무리 노력해도 바꾸기가 어려웠던 것들이 그저 '치료를 했기 때문에',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작 약 한알 먹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남편은 여전히 자신의 잔소리와 나의 노오오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치료 이후 내 삶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그 일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때그때 눈에 띄는 일이나 떠오르는 생각에 끌려다녔고, 그마저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해 하루가 끝나면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만 산처럼 쌓여 있었.

그래서 나의 하루는 늘 바쁘고 지쳤지만, 남들 눈에는 ‘해놓은 건 없는데 피곤하다고만 하는’ 게으른 사람일 뿐이었다.

지친 하루 끝에 피로를 호소하면 남편은 어김없이 말했다. “대체 네가 뭘 했는데?”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일을 벌인데다 마무리한 일이 없었기에 나조차도 ‘무엇을 했는지’, ‘왜 이렇게 피곤한지’ 명확히 알지 못했다. 분명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던 것 같은데 말이다.


내가 일을 제대로 해보려는 노력을 안 한 것도 아니다. 계획과 시간 관리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었고, 할 일을 글로 써서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매겨보기도 했다. 하루를 잘게나눠 할 일을 계획해보기도 했고, 정말 중요한 것만 골라 할 일의 양을 적게 잡아보기도 했다. 타임 트래커나 리마인더 같은 도구들도 써봤다.

든 걸 미루고 칙적인 수면과 운동, 식사조절, 명상 등 좋다는 것을 다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이상하리만치 활하는게 버겁기만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내 머릿속은 고장난 컴퓨터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연관 검색어를 찾아 새창을 열어대는 바람에, 생각은 끝없이 쌓였고 정리할 틈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나에게 허락된 건 그저 아주 급한 일들을 임기응변으로 해치우는 것뿐이었다.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은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고, 막상 실행에 들어가도 자꾸 튀어나오는 '새 창'들에 가로막혀 금새 갈피를 잃기 일쑤였다.

주의력을 잃는 빈도는 너무 잦아서 일상적인 자조능력조차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내가 못배워서, 게을러서, 습관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줄로만 알았다.


나에겐 남들은 당연히 하는 일상적인 일들 조차도 노력이 필요했고 체크를 해야만 했다.

양치 하는 것을 잊지않기 위해 알람을 맞춰야 했고, 주기적인 집안일을 하기 위해 주별, 월별, 연별 체크리스트로 관리해야 했다.

외출이라도 한다치면 뭘 챙겨야하는지 리스트를 써놔야했는데 혹여라도 미리 챙기지 않은 날엔 나가기 전 부산함과 멍때림은 기본이었고 허둥지둥 서두르다 무언가 빠트리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세수를 하고 샤워를 하고 용변을 보는 아주 단순한 일상에서조차도 어떤 단계를 빼먹지 않기 위해선 그 일에 집중하려 노력을 해야했다. 잠깐이라도 생각을 뺏기면 나는 중간의 어떠한 단계를 잃어버렸다. 변기물을 내리지 않아서 남편과 다퉜고, 머리를 헹구지 않고 나와 그대로 말린 적도 있으며, 세수를 하러 들어갔다 양치만 하고 나오기도 했다.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작은 일들이고 매번 그런 것만도 아니니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남들 또한 정도는 달라도 다들 그렇게 살거라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래서 나 스스로에게 정신 좀 바짝차려 라고 타박하며 사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이 처음 진단을 내리며 말했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라는 말이 그 당시엔 그저 형식적인 위로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치료를 거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는지,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버티며 살아왔는지를.


그제야, 되풀이되는 실수 앞에서 자꾸만 자신을 탓하며 살아야 했던 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혼란과 실패의 연속 속에서도 매일같이 무너지는 하루를 꿰매듯 버텨온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원래 너는 이런 인간이야’라며 체념하지 않고 어떻게든 더 나아지려 애쓰며, 끝끝내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 내가 참 대견했다.




