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도 모르는 이야기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하나둘 출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주스를 짜고 있다. 주스 짜는 일은 단순하다.
재료가 되는 사과, 케일, 밀싹 따위를 깨끗하게 씻고, 재료에 맞는 착즙기를 사용해 짜낸다.
단단한 사과가 으깨지며 노란빛을 띤 주스가 나온다. 밀싹은 연녹색, 케일은 짙은 초록색이다. 계량컵으로 음료를 섞어 병에 담는다. 주문이 많은 날은 정신없이 돌아가지만 그렇지 않은 날이 많다. 오늘도 주문이 적다.
내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있다. 늘 그렇듯 유튜브엔 성공에 관한 내용이 흘러나온다.
이것마저 듣지 않으면 자괴감이 상당하리라. 하루에 한 건도 주문이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다.
기분 탓일까. 오늘따라 유튜브의 내용이 더 자극적이다. '월 천만 원을 벌지 못함은 노력의 부재'란다.
그래 더 열심히 해야지 하는 마음과 인정할 수 없는 마음이 팽팽하게 맞선다.
'기존에 다녔던 대기업만 그만두지 않았으면 이 꼴은 아닐 텐데...' 팽팽했던 마음은 이내 자괴감으로 바뀐다.
주스를 짜고 나면 정리할 거리가 많다. 착즙기 사이사이 찌꺼기를 닦아주고 세척한다.
과일 찌꺼기는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눌러 담는다. 어쩌다 쓰레기봉투까지 아껴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지 오늘따라 처량하다.
우리 가게는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있다. 밖에서는 나를, 나는 밖을 볼 수 있다. 위생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현수막으로 통창을 가렸다. 숨고 싶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적 있는 발걸음이 부러웠다. 180cm가 넘는 나는 그렇게 한없이 작아졌다.
점심은 항상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때웠다. 왕뚜껑을 좋아하지만 1+1이나 2+1 행사상품이 우선이다. 오늘은 진라면이다. 좋아하는 김밥 따위도 없다. 물이나 음료를 주는 김밥을 고른다. 이때부터였다. 취향이 없어진 건...
진열장 뒤편에 조그마한 책상은 나만의 공간이다. 숨어 있으면 아무도 모른다. 식사는 항상 여기서 한다. 삼각김밥을 한 입, 두 입, 베어문다. 맛은 중요하지 않다. 손님이 가게에 갑자기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인지, 누군가에게 이렇게 지질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 것인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설익은 라면을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우걱 거리다 보면 금세 없어진다. 국물도 남기지 않는다. 라면 양이 아쉽다.
창업할 때 목표는 우리나라 최고의 'Raw Food' 마켓을 꿈꿨다. 아마도 미국의 'Whole Food' 마켓처럼 말이다. 인터넷 쇼핑몰엔 100개의 상품이 올라가 있다.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녔던 성과다. 하지만 목표와는 다르게 호떡, 빵, 젤리 상품이 잘 나간다. 나 또한 목표를 잊은 지 오래다. 잘 팔리는 상품을 올리다 보니 쇼핑몰의 지향점은 켜켜이 덧칠된 회색분자로 변해 가고 있었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지금 이 클릭만 없었다면...
스마트스토어, 쿠팡 등의 주문 내용을 확인하고 납품업체에 주문 자료를 넘기면 상품을 보내준다. 이걸 위탁이라 부른다. 주문 내용은 대부분 메일로 보내는데 그날따라 스팸메일함에 눈이 간다. 평소였다면 절대 열어보지 않았겠지만 그날따라 정리를 하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책 한 권을 다 떼지 못했다. 마음을 먹고 나면 삼일천하가 되었고, 첫 장을 멋들어지게 정리한 공책은 찢겨나가기 일쑤였다. 그런 공책은 아무 기록 없이 얇아진 상태로 버려졌다. 오늘도 역시나 공책을 찢고 싶다는 본능에 이끌려 스팸메일함을 정리하러 들어갔는데 눈에 띄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장님 오늘 힘드시죠?"
"무료머니 20으로 3번 배팅만에
1,000만 원 벌어 가신 분 있습니다."
오늘따라 날씨는 춥고 컵라면 용기에 들어있는 젓가락이 왜 그리 꼴 보기 싫었을까?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고 라면 용기를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물티슈로 책상을 닦았다. 나름의 경건한 의식이었다.
링크를 클릭하니 검은 바탕에 로그인과 아래 회원가입이 있다. 가입 버튼을 눌러가며 하나하나 공들여 입력해 갔다. 가입을 마치니 무료머니 20만 원이 충전되었다. '영화 인어공주'의 배경처럼 바닷속 물고기들이 왔다 갔다 거리며, 동전을 떨어뜨려 주면 슬롯이 돌아간다. 내 눈도 돌아간다.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책상은 더 이상 지질한 공간이 아니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찬, 마치 교회 전단지에 그려진 사자와 사람이 함께 있는 평화로움까지 느꼈다.
