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카센터
트럭이 덜컹거릴 때마다 은정은 가슴이 철렁했다.
"아, 또 왜 이래, 햇님아. 오늘도 말 안 들을 거야?"
가스버너는 멀쩡했는데, 이번엔 시동이 문제였다.
달동네를 내려와 시장 끝까지 오기도 전에 두 번이나 꺼졌고, 그때마다 동네 아저씨들이 차를 밀어줘야 했다.
"이제 정말 카센터 가야겠다."
은정은 길모퉁이로 트럭을 몰았다.
시장 끄트머리에 '만복자동차정비'라 쓰인 낡은 간판이 보였다.
그곳 주인은 은정이 할머니의 오래된 인연이자, 은정 아버지의 고향 친구인 대구아저씨였다.
"은정이 또 왔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대구아저씨가 고개를 들었다.
"은정이, 이번엔 또 어디가 문제야?"
"햇님이가 심술을 부려요. 언덕길에서 세 번이나 삐졌다니까요."
"트럭이 사람도 아니고 삐지긴... 이거 벌써 15년은 넘었지?"
"예, 이제 16년 됐어요. 처음 샀을 때가 25만이었고 이제 27만 킬로 탔어요."
"그만 바꿔라. 이러다 언덕길에서 뒤로 구른다."
"아악! 그럴 순 없어요. 햇님이랑 저는 일심동체란 말이에요."
은정의 말에 아저씨는 피식 웃었다.
"에휴, 어쩜 그렇게 할머니를 쏙 빼다 박았냐? 할머니도 낡아빠진 물건들 하나도 안버리시잖냐."
"할미가 정 많은 건 인정이죠."
"정이 많은 게 아니라 고집이 세지."
"그건 아저씨도 마찬가지잖아요."
"허허, 이 가시나."
툴툴거리던 아저씨는 금세 공구를 꺼내 들었다. 후드 아래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들리기를 잠시, 아저씨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은정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봐라, 점화플러그가 다 닳았네. 언제 갈았노?"
"그게.. 3월쯤?"
"3월이 아니라 3년 전이겠지."
"...눈치가 왜 이렇게 빠르세요?"
"얼굴에 써있구만 뭘."
아저씨는 한참을 낑낑대며 엔진을 살폈다. 손등에 묻은 기름이 번들거렸고, 콧노래가 흘렀다.
은정은 트럭 옆에 서서 볼을 부풀렸다.
"아저씨, 저녁은 먹었어요?"
"이 시간에 누가 밥을 먹노."
"그럼 제가 떡볶이 한 통 해드릴게요."
"됐다. 매운 거 딱 질색이야."
"매운 건 혀가 아니라 인생이죠."
"하여간 쪼그만 게 못하는 소리가 없어."
잠시 후, 시동이 '부릉' 소리를 내며 살아났다.
아저씨가 손을 털며 말했다.
"됐다. 이젠 언덕길에서 안 꺼질 거다."
"와, 대박. 역시 대구아저씨!"
"칭찬은 고맙지만, 이거 오래 못 간다."
"그럼 또 고쳐주실 거잖아요?"
"이게 카센터지 고물상이냐."
"고물상이라니요~ 천사가 사는 집인 거 같은데에."
"이녀석, 말은 참 잘해."
다음 날, 은정이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할머니의 유모차가 고장 나 있었다. 바퀴가 한쪽으로 돌아가 끌 수도 없었다.
"아이참, 할미 이거 어디서 주워온 거예요?"
"길가에 버려진 거, 멀쩡하길래 가져왔지."
"이게 멀쩡한 거예요? 바퀴가 삐뚤잖아요."
"삐뚤어도 굴러가면 됐지."
"안 굴러가요."
"그렇다고 이걸 버려? 고쳐쓰면 된다."
"에휴, 진짜..."
결국 은정은 유모차를 트럭 조수석에 싣고 다시 카센터로 향했다.
"은정이, 또 뭐 고장났노?"
"이번엔 할미 유모차요."
"야, 여기가 카센터지 고물상 아니라고 몇 번 말했노."
"아저씨, 이건 트럭보다 급해요. 할미 없으면 장사도 못 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할미가 저 대신 시장에서 자리 맡아주거든요. 거기서 1년을 넘게 장사를 했는데 잠시 비운 틈을 못보고 그세 딴 사람이 치고 들어온다니까요."
"그럼 유모차 고치는 게 국익이네."
"맞아요. 지역경제 살리기!"
아저씨는 기어이 웃음을 터뜨리며 유모차를 살폈다.
"이거 축이 다 삭았네. 볼트 몇 개만 갈면 되겠다."
"아저씨 최고."
"너 또 공짜로 고쳐달라 그러는 거지?"
"에이, 제가 언제요."
"항상!!"
그날 저녁 은정은 떡볶이 국물과 꼬마김밥을 한 봉지 싸 들고 카센터로 향했다.
"아저씨, 야식 배달이요."
"이야, 이건 또 뭐야."
"유모차 수리비요. 현금 대신 음식으로 드려요."
"됐어. 안 받아."
"받으셔야죠. 이거 덜 맵게 했다고요."
"그래도 안 받아."
"그럼 제가 그냥 여기다 놓고 갈게요."
"야야! 아이고 참."
은정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저씨, 진짜 아빠 같아요."
"뭐?"
"아빠 있었으면 아마 아저씨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해서요."
"야, 그런 소리 함부로 하지 마라."
"왜요? 좋은 말인데."
"결혼도 안 한 총각 혼삿길 망치면 쓰냐!."
"헤헤."
은정은 반달모양으로 눈을 접으며 말했다.
"아저씨 내 하트 받아요~"
대구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놈의 가시나, 못 당하겠네."
"그래도 떡볶이는 맛있을걸요."
"맵다고..."
"그건 아저씨 탓~ 에이~ 맵찔이~"
집으로 돌아온 은정은 고쳐진 유모차를 보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미, 이거 잘 굴러갈 거예요."
"그 아저씨가 고쳐줬지?"
"응. 또 공짜로."
"그 사람 참 사람 좋다. 니 아부지가 있었으면 좋은 친구사이가 됐을 건데..."
할머니의 말이 희미하게 흘러갔다.
은정은 트럭 창문에 기대며 중얼거렸다.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녀의 시선 너머로, 카센터 간판이 저녁 불빛에 반짝였다.
트럭 위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은정은 혼잣말처럼 웃으며 중얼거렸다.
"고쳐도 고쳐도 또 고장나도... 그래도 괜찮아요. 나한텐 아저씨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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