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무엇을 쓸 것인가 생각한 적이 없다. 그 자리에서 문득 생각난 것을 집중해서 자판으로 두드릴 때 제일 자연스러운, 내 것 같은 글이 나온다. 쓰다가 막히면 저장해두었다가 쓰는 일도 없다. 흐름이 끊긴 글은 후에 다시 읽어봐도 감흥이 일지 않는다. 고칠 수도 없다. 그 글은 거기서 생명을 멈춘 것이다.
필기구를 사용해 노트에 직접 쓰는 글(모습)을 동경한 적도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불러내는 단어들과 문장 속도의 흐름을 펜이 미쳐 따라가지 못해 글자가 점점 엉망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는 그것도 관두었다. 양손의 엄지만 있으면 그것이 세상 제일가는 내 펜대이며 스크린 터치 화면이 내 책상이다.
어젯밤엔 잠든 아이의 보드라운 팔 뒤꿈치를 살살 만져보며 몇 가지 쓰고 싶은 것들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잠금 화면을 풀고 다시 손가락을 얹으면 될 일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의 보드라움과 평온한 아이의 얼굴, 귓가에 와 닿는 그녀의 심장소리를 즐기기로 한다.
하와이에서 일주일을 보낸 후 이상하게 영화 중경삼림에 나온 The Mamas and The Papas의 California dreamin이 눈 앞에, 귓가에 맴돈다. 요 며칠 캘리포니아 드림인만 주야장천 듣는다. 머리를 남자처럼 짧게 자른, 시원한 반바지와 나시 차림을 하고 전신 거울을 앞에 두고 춤을 추던, 깡마른 그녀를 떠올리며 적고 싶었던 것도 흘러가 버렸다.
실베스트레 카페 가장 안쪽 자리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하나도 머물지 않는 무성하게 자란 선인장의 푸른 입사귀를 바라보며 지나가는 차들의 흐름을 멍하니 바라본다.
늘 아무것도 안 하고 이런 풍경이나 보면서 머리를 비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할 일을 찾는다. 찾지 않아도 내겐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아이를 데려오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쉬지 않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그런 반복적인 일들. 2년 동안 그런 일들에 몸을 맡기니 이젠 일이 없으면 허전하다. 카페 안은 그런 상황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 준다. 도피처라고 하기엔 마음이 편하지 않고 오히려 소란스러운 곳이지만. 그래도 내게 주어진 두 시간 정도의 여유. 커피와 선인장 풍경. 사실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