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히 안사람의 입장에서 쓴 글
지금 아이가 태어나 9개월이 되어서까지 모유수유 중이다.
아이가 두 시간마다 깰 때도 4시간마다 깰 때도 언제나 일어나서 수유를 했다.
남편이 배우자 출산휴가를 썼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수유하고 다시 아기를 재우고 하는 것들을 같이 했지만, 휴가기간이 끝난 후에는 새벽에 혼자서 아이를 먹이고 재웠다.
남편은 남편의 일이 있으니까. 당장은 가장으로서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는 것이 그의 일이니.
그가 일터에서 집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새벽 수유가 없어질 때까지 따로 잤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젖을 물리고, 재우고 가슴이 아파서 유축을 하는 모든 새벽이 외로웠다.
누구라도 조금 더 자야 서로 도울 수 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따로 잤다.
반면, 남편은 회사 일이 바빴다. 바로 윗사람이 퇴사한 후로 일이 쏟아졌고 야근도 잦아졌다.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힘들고 지치는 일들이 많았다. 일은 일대로 많고, 집에 와서도 아이를 케어하느라 쉴 수 없는 일상이었다. 아이가 어린 이상 부부 중 누구도 편히 쉬는 시간을 갖는 건 어려웠다.
둘 다 각자의 일로 너무 지쳐서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나는 머리로는 그를 이해했다. '최근에 야근이 많아지긴 했지...'
그럼에도 자꾸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잠은 내가 다 재우고, 새벽에 자다 깨다 하고 수유도 모두 내가 하는데... 남편은 왜 계속 피곤하고 아프지...?'
남편이 아이를 재우러 가서 혼자 잠들어버리거나, 내가 너무 피곤해서 뻗어있는데도 아이 울음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때 나는 천년은 묵은 듯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주말엔 좀 먼저 나서줄 수 없는 거니?
아이가 커가면서 기쁨도 많았지만, 부부에게는 위기가 더 잦아졌다.
'회사에서 운동하고 늦게 오겠다는 말을 쉽게 하지 마'
'애 봐줄 사람 있으니까 외출이 자유롭지? 나는 아기 낳고 모든 게 변했어. 외출 한 시간도 눈치 본다고.'
내가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면, 남편도 지지 않았다.
'나도 변한 거 많아, 너야말로 회사에서 일하는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따로 잔다고 해도, 새벽에 심하게 울 때는 도와주잖아. 내가 오죽하면 애를 옆에 두고 잠들었겠냐?'
절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입장에서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가장 가까이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야 하는 사이인데, 우리는 이해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누가 누가 더 힘든가 대결하는 듯한 대화였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것은 남편은 못하고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육아를 하게 되면 내가 관계의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했다.
임신을 하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공주님처럼 대접해 준다.
뭐 먹고 싶은 건 없는지, 몸은 괜찮은지 매일매일 안부를 묻는다.
그래서 나는 정말 내가 공주라도 된 줄 알았다. 24시간 풀가동해야 하는 아기엄마가 되는 것을 망각했다.
출산을 해서 몸조리를 하는 동안에도 현실을 깨닫지 못했다.
모유수유를 하는 내가 잘 먹어야 회복도 잘 되고 아이도 잘 먹게 되니 아이와 덩달아 챙김을 많이 받았다.
밤새 잠 못 자고 젖을 물리는 삶이니 힘들진 않은지 많이들 안부를 물어봐주셨다.
남편에게도 이런 이해와 보살핌을 바라왔던 것 같다.
출산 후 딱 두 달이 지나 현실을 마주하였다.
조리원에서 나와 산후도우미의 도움 그리고 친정에서의 도움 없이 나 혼자가 된 시간.
육아는 처음, 이렇게 잠을 못 자며 사는 것도 처음.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으니 책임감도 막중하고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인정받고 싶고, 더 많은 배려와 이해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컸다.
이런 생각이 나를 더 갉아먹었던 것 같다.
나를 잘 보살펴야 한다는 일념이 삐뚤어져서 너무 자신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기면서 꼬여버렸다.
'내가 제일 희생하지 않나? 나를 더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다들 육아보단 회사에서 일하는 게 낫다고 하던데?' 이렇게 왜곡된 자기 연민에 빠져버리니 더 힘들어지는 것은 엄마인 나 자신이었다.
같은 일을 해도, 같은 하루를 보내도 내가 제일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더 지치고 피해의식만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너무나 불쌍한 나를 남편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내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역할을 완전히 바꿔보지 않는 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것.
이 말은 남편이 나의 상황을 잘 모르는 것처럼, 나도 남편의 상황을 잘 모른다. 함부로 내가 더 희생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남편도 나에게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왜 나의 아내는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가?, 나의 힘듦을 살펴봐주지 않는가?'
여전히 우는 아이를 옆에 두고 잠들 때는 내 속에서 용암이 들끓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저런 깨달음이 있어도 우리 부부는 아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나는 매일 육아 중이고, 남편은 출퇴근을 하는 일상이 바뀌지 않으니 그렇다.
다행히 아이가 조금씩 크면서 수월해지는 부분들이 있어, 각자만의 시간을 꼭 갖기로 했다.
나는 일을 하러 가기도 하고, 남편은 아이를 온종일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한 달에 하루 이틀 갖는 이 시간이 우리를 얼마나 바꾸게 될지는 모르지만 계속 고민한다.
우리의 평행선이 좁아지는 길, 평행선이 아니라 튼튼하게 얽힌 매듭이 되는 길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