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푸스의 형벌
"아이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오갈 때 부모와 시간이 안 맞으면 곤란하잖아? 그걸 대행해 주는 거 어때?"
어둠 속 이불 사이로 말한다.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사람들 동영상 강의 공유 사이트를 만들면?"
"결혼 전에 신혼여행 대신으로 미리 살아보는 동거 프로젝트 어때?"
"내일 일 가려면 피곤하니 일찍 자자"
배우자는 한숨 섞인 목소리였다.
<침묵>
그렇다 나는 창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배우자와 연애할 땐 대기업 마트에서 근무하였다. 결혼하면서 면 단위 금고로 이직하였다.
'너같이 현실에 안주하는 애가 뭘 알겠냐?' 속으로 생각하며 혼자 창업 시나리오를 돌려보다 잠에 든다.
면 단위 금고에 근무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푸스는 매일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요즘 내가 시시푸스다. 선임들의 컴퓨터를 켜고 대충 빨다 만 밀대로 바닥을 닦는다. 한참을 닦다 보니 비린내가 올라온다. 고액 예금, 대출, 공제를 가입하는 고객들을 위한 섬유유연재를 하나 가져다 밀대에 뿌리곤 다시 닦는다. 한 병 쯤은 괞찮다. 바닥을 얼추 닦으면 입구 쪽 △버튼을 누른다. 셔터가 올라가니 계단에 앉은 할머니들이 보인다.
"내 오늘 만기다."
문이 열리는 찰나를 놓치지 않는다.
"어머니, 조금만 기다려 주이소."
"청소 끝내고 봐 드립시더."
"들어와 커피 한 잔씩 빼 드이소."
어설픈 사투리와 존댓말이 섞이는 순간이다.
나름 이곳에선 중심가 출신인데 이런 말이 튀어나올때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다행히 금고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 커피를 타서 주지는 않는다. 화장실에서 밀대를 빨다 보면 선임들이 출근한다. 저기 일렬로 앉아 있는 할머니들을 상대하려니 벌써 피곤해진다. 이럴 땐 밀대를 그렇게나 깨끗하게 빨아댄다.
한참을 밍기적 거려도 '만기 할머니'는 내가 받아야 했다.
"내 버스 시간 다 돼 간다."
할머니도 밍기적 거리는 내가 꼴보기 싫었나 보다.
"알았어요 알았어 내가 바로 해드릴게"
언제부턴가 비위가 꼬이면 반말이 튀어나온다.
돈통을 받아 시재를 확인하고 컴퓨터를 켠다. 시스템에 접속하여 사번을 넣고 업무를 시작한다.
만기된 금액은 1,000만 원
"다시 묻어 둘까요?"(다시 재예치해 드릴까요?)
"이자는?"
"이자까지 한대 엄쳐서"(이자까지 포함하여 재예치 해달라는 뜻)
답은 뻔한 걸 알지만 규정이라 물어야 한다.
"3년하면 이자가 높고 1년하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1년 해라 1년"
맘에도 없는소리가 곧잘 나온다.
비밀번호는 묻지 않는다.
시골 어르신들 대부분 통장 앞면에 조그맣게 적혀있다. 생일이나 전화번호는 안되니 나름의 법칙대로 적어 둔다. 그날따라 요상한 글씨가 보였다. '이월초하루'
"어머니 이월초하루가 뭐니껴?"
"이월초하루도 모르나?"
무시하는 듯한 말투가 아니꼽다.
"네 몰라요. 내가 이걸 어떻게 알아..."
갑자기 분위기가 적막하다. 뒤에서 상무님이 애써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그만하라는 말이다.
"2월 1일", "0201" 상무님께서 속삭이며 말해준다.
상무님은 할머니를 향해 "이친구가 시내 사람이여서 이런거 모른다."며 웃으며 핀잔을 준다.
1년 재예치 후 기존 통장은 '무효' 구멍을 뚫는다.
새 통장을 통장집에 끼워 드린다.
어머니는 받은 통장 집에서 새통장을 한참을 꺼내어 앞면에 다시 적는다.
'이월초하루'
첫고객부터 삐걱대는 기분이다.
다음 고객님을 받기 위해 "조심히 가세요."를 외치며 다음 고객분과 눈을 마주친다.
하지만 뭐가 맘에 들이 않았는지 일어나지 않는다.
"왜, 머가 잘못됐어? 어머니?"
또 반말이 섞여 나온다.
"나는 뭐 안 주나?"
아차차, 1,000만 원 이상이면 섬유유연제 하나를 드려야 한다.
나는 "아유 어머니 내가 참 이렇다 이래" 하면서 뒷편에 있는 섬유유연재를 들려준다.
어머니는 섬유유연재를 든 손으로 상무님께 인사하며 유유히 자리를 뜬다.
오늘도 1패다.
그날 밤
"온라인 반찬 배달 사업 어때? 1인 가구 겨냥해서."
"아니면 중고 명품 수거 서비스 어때?"
"자자"
배우자는 등을 돌린다.
요즘 삶이 시시푸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