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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지 Aug 17. 2024

산책로에서 자전거를 배우다


산책로는 지금 짙은 녹음 속에 한여름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깊게 호흡하니 어제 내린 비로 상쾌해진 

공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요란한 새들의 식사시간, 고요한 이곳은 그들의 세상이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에 내 발자국을 먼저 남긴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의 루틴을 따라 산책로 여행을 시작한다.

     

15년 전, 이곳에 이사 오면서 이웃의 소개로 산책로를 처음 걷기 시작했다. 그때는 흙길이었지만 지금은 명품 산책로라 할 만큼 예쁘게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때로는 예전의 꼬불꼬불한 흙길이 그립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토끼를 따라 환상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시끄러운 도로를 지나 산책로에 들어서면 또 다른 고요한 세상이 펼쳐진다.


들꽃, 나무, 하늘, 맑은 공기를 느끼며  걷고 있던 어느 날,

멀리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멋진 왕자님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엘리스였다.) 

눈을 크게 뜨고 멋짐을 감상하던 중, 알고 보니 젊은 청년이 아니라 건강한 어르신이었다.


실망을 접고, 나도 저렇게 늙어 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엔

자전거가 무서워 타지 못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는데 무서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에게 본가에 있던 자전거를 부탁했다. 그런데 도착한 자전거는 내가 생각했던 아담한 자전거가 아니라, 경기용 자전거처럼 안장은 높고 바퀴도 큰 것이었다. 

"앗,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네. 너무 커~  처음 타보는 건데 괜찮을까?" 


남편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뭐야! 탈 줄도 모르면서 가져오라고 한 거야? “ 어이없다는 듯 빈정 섞인 목소리다. 

"지금부터 배우겠다는 거지 뭐…" 


나는 속으로 '그래, 이번엔 꼭 타고야 말겠어'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첫날은 아파트 공원에서 연습했다. 혼자 하려니 자꾸 넘어지고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한동안 구경하던 5살 딸이 이렇게 말한다. 

"엄마는 그냥 끌고나 다니세요. “ 

     

넘어져서 아파하는 엄마가 걱정돼서 그랬겠지?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시크한 우리 딸내미의 성격을  

보면 아닌 것 같다. 하여튼 그때 딸내미도 처음 보조바퀴 자전거를 타기 시작할 때였는데,

한심하다는 듯 내게 비수를 꽂는다. '와~ 이거 안 되겠네. 꼭 타고 말 거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 한참을 열중하고 있는데, 어느새 내 주변엔 동네 꼬맹이들이 관객이 되어 있었다. 

"어! 아줌마는 어른인데 왜 자전거를 못 타요?" 

"어... 아줌마 어릴 때는 자전거가 없어서 못 배워서 그래." 

"........" 

"아줌마,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자전거 올라가면서 페달을 막 밟아야 된다고 했어요. 

그럼 자전거가 굴러간대요." 

"그래! 고마워." 

     

자세히 생각해 보니, 나는 균형 잡기에만 신경 쓰느라 페달을 밟지 않고 있었다. 꼬맹이 말처럼 핸들을 잡고 힘차게 페달을 돌리니 자전거가 조금씩 움직였다. 넘어져도 점점 재밌어졌다. 다시 꼬맹이가 말했다.      

"아줌마,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요. 딱 4일만 연습하면 잘 탈 수 있다고 했어요." 

"와우! 그래~ 고마워!" 

     

꼬맹이들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드디어 5일째 되던 날 자전거를 타고 산책로로 향할 수 있었다.


내 키 보다 큰 자전거 지만 처음 탈 때 힘차게 돋음 닫기하고 점프해서 안장에 올라가면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 멋진 엄마가 되었다. 

그 후로 나의 신나는 자전거 여행은 딸과 함께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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