지금의 나는 한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다.

약이 가져온 고요함 덕분에, 내 머릿속엔 처음으로 '멈춤'이라는 상태가 생겼다.

이제는 생각의 창을 어느정도 ‘내가 원할 때’ 띄울 수 있게 되었고, 필요하지 않을 땐 닫아둘 수도 있다. 더이상 무작위로 쏟아지는 창들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약을 통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들과 같지는 않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상태 전환을 해내는 고성능 컴퓨터라면, 나는 하나하나 수동으로 명령을 내려야 하는 저성능 컴퓨터에 가깝다.

‘멈추자’, ‘시작하자’라는 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나에게는 정지도, 시작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의지를 끌어올려야 하고, 집중과 이완의 스위치를 일일이 손으로 조작하듯 조심스럽게 다룬다.

가끔은 여전히 통제력을 잃고 엉망이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이제 그런 상태를 빠르게 눈치채고, ‘멈춤’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이제는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 머리가, 지금의 내가, 충분히 쓸 만하다고 느낀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을 떠올릴 때, 생각에 점령당해 흐름을 잃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잠시 흐름을 놓쳤더라도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는 것도 이전과 달리 수월해졌다.

가끔은 다양한 생각들에 정신이 쏠릴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일상적인 일이나 꼭 해야 할 일들을 망쳐버릴 정도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쨌든 해야하지만 지금 당장 하지않아도 되는 일'이 떠올랐을 때에도 그저 메모를 하고 흘려버릴수도 있게 됐다.

생각이 줄어들면서 지금 중요한 일과 우선순위를 파악하는게 조금은 수월해졌고, 그것은 어떤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제는 기본적인 자조능력, 즉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매무새를 만지는 일이 더이상 힘겹지 않다.

가끔 딴 생각에 세수하러 갔다가 양치만 하고 나와도, 다시 한번 '참 그러고보니 세수는 했나?' 라고 스스로를 되짚어볼 정신이 있다.

더는 체크리스트와 알람에 의존하지 않아도 일상적인 루틴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일을 하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도, 전처럼 모든 걸 잊고 대화에만 빠지지는 않는다.

가끔은 통화 중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잠시 옆길로 샐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아, 나 일하던 중이었지’ 하고 스스로를 되돌릴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통화가 끝난 후에도 “내가 무슨 일을 하다 말았지?” 하고 멍하니 서 있지 않는다.

예전엔 머릿속이 다른 생각들로 채워지면서 바로 직전의 흐름을 통째로 놓치는 일이 흔했다면, 지금은 다시 할 일로 돌아가서 마무리하고,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건 내 삶에 있어서 꽤 큰 진전이다.


나는 예전보다 덜 분주하게, 더 천천히 더욱 적게 움직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실천하고자 하는 일들은 루틴으로 만들 수 있었고,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하기 싫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에도 집중하고자 노력하면 어쨌든 방향을 잃지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엔 목표한 모든 일을 해내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급한 몇가지 정도는 끝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내진 못하더라도, 이정도면 어느정도는 평범한 사람의 하나로 살아가는 중이라고 느낀다. 여전히 "아, 맞다!" 라고 할 때도 많고, 가끔은 두서없는 날이라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누구나 그런 날도 있는 정도' 까.


그리고 이제야 '노력'이라는 것이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고 느낀다.

예전에도 나는 계속해서 바뀌어보려 애썼고, 그 순간엔 무언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보면 여전히 제자리였고, 나의 노력은 몰아치는 파도 한번에 도로묵이 되어버리는 모래성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약물치료 이후의 나는, 그런 노력들이 쌓이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낀다.

이제서야 잘게 흩어진 노력의 방향이 한 곳을 향하고 있다. 느린 걸음이지만 이제는 목적을 잃지 않는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지 이제서야 뚜렷히 보인다.


뒤늦게나마,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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