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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햄사 Jun 07. 2024

후쿠오카|#06 잠시 쇼핑하고 가실게요

참을 수 없는 소비의 즐거움

여행 사흘 차, 후쿠오카 시내에서는 위스키 사냥을 돕기로 했다. 예쁜 글렌캐런 글래스 한 세트를 산 이후로 덕배는 위스키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위스키 가격에 비례해 세금이 붙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용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병 당 가격대가 높은 주류들은 일본에서 구매하는 게 훨씬 저렴하다. 주세법 차이에 면세 혜택, 여행 당시 엔저 수준까지 고려하면 안 사는 게 아쉬운 수준일 정도였다.

덕배씨의 후쿠오카 전리품

알뜰살뜰 사진을 남기는 사람이 아닌데도 이 날의 전리품만은 잘 모아서 찍어둔 걸 보면 덕배에게도 제법 즐거운 지름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이번 여행에서 나름 큰 비율을 차지하는 소비였기 때문에 함께 기록해 두려고 한다.


✔ 카발란 솔리스트 비노바리끄

국내 판매가 389,000원, 기내 면세가 164,820원. 영화 헤어질 결심에 등장한 대만 위스키. 사실 이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내 면세품으로 구입했다. 일본으로 출발하던 날 면세품 카탈로그에서 본 것이 계속 아른거렸는지 여행 내내 고민하더니, 귀국행 비행기에 타자마자 결심한 듯 밝은 얼굴로 주문하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마침 며칠 전에 열어서 한 잔 마셔봤는데 달착지근한 바닐라 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 조니워커 블루라벨

국내 판매가 330,000원. 후쿠오카 구매가 15,700엔. 구입처 빅카메라 텐진. 츠케멘을 아침으로 먹은 후 근처 빅카메라 주류 코너에 가 보니 우리처럼 위스키를 둘러보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저렴하길래 다들 열광인가 했는데, 앱으로 국내 판매가를 찾아보고 그 마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위스키만 잘 사도 비행기 값 버는 셈이라던 말이 실화였다니. 뭘 골라야 하나 옆에서 머리를 싸매던 모습이 생생한데 아마 주변에 있던 분들도 다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겠지 싶다.


✔ 맥켈란 12년 셰리 오크

국내 판매가 187,000원. 후쿠오카 구매가 11,000엔. 구입처 돈키호테 후쿠오카 텐진 본점. 셰리 오크는 부드러운 과일 향 덕에 인기가 많은데 물량은 충분하지 않아 한국에서는 인질상품으로 묶여 팔리는 경우가 잦다고 했다. 그런데 이걸 안약 사러 간 돈키에서 발견할 일인지? 주류 코너 앞에서 눈을 반짝이던 그... 결국 이것도 소중하게 백팩에 넣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너무너무 귀여워서 지나칠 수 없었던 기내 면세가 5천 원의 화요 미니어처 세트까지.


재고는 많았지만 마음속 경쟁에서 탈락한 우드포드 리저브나, 실물은 보지도 못한 글렌리벳 18년 산까지 보물찾기 하는 기분으로 리쿼샵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가방이 금방 무거워져 쉽게 지치긴 하지만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천국이겠고, 평소 별 관심이 없었어도 이 정도 가격이라면 한 번 구입해 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깔끔한 디자인도 맘에 들었던 시로 금목서 핸드세럼

유행 다 지나고서야 금목서에 빠져버린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접니다. 금목서 핸드크림도 하나 사 와야지 생각만 하다 이와타야 백화점에 마침 시로 매장이 있어 들러보았다.


나는 손이 자주 건조해져서 핸드크림도 꾸덕한 것으로 골라 쓰는 편이다. 매장에서 테스트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제형이 너무 가벼워 못 쓰겠다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애초에 크림이 아니라 세럼으로 발매되어 발림성에 조금 차이가 있었던 것. 그래도 내내 벼르던 거라 하나 구매해 보기로 했다.


무거운 크림들은 바르고 난 직후에 여기저기 묻어나는 걸 조심해야 하는데 이건 바르자마자 싹 흡수되는 점이 편리했다. 걱정이 무색하게 건조함도 잘 잡아주는 편이었고 무엇보다 손등에 얹자마자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여러 가지 금목서 향 제품을 샀지만 이 핸드세럼의 향기가 내 취향에 가장 가까웠던 것 같다. 겨울 내내 들고 다니며 신나게 써버려서 더 사 오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


어릴 적 조금씩 용돈을 모아 산 첫 전자기기는 파나소닉 씨디플레이어였다. 한두 달에 한 번 음반 하나 사러 가는 날이 얼마나 좋았는지. 사장님과 친해지고 나서는 남는 포스터도 받아와 방문에 붙여두곤 했다. 자주 가던 그 판매점이 사라진 이후로 시골쥐인 나는 인터넷 말고는 따로 음반을 살 길이 없어 그때의 감성을 좀처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첫 일본 여행에서 타워레코드 앞에 섰을 때, 이 큰 건물 전체가 레코드 샵이라는 사실에 많이 놀라고 또 행복해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일본 어디를 가든 참새 방앗간마냥 지나칠 수 없는 장소가 되어, 이번에도 당연스레 근처 타워레코드를 찾았다.

요아소비 The Book 3 바인더북 한정판

여행일 기준으로 한 달 뒤, 요아소비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곰손인 나는 티켓팅에 장렬히 실패했기 때문에 아쉬운 대로 요아소비 신보를 집어 들었다. 각 수록곡을 이미지화한 일러스트와 가사들을 앨범명 그대로 한 권의 책처럼 구성한 한정판. 한국에서는 8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었는데 후쿠오카에서는 5천 엔대에 살 수 있었다. 그즈음 가장 자주 듣던 세 곡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던 점도 좋았고, 곡에 따라 속지의 재질이나 레이아웃에 변화를 주는 디자인 디테일까지 마음에 꼭 드는 앨범이었다.


캐널시티 커비카페에서 데려온 셰프 커비

마지막으로 캐널시티를 한 바퀴 돌고 후쿠오카 쇼핑은 마무리했다. 옷이며 신발이며 종일 고심하며 지른 것들을 숙소에 가져다 둔 다음, 우리는 오전에 길을 나서며 봐 두었던 예쁜 연두색 외벽의 야끼니꾸 가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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