하나, 둘 자동으로 동전이 떨어지니 금세 돈이 다 떨어져 간다. '에이 이런 게 될 리 없지' 하며 창을 닫으려 하는 순간 커다란 번개가 치며 '영화 아쿠아맨'의 주인공처럼 생긴 캐릭터가 허공에 창을 휘두른다. 번개가 치며 바다가 일렁인다. 엄청난 광경이다.
게임창 아래쪽엔 실시간 채팅창이 있다. 조용하던 채팅창이 순식간에 술렁인다.
'몇 번이야?'
'어디야 어디?'
'대박이다!'
이런 글이 계속 올라온다. 침을 꼴깍 삼킨다. 마지막 공은 슬롯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고, 나는 이 상황에 대하여 채팅창에 물었다.
'이게 뭔가요?'
바로 답변이 온다.
'대박이예요. 요 며칠 본 적이 없어요!'
'무슨 말이죠?'
'저거 뜨면 이제 최소 10배 많으면 100배까지 떠요'
'돈을 입금해야 하나요?'
'당연하지요. 저기까지 해놓고 안 하신다고요?'
'안 하시면 슬롯 대기요.'
'저도 대기해 봅니다.'
'저도요.'
이런 글이 계속해서 올라온다.
통장 잔액을 확인해 보니 579,120원이 있다.
딱 5만 원만 투자하자.
이때 이미 내 눈은 돌아가 있었다.
2019년 12월 30일 13시 21분 40초 첫 5만 원을 입금했다.
2019년 12월 30일 13시 33분 29초 다시 5만 원을 입금했다.
떨어지는 공들이 슬롯을 돌리지 못하고 돈만 계속 나가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화투는 운칠기삼이야. 화투라는 건 말이야 내려갈 때가 있으면 올라갈 때도 있는 거야!"
영화 타짜의 대사가 생각났다. '운칠기삼' 돈은 기운이다. 그렇게 입금액은 10만 원, 20만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남은 통장 잔액은 8,420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으니 주변 채팅창이 또다시 난리다. 안 할 거면 자리를 비워 달라나.
나에게는 사업을 시작하며 받아둔 마이너스통장이 있다. 이미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100만 원을 대출했다. 통장에 첫 마이너스가 찍히는 순간이다. 지역 제2금융권에서 3년 정도 근무한 이력이 있다. 대출을 받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이란 게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써야지"란 말을 쉽게 하고 다녔다. 그런 내가 지금 '마이너스 인간'이 되었다.
대출한 돈으로 20만 원, 50만 원 그리고 30만 원을 입금했다. 이제야 반응이 온다. 이전보다 더 큰 번개와 파도가 밀려왔다.
채팅창은 난리가 났고 다들 부럽다고 난리다.
이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시금 100만 원의 대출, 그리고 500만 원을 대출하였다. 이 돈을 한 번에 쓴 건 아니다. 저녁시간 가족과 송년회를 기획해 두었다. 우리 가게 바로 앞은 초밥집이 있었는데 평소 식사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연말이 아닌가.
약속시간도 잊은 채 계속해서 슬롯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았다. 철컥 가게 문이 열리고 배우자와 딸아이가 들어왔다. 당황한 나머지 화면을 내릴 겨를도 없이 모니터를 껐다. 딸아이는 "아빠" 하면 안겼다.
"오늘 많이 팔았어?"
배우자의 말이 아니꼽다.
"어 뭐 그냥..."
머릿속이 온통 슬롯 생각뿐이다. 지금 거대한 파도가 밀려와 1,000만 원, 아니 100배가 떠서 10억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따위의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가족들과 가게를 나오며 문을 잠근다. 평소 농담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그런 내가 멍한 모습으로 말수가 줄어드니 배우자는 바로 알아챈다.
"뭔 일 있어?"
"아니 뭐 그냥..."
오늘따라 우리 가족의 모습이 처량하다.
초밥집은 바로 건너편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본다.
배우자가 말한다.
"뭐 먹지?"
