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를 하다가 캐리어를 넣어둔 옷장을 열어보았다. 말이 옷장이지 별로 꺼낼 일이 없는 무거운 옷들과 토비가 안 쓰는 장난감, 캐리어 등을 넣어두는 곳이라 지난겨울 내내 열어보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고 살았다.
캐리어를 꺼내자 벽장 안으로 푸른곰팡이가 깊어 쓸어내린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잦은 비로 인해 습기가 집안에 가득했는데 그 흔한 물 하마조차 넣어놓지 않아서 벽은 오랜 습기를 그대로 머금어버렸다.
캐리어를 꺼내서 물수건으로 대충 닦아냈다. 그러면서 그 안쪽으로 있던 카메라 가방을 꺼내보니 거기도 군데군데 곰팡이가 퍼져있었다. 캐리어만 꺼내려고 했는데 일이 커졌다. 마침 집안 청소 중이어서 하는 김에 하자고 스타트를 끊었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일단 곰팡이 제거제로 벽을 닦고 카메라 가방에 든 카메라 관련 부속품들을 꺼내 한쪽으로 정리한 후 가방을 빨았다. 그 옆에 있던 커다란 곰인형은(카메라부터 커다란 곰인형까지 전부 남편이 서울에서 사준 선물들. 카메라는 그렇다 쳐도 저 커다란 인형은 처치 곤란인데 버릴 수도 없고 항상 우리 집 어딘가에 앉아있다. 남편이 버리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어떻게 빨 수도 없는 거대한 인형이라 일단 햇볕에 놓아두었다.
룸바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내 손이 닿을 수밖에 없는 공간들이 이렇게나 많다. 신기한 건 같은 벽장 안에서도 내가 몇 번 손을 내밀어 옷을 넣고 빼고 바꾸고 요리조리 신경 썼던 구간은 곰팡이가 전혀 슬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옆, 불과 몇 센티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내가 오랫동안 방치한 채 그대로 한 해를 보낸 곳은 어둠 속에서 조금씩 좀 먹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축축한 카메라 가방은 쿰쿰한 기분 나쁜 냄새를 풍겼고 그 가방에 뒤로 선 채 전혀 햇빛도, 바람도 들지 않은 벽은 무려 고독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결국 무생물도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사랑까지는 못 줄 망정 주기적으로 신경 써주고 다듬고 살펴줘야 평균은 유지한다. 관심받지 못했던 부분이(사람이, 또는 무언가가) 조금씩 어둠에 묻혀서 가라앉지 않도록 확인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쓸고 닦고 물건들을 1차 정리한 뒤 곰팡이 제거제로 닦은 벽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방 안 창문을 열어 빛이 그곳으로 들게 했다. 마침 바람도 부는 날이라 제법 시원한 바람이 방충망을 통해 들어온다. 옷장을 활짝 열어두었으니 그곳에도 금방 신선한 기운이 돌았다. 밑에 크게 차지하던 캐리어를 빼냈으니 일주일 정도는 가벼울 것이다. 옷장이 말한다. 열어줘서 고맙다고.
이제 겨울도 지났으니 앞으론 외출할 때 옷장을 활짝 열어두기로 한다. 어둠과 습기를 걷어낸 자리에 바람이 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