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삼 년 사 월 십구 일
그냥 외출.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목적이 그다지 크지 않은 외출. 나는 그런 외출은 거의 하지 않지만 왠지 이번에는 그러고 싶었다. 외출의 시작점부터 달라서 그랬을까. 유난히 많이 꼬인 하루였다.
집을 나서기 전에 늘 지도 앱으로 버스가 오는지 확인한다. 밖에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는 건 지루하니까. (야외에서 핸드폰을 보려면 화면도 최대한으로 밝게 해야 하니 환경에 좋지 않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최대한 늦게 집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에 가 보면 거의 이삼 분 뒤에 버스가 온다. 그런데 이 분 뒤에 온다던 버스가 갑자기 증발했다. 정말 아주아주 가끔 있는 일이 그날 일어났다. 고장이 난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음 버스를 타려면 십 분 이상 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럴 바에는 걸어가는 게 더 빨랐다. 걸을 일도 많은 날 아침부터 좋아하지 않는 유산소 운동을 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가 열차를 놓쳐서 또 십 분을 기다렸다. 그럴 수 있었다. 출근 시간이 이미 지났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내게 익숙한 공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도 이 년 반이나 지하철을 타고 거의 왕복 네 시간 가까이 통학했었으니까. 통학할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늘 피곤했기에 지하철에서 잘 잤다. 졸업한 뒤로는 잠이 예전처럼 부족하지 않아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멍 때린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지면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날 역시 그랬다. 졸지도 않았고 핸드폰을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이번 역은 어디라는 안내 방송이 분명 나왔을 텐데 듣지 못했다.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저 그렇게 일어날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큰 목적 없이 외출하기로 결정했듯이. 가끔은 나답지 않아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나였던 것처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일들. 그런 하루가 새롭게 한 겹 쌓였다.