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말이 오고 갔지만 정확히 어떤 흐름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저는 해나씨랑 만나고 싶어요. 다음 주에 대답해도 돼요.”라고 했다. 다음 주까지 언제 기다리지. 그래서 “저도 찬승씨랑 만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연서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연서 언니는 내가 예전에 오랫동안 다녔던 교회에서 만난 언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는데 대학원에서 청각 장애인을 위한 교육을 공부하고 대학교수님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바쁘고 멋지게 사는 언니와 직접 만난 지 아마 5년 정도는 된 것 같다. 내가 언니의 아파트 단지 카페에 찾아가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서로 위로와 격려의 말들을 했던 게 마지막 만남이었던 것 같다. 연서 언니는 10년 전, 갓 스물이 된 나에게 참 좋은 선배가 되어 주었다. 매주 좋은 말과 좋은 생각들을 나눠줬고, 그런 언니에게 나는 내 마음과 생각을 열심히 보여줬다.
어느 주말에 연서 언니한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그리고 약간 다급해 보이는 카톡도 남겨져 있었다.
해나야 너 누구 만나니?? 너가 누구 안 만나고 있으면 좋겠어!!
연서 언니가 소개해준 찬승씨를 매주 만날 때마다 작은 감동 같은 것들이 있었다. 만날수록 좋은 사람 같았다. 여러 시행착오를 겪어 온 나에게 왠지 모를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1.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첫 소개팅 자리에서 꽤 오랜 시간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세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그리고 찬승씨가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해서 차 옆자리에 앉았다. 새 차 만큼이나 깔끔한 차 내부를 보니 웃음이 났다. 얼마 전 친구의 차를 탄 적이 있는데 한참을 의자 위 잡동사니들을 치우고 앉았던 기억이 났다. 그때 생각이 나면서 왠지 더 좋아졌던 것 같다. 이분이 나를 좋아할지 궁금했다.
#2. 저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었어요.
행복한 얼굴로 햄버거와 감자튀김, 밀크쉐이크를 먹는 찬승씨가 귀여웠다. 그리고 힐을 신고 나온 나를 불안해하며 내 옆을 걸었다. 카페에 주차된 차를 옮길지 말지를 고민하는 찬승씨에게 “뭘 더 하기 싫어요?”라고 물었다. 가끔은 뭘 더 좋아하는지 보다 뭘 더 싫어하는지를 생각하면 쉬워질 때가 있어서 그렇게 물어봤는데 내 질문을 신기해했다. 애플 매장과 가민 매장에서 스마트워치를 구경하면서 내가 “이거 어때요?”라고 물으면 옆에 있는 직원 눈치를 보며 조용히 “이따 말해 줄게요.”라고 속삭이는 것도 귀여웠다.
#3. 우와 어떻게 찾았어요?
일요일에 만나 쇼핑몰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잊어버렸다. 지하 3층? 4층? 아닌가 5층인가. 당황한 우리는 각 층을 가봤지만 넓디넓은 주차장에서 차를 찾기엔 굉장히 막막했다. “저기 들어가서 좀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찾아 볼게요!” 라고 사라진 찬승씨를 보며 나도 다른 층에 올라갔다. 그리고 감으로? 단번에 차를 찾았다. 차를 찾은 나를 신기해하고 고마워하는 찬승씨를 보며, 찬승씨가 차를 찾느라고 너무 힘들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4. 진짜 너무 좋아요. 11월 2일.
파주에 드라이브를 갔다. 우연히 가게 된 음악 카페에서 저녁 7시 성악 공연 좌석을 예약했다. 우리는 중년 4명의 남자 성악가들의 공연을 운 좋게 맨 앞자리에서 보게 되었다. 급 보게 된 공연이었지만 정말 좋았다. 음악적 지식이 없어 내가 느낀 감동을 멋지게 표현할 수 없어 아쉽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곡도 하나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몰입해서 본 공연이었다. 성악가들의 숨소리, 정장의 들썩임과 표정 모든 게 마치 영화 같았다. 푹 빠져서 감상하는데 옆자리의 찬승씨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루한가?’ 생각하며 찬승씨 표정을 살폈는데 벅차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아마 귀로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찬승씨는 곡이 바뀌는 타이밍에 내가 앉은 의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진짜 너무 좋아요”라고 작게 말했다. 나중에 공연이 차마 눈을 들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같이 그 공연을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흠~ 뭐가 고마운 거지~
그 뒤로 우리는 자기 전에 매일 통화를 했다. 여전히 찬승씨, 해나씨로 서로를 부르며 존댓말을 했지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고 천천히 친해졌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좋은 감정들을 슬며시 표현하기도 했다. 어느 날 밤의 대화 주제는 연애가 되었고, 찬승씨는 누군가에게 한번도 사귀자고 고백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 또한 그랬다. 우리 사이에 뭔가 긴장감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해나씨가 평생 처음으로 해보면 되겠네요!” 라고 내가 정확히 찬승씨한테 말 하려고 생각했던 말을 했다. 그러더니 “해나씨, 저랑 사귈래요?” 라고 고백해버렸다.
“제가 천안으로 갈 테니까 직접 말해요~” 하고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찬승씨가 있는 천안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