"늘 먹던 걸로"
애써 웃으며 시시콜콜한 농담을 건네어보지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가 통할리 없다. 조용했던 분위기가 적막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우리 가족 먹여 살릴게"
머릿속에서 나온 말인지 입에서 나온 말인지 나조차도 분간이 안 된다. 뜬금없는 소리에 배우자는 돈 때문에 스트레스받지 말라며 토닥여준다. 그날의 식사는 기억나지 않는다. 미각과 촉각 후각은 이미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머릿속 생각에서 도망치려 아무리 빨리 도망쳐 보아도 이내 내 옆에 함께 있다.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나는 갑자기 대량주문이 들어와 지금부터 생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배우자는 "몇 개가 들어왔길래?" 하며 자기도 도울까라고 말한다.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 혼자 충분해"
배우자와 아이를 집에 내려다 주고 가게로 가는 길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내가 오래 자리를 비워 튕겼으면 어떡하지?'
'10억이 찍혀 있으면 한 번에 출금해도 되는가?'
열쇠로 문을 열고 모니터의 전원을 누르는 순간까지 이런 생각은 멈출 줄 몰랐다.
모니터는 검은 화면에서 익숙한 바다 배경으로 바뀌었다. 남아있는 금액을 확인했다. 0원 허탈했지만 채팅창은 난리다. 나보고 진짜 큰돈 벌게 생겼다며 이젠 최소 10억이라 한다. 뜨는 건 시간문제고 5만 원만 더 해도 된다고 한다.
총 700만 원의 대출 중 남은 100만 원을 입금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300만 원의 추가 대출도 계좌로 옮겼다. 충전한 100만 원을 다 쓸 때 즘이 돼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들이 한패라면? 어디선가 본 듯한, 담배연기 자욱한 조그만 방 안에 여러 대의 컴퓨터를 두고 앉아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채팅창에 조심스레 쳤다.
'이제 돈이 없습니다.'
'5만 원 정도만 더 해봐요.'
'정말 돈이 없습니다.'
'아깝네 정말...'
아까처럼 줄을 선다느니 대기를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난 도박을 했다. 난 사기를 당했다. 이 두 가지의 명제가 또렷해지는 순간이었다. 머리는 멍해졌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숨 쉬는 게 불편하다. 현실과 탐욕사이 어딘가에서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느낌이다. 안경을 벗고 양손으로 얼굴을 씻듯 문질렀다. 긴 한숨을 내쉬고 담당자라 하는 사람에게 문의를 남겼다.
'저 이돈 없으면 죽습니다.'
'제발 반만이라도 돌려주세요.'
'신고합니다.'
'제가 죽으면 당신 때문입니다.'
'딸아이 병원비입니다.'
생각도 하기 싫은 일들을 꾸며낸다. 울부짖으며 애원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다. 이것들이 통하지 않자 우리 딸아이는 시한부로 수술을 앞두게 된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나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이제야 눈물이 난다. 차가워진 얼굴을 타고 흐르는 자리마다 얼음이 언 거처럼 아렸다.
배우자가 소파를 바꾸자 했다. 나는 억지로 미니멀리즘 다큐를 넷플릭스에 틀어주며 소파가 필요 없다 역설했다. 계속해서 못 사게 했다. 코팅이 벗겨진 프라이팬을 살 때도 눈치를 주기 일쑤였다. 그런 내가 한순간에 700만 원을 도박으로 날려 버렸다. 아니 정확히 769만 원이다.
한참을 엎드려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만 있을 수 없어 지식인에 '인터넷 도박사이트 처벌 관련'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나도 불법 도박을 한 당사자가 아닌가? 다시 글을 지웠다. 진동이 울린다. 배우자다.
"아직 많이 남았어?"
"아까 몸 안 좋아 보이던데 내일 하고 들어와서 쉬어"
"어 아니야 이거 다 해놓고 갈게 지금 바빠 끊어"하며 통화종료 버튼을 급하게 눌렀다. 어디선가 본 문장이 떠올랐다. '겨울밤에 들리는 소리들은 우울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고..."
대출받았던 300만 원은 다시 마이너스 통장에 넣었다. 이거라도 지킨 게 다행이다. 애써 자기 합리화를 시켜본다. 그날은 잠들지 못했다. 머릿속은 해결과 포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며 부풀어 터질 지경에 이르렀을 때 즈음 잠에 들었다. 눈을 떠보니 몸은 천근만근에 머리는 두통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바쁜 척을 해댄 거 치고는 너무도 곤히 잠들어 있는 내 모습에 배우자는 깨우지 않고 출근했으리라. 식탁 위에는 내가 좋아하는 샌드위치가 놓여 있었다. '여보 힘내요 우리 가족 파이팅'이란 문구가 적힌 쪽지와 함께...
그날 이후 도박은 하지 않는다. 이런 실수도 하지 않는다. 배우자에겐 말하지 못했다. 예전처럼 미니멀리즘을 이야기하며 못 사게 한다. 어떨 때는 도박이나 사기당한 사람들을 향해 질타까지 한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