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토스트&떡볶이(7화) 앵두할매와 꼬마김밥

by 해온






버스정류장 앞, 은정이의 토스트 트럭은 아침마다 전쟁터였다. 직장인과 학생들이 줄을 서면 은정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토스트를 뒤집고 계란을 깨고 꼬마김밥을 포장하기에 바빴다.


"오늘은 계란 한장 더! 시험 보는 날이잖아요."

"어제 야근하셨죠? 계란프라이 두툼하게 해드릴게요."


그렇게 사람들의 하루에 작은 기운을 실어 보내는 게 은정에게는 은근한 자부심이었다.

장사가 끝나면 트럭을 돌려 시장으로 내려간다. 그 시간쯤이면 시장 입구에서 항상 보이던 익숙한 모습이 하나 있었다. 커다란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작은 체구의 할머니. 시장 사람들은 다들 그를 앵두할머니라고 불렀다. 할머니 집 마당에 커다란 앵두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해마다 앵두가 익을 때면 검정비닐봉지에 담아 주변 가게들에 나누어주는 정이 많은 분이었다.


앵두할머니의 일상은 단순했다. 리어카를 끌고 시장을 한 바퀴 도는 것.

가게 앞에 놓여 있는 박스들을 한 번에 쌓고 다시 리어카에 실어 올리는 동안 작은 체구에서 상상할 수 없는 힘이 나왔다. 받는 건 기껏해야 한 리어카 가득 채워도 삼천 원, 많아야 오천 원. 그래 봐야 라면 몇 봉지 사면 끝나는 돈이었지만 할머니는 늘 씩씩했다. 누가 봐도 살기 위한 노동이지만, 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해. 움직이는 게 덜 아픈 법이야."


은정이와 앵두할머니가 가까워진 건 꼬마김밥 때문이었다.

장마철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따라 손님이 적게 와서 꼬마김밥 몇 줄과 오뎅 몇 개가 남았는데, 트럭 근처에서 허리를 굽히며 모으던 앵두할매의 등을 보고는 은정은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할머니, 이거 드실래요? 조금 남았어요. 공짜로 드릴게요."


할매는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나한테 왜 이런 걸 준대니. 팔아서 돈 벌어야지."


그러면서도 은정이 내미는 스티로폼 용기를 슬쩍 바라보는 눈빛은 영락없는 배고픈 사람의 눈이었다. 은정은 능청스레 말했다.


"할머니, 오늘 좀 남았어요. 버리면 아까워서 그래요. 간도 좀 봐주시고요~"


그러자 앵두할매 얼굴에 아주 작게, 정말 작게 미소가 번졌다.


그 이후부터였다. 은정은 남은 꼬마김밥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앵두할매를 먼저 떠올렸다. 할매 역시 은정의 트럭 앞을 지나갈 때면 인사를 건네곤 했다. 툭툭 던지는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정이 묻어 있었다.


며칠 뒤, 은정은 장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트럭 문틈으로 검정 비닐봉지가 보였다. 열어보니 앵두였다. 색이 꼭 투명하게 빛나는 구슬 같았다. 은정이 놀라서 고개를 드니 앵두할매가 멀찍이 서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집에 앵두가 열렸길래 너 주려고 갖고 왔다."


그리고 금세 리어카를 밀고 다시 사라졌다. 은정은 그 모습을 보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휴, 할머니 귀여우셔."


그날 이후로 앵두는 간혹, 불규칙하게, 그러나 꾸준히 은정의 트럭 근처에 나타났다. 은정은 그 앵두를 트럭 계기판 위에 작은 유리컵에 담아 올려놓았다. 행운부적이라 부르며.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앵두할매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시장을 돌며 박스를 모으는 모습도, 리어카 끄는 소리도, 검정봉지를 흔드는 손도 사라졌다. 은정은 장사를 하면서도 자꾸 시장 입구 쪽을 힐끔거렸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은정은 튀김을 꺼내며 주문을 받다가, 익숙한 소리를 들었다. "끼이익~ 끼이익~" 낡은 리어카 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였다. 은정은 튀김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고 뛰어나갔다. 멀리서 앵두할매가 리어카를 끌고 오고 있었다. 체구는 더 작아진 것 같았고, 얼굴은 확연히 까칠해져 있었다.


"할머니!"


은정이 달려가 리어카 손잡이를 붙잡자 할매가 깜짝 놀랐다.


"아이고 놀래라. 왜 이렇게 뛰어와."

"며칠 동안 안 보여서 걱정했어요. 어디 아프신 거에요?"


할매는 마른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냥 조금 누워있었지."


앵두할매의 숨이 가쁘고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검정비닐봉지를 몇 개 들고 있었다.


"이거... 가게들 주려고."


은정은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프면 쉬어야죠! 왜 이런 걸 들고 나와요."


할매는 그저 씩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쉬는 사람만 있으면 나라가 굴러가겠니. 할 일은 해야지."


그러면서도 은정의 팔을 살포시 붙잡고 균형을 잡았다. 은정은 할매 대신 시장 가게들에 앵두를 나눠주었다. 다들 할매를 걱정하며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라고 했지만 할매는 "괜찮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유난히 힘이 없었다.


은정은 할매를 트럭까지 데리고 와서 의자에 앉히고, 뜨끈한 오뎅국물 한 컵을 건넸다. 할매는 천천히 국물을 들이켜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너는 참... 사람 마음을 잘 건드려."


은정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칭찬인가요, 욕인가요?"

"몰라. 이 녀석아."


그 말이 뭐라고, 은정은 마음 한가운데 뜨끈한 것이 차오르는 걸 느꼈다.


그 다음 날 새벽. 아침 토스트 장사를 준비하려고 은정이 집에서 나왔을 때, 트럭 옆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가까이 가보니 사이드미러에 검정 비닐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그 안에는 앵두뿐 아니라 작은 종이조각 하나가 들어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늘도 무사하게, 많이 벌어."


은정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초여름의 더운 열기를 밀어내는 봄볕같은 따스함이 느껴졌다.


"아휴... 이런 걸 또 새벽부터..."


은정은 봉지를 가슴에 꼭 안았다.


그날부터였다. 은정의 하루는 앵두 비닐봉지로 시작되었다. 시장 한복판에서 서로를 조금씩 챙겨주며 살아가는 두 사람의 관계는, 누구에게도 허세 없이 그저 담백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뜨끈한 오뎅국물과 꼬마김밥 몇 줄, 검정봉지에 담긴 빨간 앵두. 그건 이 시장을 살아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