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계속 삽질을 할래요
숫자와 탁월함은 별 상관없다.
짝꿍: 숫자야 숫자지만... 탁월함에 명확한 정의가 있나?
나: 없지.
짝꿍: 축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는데 상관관계를 어떻게 말할 수 있어?
나:......
숫자와 내가 좋아하는 탁월함은 별 상관없다.
내가 사랑하는 웹툰 대다수는 조횟수로는 상위권이 아니다. 5년 전 나의 인생을 바꿔놓은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 중에는 천만 영화가 없다. 마블 영화가 무서울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지만 나는 도무지 뭘 재미있어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마음의 소리>를 챙겨보는 데 성공한 적도 없다. 예술의 영역만 그런가. 학계도 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도 표준으로 쓰이는 쿼티 키보드와 ‘일단 머신러닝 논문을 내야’ 번듯하게 졸업할 수 있는 어떤 학계를 보면.
그러니까, 지금 나의 끄적임을 지켜보는 사람이 적은 것만으로 나와 나의 끄적임이 형편없어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마찬가지로 브런치 메인에 소개돼서 한 글의 조횟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내가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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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지속 가능하고 싶다. 연애도, 공부도, 운동도, 몸 가꾸기도, 관종질도. 카드로 만들어진 높은 성 위에 올라가기보단 탄탄한 주춧돌 위에 올라가고 싶다. 그래서 나대지 않고 삽질이나 하고 있는데, 솔직히 주목받는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가 너무 부럽다.
아, 기초고 삽질이고 때려치우고 나도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고 싶다! 나도 내 편이 아닌데 너무 오래 무관심 속에 있으면 오히려 장기적으로 안 좋지 않을까? 내가 가진 잘 팔리는 스펙들을 적절히 전시하는 것도 지속 가능한 관종질의 필수 덕목이 아닐까? 오늘처럼 어쩌다가 주목받았을 때 사람들이 내 프로필을 보고 바로 팔로우할 수 있도록 잘 팔리는 떡밥을 뿌리는 거야. 학교 다닐 때 얘기라든지, 연애라든지, 지금 사는 동네라든지...
막 화장을 시도했을 때가 생각난다. 얼굴이 둥글고 눈코 입이 선명한 편이라 ‘화장하니까 진짜 예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남들이 그렇다고들 하니 데일리 화장을 시도했다. 예뻐지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화장을 지울 때 복잡한 기분이 더 컸다. 클렌징 오일 따위로 지워지는 부실한 예쁨 뒤에 숨어있는 건가. 이게 뭐라고 낮 수영도 못 하고 있나. 결국 나는 화장을 때려치우고 낮 수영을 택했다. 그래서 내 나이를 반올림하면 서른인데도 화장을 못 한다.
금세 벗겨질 방어막 뒤에 숨는 게 맨몸보다 무섭다. 준비가 안 됐는데 주목받는 건 진짜 죽기보다 싫다. 밀랍으로 고정한 날개를 달고 날기보다는 굴을 파는 쪽이 마음이 놓인다. 한마디로, 관종 실격이다.
프로 관종들은 말하겠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일단 관심을 받는 게 중요해! 네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끌어다가 브랜딩을 해야 해! 어차피 보통의 한국인 여성이 스스로 자신 있게 준비됐다고 여기는 시점 따위 없어!
알아요. 그래도 학교나 연애나 사는 동네로 브랜딩은 피하고 싶어요. 내가 쪽팔려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정말이지, 관종 실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